2007년 3월 3일은 스타판을 뒤흔든 일대 대사건이 벌어진 날이자, 암울하기만 했던 프로토스의 역사에서의 전환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암울하지만 이 때의 충격은 스타크래프트가 나온 이래 더 이상의 충격적인 일은 없을 것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단 훗날 1.23 정전사건 및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과 4강 4저그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이 말은 무색하게 되었지만 '깨끗한' 의미의 대사건으로써는 3.3혁명의 임팩트가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1 배경 ¶
첫번째 곰TV MSL 4강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당시 4강 멤버는 강민, 김택용, 마재윤, 진영수였는데 진영수는 가장 기대받는 테란의 유망주 중 하나였고 마재윤은 저그의 정점이자 본좌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강민은 소위 프로토스의 마지막 희망이였다. 그러나 김택용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2 16강에서 이병민에게 관심흡수공격을 받고 탈락해버려서 사람들의 관심은 적은 상태였다. 게다가 강민의 토스전은 누구나 인정하는 수준이였고 김택용은 2승 5패라는 초라한 수준의 토스전이였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민과 마재윤이 프링글스 MSL 시즌 1 때 처럼 다시 결승에서 성전을 벌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1].
그러나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김택용은 강민을 3 : 0이란 압도적인 스코어, 경기 내용에서도 압도적으로 제압하며 결승에 진출한다. 설상가상으로 마재윤이 혈전끝에 진영수를 3 : 2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자 모두 "이제 토스는 끝장이다."라고 외치고 다녔으며 아무도 마재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택용이 아무리 그 강민을 찍어눌렀다곤 하나, 그것은 토스전이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당시 김택용의 저그전 공식전은 5할 언저리였다.
당시의 반응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3 : 0으로 지면 당연한 결과, 3 : 1로 지면 강민과 동급의 프로토스, 3 : 2로 지면 프로토스 본좌라는 의견이 나오고 모두가 이에 수긍했을 정도였다. 김택용이 3 : 2로 이기면... 구라 치지마! 이런 소리가 나왔다.
또한 김택용은 "프로토스가 왜 저그에게 약한지 모르겠다.", "3:0 안당하게 열심히 연습하고 오라."고 도발해놓고 태국 푸켓으로 팀원들과 전지훈련(사실상의 여행)을 떠나버린다. 당연히 사람들은 "마재윤에게 질게 뻔하니까 연습도 안하고 도망간 거다." "푸켓가서 여권 흘려보내고 안돌아오는거 아니냐?"라고 조롱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김택용에게는 푸켓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거기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3에서 마재윤이 무시무시한 테란맵들을 뚫고 이윤열을 잡고 우승하자 소수를 제외하고는 마재윤의 승리를 아무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이 당시 여러 스타 커뮤니티에서는 농담으로라도 김택용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없었다. 소수의 엠히빠(이 시절은 앞서 말했듯 김택용이 거의 신인 시절이라 김택용 개인 팬들조차도 희박한 때였다)만이 '열심히 해봐라'라는 격려를 남겼을 뿐.
MBC GAME은
결승 예고(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051762&lu=m_pcv_main_goOriginLink)를 통해 김택용이 마재윤을 이길 확률이 2.69%라는 통계를 내놓았으며, 그나마 '기적'이라는 말로 김택용에게 균형을 맞춰주려는 문구조차 수많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스타판의 감독들, 기자들 모두가 마재윤의 승리라고 예상했고 마재윤 자신도 그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결승전 예고 동영상에서 마재윤은 "글쎄요... 우승 세 번은 더하고 오셔야 되지 않나..."라는 도발을 했고[2], 다른 선수가 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말이었지만 그는 마재윤이고 상대는 토스니까 모두가 이해했다. 정말, 세상에 김택용의 편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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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운명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2 혁명 ¶
그렇게 시작된 결승전의 열기는 뜨거웠다. 마재윤의 팬들은 MSL까지 우승하여 양대리그 동시우승이라는 대업을 마재윤이 달성할 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며[4] 마재윤의 팬이 아닌 사람들은 '김택용이 얼마나 버틸까' 정도만이 관심사였다.
