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프로게이머 박승현군이 방에 앉아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다.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더욱 놀라운 것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고개조차 가눌 수 없는 지체장애(1급)를 앓고 있다는 것. 7살 때 '근위축증(근육이 굳어지는 희귀·난치성 질환)' 진단을 받았고, 11살 때부터 걷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이때부터 학교도 그만뒀다. 2년 전부터는 팔도 쓸 수 없게 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손가락과 목뿐이다. 지난 12월8일 형의 부축을 받고서 서울 용산 전자랜드 인텔 e―스타디움에서 열린 3·4위전(오프라인 경기)에 참가했을 때 다른 게임 유저들과 관중은 그의 투혼에 열광했다. 게임캐스터 정진호(31)씨는 "유닛과 건물 등을 지정할 때 쓰는 단축키(Ctrl+숫자)도 마음대로 쓰지 못할 만큼 불편한 몸을 갖고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성적으로 승현이는 준프로게이머 자격증을 얻게 됐고, 시즌 2 16강 진출권도 따내 현재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앞으로 한 번 더 전국 규모 대회에서 (대회마다 정한 규정에 따라) 입상하게 되면 정식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수도 있게 됐다. 승현이는 "오프라인 대회에 나갔을 때 '사인해 달라', '함께 사진 찍자'는 사람들을 보고 좀 당황스러웠다"며 "휠체어 타고 게임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혼자서 책을 볼 수도 없고, 외출을 할 수도 없어요. 지금은 손가락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니 게임이라도 하죠. 점점 몸이 안 좋아지니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승현이에게 게임은 '삶' 자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이후 줄곧 집에만 있었다.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러 나갈 때는 온종일 혼자서 게임을 했고, 게임 내 채팅 창에서 유저(이용자)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 또 세계 각국 선수들과 맞붙는 온라인 게임대회에 출전하는 일은 승현이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남다른 '외출'이었고, 가끔 타오는 상금은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몸은 점점 굳어간다. 얼굴을 제외한 몸은 앙상한 뼈가 드러날 만큼 야위었고, 이마저도 굳어버려 마음대로 펴지도 못한다. 2년 전만 해도 앉은 채로 팔로 몸을 옮겨 가면서 혼자서 게임을 즐겼지만 이제는 컴퓨터를 켜고 끌 수도 없다. 누군가 일으켜 의자에 앉혀주고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을 가져다줘야만 게임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머니는 2년 전부터 일도 그만둔 채 승현이 돌보기에 전념하고 있다. 돈벌이가 사라지면서 집도 영세민 아파트로 옮겼고, 월 50만 원 정도 나오는 정부보조금으로 산다.
"다른 엄마들은 애들이 컴퓨터 많이 한다고 걱정이라지요. 하지만, 저는 우리 승현이가 손가락마저 굳어 게임을 못하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어렸을 때 의사는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컴퓨터만은 제일 좋은 것으로 사준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승현이 꿈은 몸이 낫는 것도, 프로게이머도 아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고, 가장 잘하는 '워크래프트 3'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잘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승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제 병을 고칠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니 제가 낫게 되는 기적은 바라지도, 믿지도 않아요. 그냥 지금은 '재미있는 게임'을 열심히 해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최고의 전사(戰士), 가장 강한 아들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