그러나 1경기 롱기누스2에서부터 모두의 예상을 꺾는 이변이 일어난다. 김택용이 선승을 거둔 것. 포지도 짓지 않고 더블넥서스를 감행한 김택용은 집요한 프로브 정찰로 드론펌프를 찍는 마재윤의 운영을 간파, 커세어를 뽑으면서 오버로드 견제를 한 뒤 다크 템플러를 난입시키며 마재윤의 자원줄과 병력운용을 어렵게 하면서 멀티를 가져가 부유하게 플레이를 하며 마재윤에게서 압승을 거둔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사용된 롱기누스2로 하여금 마서스 압살용 맵으로서의 면모도 보여 주게 했다(항목 참조). 그러나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마재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민도 선승을 딴 적은 있기 때문이며 맵 자체도 토스에게 이점이 있는 맵이었기 때문. 그저 김택용의 노림수가 적중한 정도로만 보는 시선도 있었다. 강민과 동급이라는 말이 나오며 김택용이 어느정도 실력은 있는 선수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2경기 리버스 템플.
당시 리버스템플은 극상성맵이라 테란>저그>토스>테란이라는 구도가 성립했으며 당시 분위기도 아무리 그래도 마재윤이 이 맵에서 토스한테 지겠어?였고 당연히 이 맵에서 김택용이 이길 확률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나 팬들도 김택용이 어떻게든 앞의 세 경기 중 한 경기라도 이겨서 역상성맵인 반섬맵 데저트 폭스가 있는 4경기까지 가도록 하는게 미약하나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2경기에서 김택용은 이전의 토스들과 자신이 다름을 보여주었다. 김택용은 초반 한방러시가 막힌 후 불리한 상황에서 커세어로 오버로드를 몰아간 끝에 본진에 다크를 드랍해 드론을 모두 잡고 스포닝풀을 깨버리고 이후 드라군 + 리버 + 하이 템플러 중심의 모아둔 한방으로 저글링 생산이 불가능해진 마재윤을 꺾어버린다. 이때 럴커를 한번에 안드로메다로 관광보낸 스톰 역시 명장면이었다.
당시 리버스템플은 극상성맵이라 테란>저그>토스>테란이라는 구도가 성립했으며 당시 분위기도 아무리 그래도 마재윤이 이 맵에서 토스한테 지겠어?였고 당연히 이 맵에서 김택용이 이길 확률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나 팬들도 김택용이 어떻게든 앞의 세 경기 중 한 경기라도 이겨서 역상성맵인 반섬맵 데저트 폭스가 있는 4경기까지 가도록 하는게 미약하나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2경기에서 김택용은 이전의 토스들과 자신이 다름을 보여주었다. 김택용은 초반 한방러시가 막힌 후 불리한 상황에서 커세어로 오버로드를 몰아간 끝에 본진에 다크를 드랍해 드론을 모두 잡고 스포닝풀을 깨버리고 이후 드라군 + 리버 + 하이 템플러 중심의 모아둔 한방으로 저글링 생산이 불가능해진 마재윤을 꺾어버린다. 이때 럴커를 한번에 안드로메다로 관광보낸 스톰 역시 명장면이었다.
2경기가 끝나고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저그가 결승에서, 그것도 마재윤이 토스에게 2:0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토스가 저그를 3 : 0으로 셧아웃시키는건 종종 있는 일이였지만 김동수 vs 봉준구의 온게임넷 결승 이후 양대 개인리그 결승에서 토스가 저그를 이긴 적이 없었다[5] 사람들은 김택용에 대해 다시 보게 되고 결승이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토스가 결승에서 저그를, 그것도 마재윤을 보기좋게 셧아웃시키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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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블리츠X에서의 3경기. 이 맵은 토스가 유리한 롱기누스2, 저그가 유리한 리버스템플과는 달리 두 종족 모두 할만한 맵이었다. 예상외로 김택용이 처음 두 경기를 가져가자 모두들 충격에 빠져있던 상황이었으며 모두가 이러다 진짜 2. 69%가?로 바뀌고 있었으며 김택용이 푸켓 여행을 떠나면서 친 3 : 0 드립이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 경기도 김택용은 커닥으로 경기를 시종일관 유리하게 이끌면서 마지막에는 마재윤의 레어를 4다크로 깨버리는 진풍경을 보여주며 기적을 일으켰다.
이 때의 충격이 퍼져나간 결과는 앞서 말했듯 스타판에서 경기로는 실현된 적이 없었던 수준이었으며 마지막 경기에서 마재윤이 GG칠 때까지 엠겜 해설진들이 한 해설내용을 그대로 외우는 팬들까지 나왔다. 레어와 스포닝 풀이 연달아 깨지고 GG를 칠 때 쯤에 히드라들이 동서로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이는 걸 너구리 게임 음악에 합친 동영상까지 나왔을 정도[6].
이 때의 충격이 퍼져나간 결과는 앞서 말했듯 스타판에서 경기로는 실현된 적이 없었던 수준이었으며 마지막 경기에서 마재윤이 GG칠 때까지 엠겜 해설진들이 한 해설내용을 그대로 외우는 팬들까지 나왔다. 레어와 스포닝 풀이 연달아 깨지고 GG를 칠 때 쯤에 히드라들이 동서로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이는 걸 너구리 게임 음악에 합친 동영상까지 나왔을 정도[6].
경기를 보고 싶으면
여기(http://gall.dcinside.com/list.php?id=taekyongk&no=9086&page=1)에 가서 보도록. 첫번째 플레이어 070303 vs마재윤 1,2,3이 바로 3.3혁명 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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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혁명 그 이후 ¶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몇몇 커뮤니티들은 혁명 당일엔 상당히 조용했다. 왜냐하면 마재윤이 이길 것을 의심치 않고 경기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고 그나마 경기를 본 사람들은 트래픽을 폭주시켜서 경기를 안 본 사람들이 결과를 아는 게 늦어졌다... 결국 언론에서 김택용 승리라는 기사가 뜨고 VOD가 업데이트되면서 사람들이 3월 3일에 대 사건이 터졌음을 알았다.
다만 그래도 김택용은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이 당시에는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가 시작되기 전의 폭풍전야라 여기에 집중하는 사람도 많은 데다 마재윤 팬들과 이윤열 팬들의 병림픽으로 인해 우승자인 김택용에게는 포커스가 잘 오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김택용이 주목받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종족최강전과 2회 케스파컵. 이후 김택용은 전성기를 열어 나가며 택뱅리쌍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보였으며, 반대로 마재윤은 이 사건 이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몰락하게 되어 3.3 혁명의 가치는 더욱 부각되게 된다.
김택용이 보여준 오버로드 사냥 후 본진 견제는 이른바 '비수류 커닥'으로 불리며 기존의 커세어 다크와 다른 형태의 운영을 보여주었다. 당시 토스들은 3.3 이후 비수류 커닥을 열심히 연구하였으며 저그들도 커닥 이후 기존처럼 토스 본진앞을 연탄밭으로 조이다가는 본진이 털릴 수도 있는 상황이 나오면서 연탄밭 플레이를 하는 횟수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토스도 저그가 하는 대로 맞춰가면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사실 비수류 커닥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 바로 그것으로 커세어를 뽑으면서 저그 본진을 정찰하는 동시에 오버로드를 견제하면서 멀티를 늘리거나 병력을 모아 한방을 노리거나 견제를 하는 플레이가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이후 토스 vs 저그전의 격차는 엄청나게 줄어들게 되었다. 토스 유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것도 3.3 혁명 직후.
또한 김택용이 심소명을 두려워한다는게 알려지면서 심소명식 히드라 몰아치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는 한상봉 등의 공격형 저그들의 히드라 몰아치기로 계승된다. 김택용이 한때 임이최마 이후 가장 유력한 5대 본좌 후보로 지목된 것도 우승횟수와 저 3.3혁명 때문.
마재윤은 이후 곰티비 슈퍼파이트 종족최강전에서도 김택용의 앞마당을 한발도 밟지못하고 패배를 하면서 확실한 김택용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해버렸고 이후 중요한 고비에서 언제나 김택용에게 져버리는 안습함을 보여주고 만다. 다만 다음 MSL에서 8강, 그 다음 MSL에서 4강에 올라가는 등 바로 몰락하지는 않았으나(이것도 과거의 위엄과 대비되면서 무진장 까였다) 결국 07-08 시즌을 넘어가면서 총체적으로 성적이 안 나오면서 마막장이라고 불리며 몰락해버린다. 하지만 프로토스전에서만큼은 그 기세가 여전했다. 포모스 기준으로 3.3 혁명 이후에도 2007년 공식전 프로토스전은 16승 5패, 비공식전 포함하면 33승 13패를 기록한다. 물론 여기에는 김택용과의 전적이 공식전 1승 2패, 비공식전 2승 7패로 포함되어 있다(이벤트전이 많았음은 한편으로 3.3 혁명의 재현이 흥행 소재였음을, 그리고 그만큼 이 때의 충격이 컸음을 짐작케 한다).
반면 김택용은 단숨에 인기인이 되어버렸으며 저그를 한 끼 식사로 여기는 저그전 역대최강토스로 자리매김했고 지금도 송병구와 함께 현존 토스 최강자로 꼽힌다(그리고 그 중에서도 저프전은 김택용이 발군으로 꼽히다). 다만 이 때와 다음 MSL 우승을 기점으로 안티도 급격하게 늘어나 버렸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거리가 만들어졌는데 이 날 이후 푸켓에 아둔의 성지나 정신과 시간의 방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이 날 이후로 마재윤은 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당시 홍진호가 콩으로 불리웠고 이윤열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고 경기전 말하고 상대방에게 겸손하라고 했지만 정작 경기에서 져버려서 별명이 벼가 되었던터라 곡식 별명이 이어진것. 스갤에서 한 네티즌이 콩도 나왔고 벼도 나왔으니 이젠 팥인거냐는 말이 대히트를 기록해 마재윤은 팥이 되었다[7].
해당 경기는 회원들의 경기 평점을 모아 게시하던 PGR21에서 10점 만점에 9.9점을 기록하였으며, 그나마 이 9.9점도 한두 유저가 실수로 10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이 정도의 임팩트있는 경기가 나올지도 의문이다[8].
이 사건으로 인해 스타팬들의 활동에도 변동이 일어났다. 그 동안 마재윤의 본좌 포스로 눌려 있던 다른 선수들의 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게 되면서 마재윤의 팬들이 스갤에서 포모스로 이주하는 현상이 생겨난 것. 그 여파에 타 저그 선수들 팬이나 저그빠들도 포모스 등으로 대피(?)를 하게 됐으며, 테란, 토스빠들은 연합해서 한동안 저그빠들을 압박했다. 특히 2006년 저그와 테란의 기세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토스빠들은 한동한 스갤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당시 신한은행 스타리그 S3 결승전날 스갤에서 열린 찌질파이트(자신의 아이피와 닉을 걸고 그 선수가 우승하지 못하면 그 선수를 지지한 아이피와 닉은 스갤을 떠남)에서 이윤열에 걸어서 스갤을 떠난 몇몇 갤러들이 다시 스갤에 돌아와 마재윤을 까는 활동을 시작하거나, 토스빠들과도 엮이면서 스갤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니 이긴건 김택용인데 왜 니들이 좋아해
4 3.3 혁명의 의의 ¶
3.3 혁명의 가장 중요한 점은, 더 이상 토스들이 저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다는 것. 심지어는 다전제 토스 킬러 박성준고 할지라도. 물론 STX의 박성준은 다전제 프로토스의 절대 강자인 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자신이 골든마우스를 획득했을 때 희생양으로 삼은 선수는 도재욱(그것도 3 : 0)이었다. 참고로 그의 다전제 대 프로토스 전 승률은 무려 83%. 프로토스를 껌으로 안다는 말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어찌 보면 3.3 혁명의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아무리 저그 상대라고 해도 심리적으로 꿀리지 않게 되는 프로토스의 자신감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9]
실제로 이후 저그전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A급 프로토스들이 엄청나게 출현했다. 김택용을 포함하여 윤용태, 김구현 [10]이 그랬고, 이들을 포함해 육룡이라 불리는 프로토스 라인이 형성되어 토스빠들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한편 공군 입대 전의 오영종은 비수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여 프로리그에서 저그전 연승 가도를 달리기도 했고, 최근의 진영화 역시 이러한 조류에 영향을 받은 프로게이머로 포함할 수 있겠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A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프로토스는 여전히 저그 밥(승률차 5%)수준이다. 그래도 캐X밥 (승률차이가 10% 이상 나는)에서 그냥 밥 이하로 떨어진, 밸런스 변이를 일으킨 대 사건이다.
그리고 2009년 1월 15일 벌어진 로스트사가 MSL 개막전은 택마록이었다. 상대는 2년전 김택용에게 "우승 3번은 하고 오셔야..." 라는 말을 남겼던 마재윤. 이에 김택용은 이제 우승 3번 했으니 제대로 붙자며 마재윤과의 전투에 임했지만 정작 이 경기에서는 관광당했다. 그냥 관광도 아닌 엘리미네이션 관광이었다. 이를 두고 스타크래프트 팬들은 3.3 혁명에 대한 마재윤의 진압이 시작되었다며 이를 1.15 진압이라 칭하였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 사건을 평하면 이미 늦었다.라는 아주 냉정한 결론이 나오는데 이후에 마재윤이 김택용과의 관계를 역전한 것도 아니고 이후에 우승을 한 번 이상 더 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것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지내다가 모두가 잘 아는 승부조작 사건으로 프로게이머 인생을 쫑냈다. 즉 이 택마록은 별로 큰 의미가 없다.
5 여담 ¶
이날의 엄청난 임팩트는 벌써 몇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어서 스갤에선 3월 3일이 되면 갑자기 그날로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글들이 연속해서 올라오며 그걸 즐기며 서로 낄낄대는 스타판 최대 명절(?)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스갤의 친구 김택신이 되어버린 김택용 덕분에 09년 말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로 5대 본좌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이영호와 3월 3일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신 vs 인간의 대결을 펼친다는 떡밥(코랜드 파일날)이 급속도로 퍼지는 등 3월 3일은 여러모로 스타판에선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할수 있겠다.
2010년 3월 3일은... 비극이 벌어졌다. SKT T1와 MBC게임 HERO의 위너스 리그 경기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가 이날의 주인공이었던 김택용까지 꺾고 선봉올킬을 달성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 평하기를 3.3으로 흥한자 3.3으로 망한다
근데 택신께서 코랜드 파일날 참가하시느라고 안 나온걸수도 있나?
근데 택신께서 코랜드 파일날 참가하시느라고 안 나온걸수도 있나?
3.3 혁명 이후 마재윤과 김택용 사이에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물론 상대 전적은 앞서 살펴봤듯 처참했지만)가 형성되었고 각각을 다룰 때도 3.3 혁명은 빼놓을 수 없는 떡밥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실제로는 친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로 인해 마재윤이 스타판과 팬들을 저버리고 마프리카 방송을 시작했을 때 김택용은 현직 프로게이머로서는 제일 먼저 마재윤에게 일침을 가했다. 한편으로, 배틀넷에 친구로 등록되어 있던 김택용이 접속하는 순간 마재윤이 방송을 종료한 것(김택용 때문에 방송을 종료한 것은 아니었다)이 알려지면서 마재윤은 '역시 마재윤 잡는 건 김택용!'이라는 조소를 받기도 했다.
마재윤이 이 일 이후로 하향세를 타면서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의 원인이 되지 않았냐는 의견도 있다. 사실 아주 허무맹랑한건 아닌게, 3.3 혁명 이후로 부진테크를 조금씩 타기 시작하긴 했다. 3.3 혁명 이전의 막강한 모습을 계속 보였다면 돈도 더 많이 들어오고 인기와 함께 까들도 늘어나고 명성도 높아지는데 마재윤이 아무리 생각 없이 행동해도 완전 무뇌가 아닌 이상 그 지위와 돈을 갖다 버릴 병크짓은 하기 힘들었을 테지만... 마재윤이 어떤 위치에 있든, 승부조작은 하지 말았어야 할 팬들에 대한 배신이었음을 잊지 말자. 이 논리대로라면 과거에 정점을 찍고 지금은 내려앉아버린 수많은 선수들이 예외없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어야 정상인데 그게 말이 될까... 다시 말해, 승부조작은 마재윤 개인의 도덕성을 떠날 수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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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성전 항목에도 설명되어 있듯, 실제 강민과 마재윤의 대결은 전적상 마재윤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럼에도 그 수많은 토스빠들이 성전을 밀었던 것은 그나마 상대할 수 있는 토스는 강민뿐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떡밥으로 적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2] 로스트사가 MSL 조지명식 이후에 밝혀진 바로는 방송사에서 저 발언을 하도록 부추겼다고 한다.
[3] 그러나 단 한 명만은 예외였는데 바로 김철민 캐스터. 그는 결승 바로 전에 김택용의 3 : 0 승리를 예상했다.
[4] 당시 마재윤 팬들 중에는 이윤열의 그랜드슬램을 결승전 시간차가 있다는 이유로(그러나 그 결승전 시간차는 방송사 사정에 의한 것이었다) 폄하하고 마재윤이 진정한 최초 양대 우승자가 될 것이라고 떠벌이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희대의 병크가 되어버렸다.
[5] 게다가 봉준구는 1경기는 프로토스를 했기 때문에 완벽한 셧아웃도 아니었다.
[6] 이건 나중에 김택용 vs 박성준 전에서 김택용이 히드라 올인에 뚫리다 갑자기 PC가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역으로 패러디되었다.
[7] 이외에 '팥죽 먹는 동짓날에 져서', '지는 순간 얼굴이 팥색으로 변해서' 등의 설도 돌고 있다.
[8]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비공식 평점까지 합치면 이제동이 9.96점으로 1위. 프로리그 중 4경기 추풍령에서 인스네어로 진출한 정명훈의 병력을 싸먹고 5경기 데스티네이션에서 김택용과의 엄청난 명경기로 기록을 깼다. 3.3 혁명은 9.92점이다. 그런데 이 평점은 PGR21에서 평점부여제를 폐지한 이후 임시로 부여한 것이어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9] 비수류 파헤법이 나온 이후로는 다시 자신감은 상실하였다(..)
[10] 윤용태는 김택용이 혁명가가 되어 비수류를 배포하기 전부터 저그전을 잘했다. 윤용태가 저그를 상대하면서 비수류 스타일을 도입한 것은 커세어 정찰 정도. 윤용태의 저그전은 윤용태만의 전투력과 그 전투력에서 파생되는 저그의 치열한 공격에 항전해가면서 럭셔리 한방을 만들어 내 가공할 스톰 적중과 조합의 힘으로 뚫어버리는, 전형적인 올드 프로토스의 저그 상대법이며, 자신의 전투력을 믿고 적극적으로 달려들거나 아싸리 배를 째는 극단적인 운영을 채택했다. 윤용태 본인은 저그를 잘 상대했지만, 전투력이 차원이 다른 윤용태만의 특화된 방식과 빌드였기 때문에 비수류같은 영향력은 없었다. 윤용태는 2011시즌을 제외하곤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하면서 저그전 60% 승률을 유지해왔으며, 2011 이후 미묘하게 비수류를 도입하다가 저그전이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