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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9-07 11:33:54 KST | 조회 | 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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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사냥꾼 G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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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 나는 저술가이자 모험가인 압둘 알 하지르다. 오래 전, 생태 도감을 완성하기 위해 신 트리스트럼의 외딴 술집에 방문했을 적의 일이다. 그 술집은 '죽은 송아지' 라는 진부한 이름을 가진 술집 겸 여관이었는데, 술맛은 구질구질했지만 집주인이 제법 싹싹한 맛이 있어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다.
내가 술을 주문했을 때 이미 바깥은 해가 산 너머로 침몰하고 있었다. 하늘의 꼭대기부터 침전물같은 어둠이 점점 아래로 스며들고 있었다. 술집 안은 습기와 축축한 술 냄새에 젖어 있었고, 나와 동행자들은 그 분위기를 안주 삼아 술을 즐겼다. 그때 나는 술집 한 구석에서 홀로 외롭게 술을 들이키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턱수염과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뻗어난 덥수룩한 사내였는데, 이목구비는 제법 날카로워 잘 다듬으면 미남처럼 보일 법한 그런 사내였다. 나는 느닷없이 그 사내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동행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남자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안녕하시오. 나는 학자 압둘 알 하지르라 하오."
내가 먼저 말을 건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내가 받았던 인상을 완전히 글로 옮겨 적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내 머리를 꿰뚫었을 때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을 세세하게 나열하면, 당시 우리 주위에 흘렀던 묘한 긴장감이 모두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고로 나는 이렇게만 말하겠다. 그의 회색 눈동자는 핏기 없고 날카로웠으며, 그때 내 마음은 억지로 면도날을 삼키는 것처럼 착잡하고도 두근거렸다는 것이다. 그는 입가에 묻은 맥주 거품을 소매로 닦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누구나 처음 만날 때는 상대를 모르지요. 그러나 서서히 알아가는 것이 바로 술친구의 미덕 아니겠습니까."
나는 껄껄 웃으며 주인에게 손짓했다. 나는 자금을 털어 고급술을 한 잔 샀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사람을 좀 잘 봅니다."
나는 일부러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분명 범상한 사람이 아닐게요. 그렇지 않습니까?"
"글쎄요.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단지 한때 활을 좀 다뤘었죠."
그가 겸손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손바닥을 힘껏 마주쳐 소리를 냈다.
"아! 그럼 사냥꾼이셨군요. 그래서 그렇게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던 겁니다. 그렇지 않소?"
"예. 사냥꾼은 맞습니다. 하지만 좀...다른 사냥꾼이었죠."
그는 술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잠시 그것을 음미하듯 입 안을 우물거렸다. 나는 걸죽한 포도주가 그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악마사냥꾼이었습니다."
내 책을 즐겨 읽는 교양있는 독자들이라면 악마사냥꾼이 어떤 조직인지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위험천만한 악마를 사냥하고, 그 악마의 가죽과 발톱을 벗겨 무기를 만들거나 비싼 값에 팔아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다. 멍청한 농부들의 민간 전설에서 악마사냥꾼은 사람을 초월한 초인 병사로 그려지곤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웃기는 말이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칼데움 왕립 은행 융자금 납기일이 다가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악마를 사냥한다는 특수성이, 마술사들이 얼굴에 드리우는 베일처럼 그들을 신비롭게 한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다. 나 역시 악마사냥꾼과 직접 대화를 나눠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아! 그가 첫 인상만큼 과묵한 사내가 아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비싼 술을 윤활유 삼은 그의 혀는 마치 소피스트들의 그것처럼 유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악마 사냥꾼이었습니다. 한때 이 직업은 벌이가 좋았습니다. 악마가 좀 위험하긴 하지만, 공부를 하고 그들의 습성을 파악하면 심각하게 다치는 일은 있어도 죽는 일은 적었지요. 뭐, 일단은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요.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악마 사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의 숫자는 갈수록 불어났지요. 그러면서 경쟁 관계가 생기고 한때 가족같았던 동료들은 라이벌이 되었습니다."
그는 빈 술잔을 나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술을 한 잔 더 주문했다.
"이른바 이 직업도 과포화 상태가 된 겁니다. 특히 네팔렘이 나타나면서 악마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지요. 그게 가장 큰 재앙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네팔렘은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강력한 악마사냥꾼이란다. 그녀는 무거운 쇠뇌를 양손에 들고 화살을 소나기처럼 퍼붓는 귀신같은 여자였다고 한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용암이 치솟아 오르고, 그녀가 수류탄을 던지면 철갑으로 무장한 상위 악마가 꿀물처럼 녹아내렸다는 것이다.
"네팔렘이 악마를 모두 죽여버렸지요. 그 덕에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 엄청 줄어들었습니다. 몇몇 악마사냥꾼은 막일이라도 하러 나갔습니다. 악마를 죽이는 지식을 연마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평화의 시기에는 아무도 악마학 따위에 관심이 없지요. 그러니까 그 학식 넘치는 사람들도 다시 농기구를 들고 대농장에 농사라도 지으러 가야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냥꾼들은 명목 상으로라도 악마사냥꾼 조직을 이어나갔습니다. 이 일을 그만 두기에 우리는 너무 자존심이 높았습니다."
나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았으나 모른 척 했다.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장 고통 받았던 건 내 아내와 아이들이었죠. 우리는 나무 뿌리를 캐서 달여먹으며 허기를 채웠습니다. 지독히 추웠던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내 젖먹이 아들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아이의 새파랗게 질린 살덩이를 만졌을 때 느꼈던 싸늘한 감각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날 아내와 나는 처음으로 싸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험한 말을 내뱉은 아내에게 화풀이하기 위함이 아니었어요. 그대로 두면 아내는 분을 못이겨 자결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때려 진정시켰습니다. 아내의 뺨에 멍이 들었지만 내 심장은 마구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행자 한 명이 내게 귀띔했다. 너무 술에 취했으니 오늘은 이 여관에서 자고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짧게 일러두었다. 모든 방해꾼들을 몰아낸 뒤 나는 다시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부터 였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일종의 근거 없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겁니다. 언젠가 다시 악마들이 나타나고, 우리의 사냥도구와 쇠뇌, 악마학 지식이 다시 빛을 발할 때가 올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네팔렘 여자가 일곱 대악마를 영원히 영혼석에 봉인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사람들이 환호했고, 악마사냥꾼들은 삶의 목적을 잃었습니다. 축제 다음 날 악마사냥꾼 조직 마스터가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직접 묻어주었지요. 독이 얼마나 강했던지 땅에 묻는 순간까지 그의 아랫배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나 역시 씁쓸한 미소로 그의 장단을 맞춰주었다.
"나는 술독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악마의 공포를, 그리고 그 공포와 맞서기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영웅들을 아주 빠르게 잊어가더군요. 우리는 공식적으로 퇴물이 된 겁니다. 그리고 난 알게 되었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악마는 바로 술이었던 겁니다. 나는 술을 살 돈을 모으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살인 청부업도 했습니다. 악마가 아닌 사람을 죽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악마들과는 달리 목구멍에서 따뜻한 피가 봇물처럼 터져나왔죠."
그는 두 번째 술잔을 비웠다. 내가 한 잔 더 시키려고 하자, 그가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하지만 그 일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신 트리스트럼의 규모가 좀 더 커지고, 왕국령으로 정식 편입되면서 법원이 생겼죠. 통치자도 생겼고...이 마을에 법이 생겼습니다. 악마 군주들의 몰락과 함께 야만성은 그 종적을 감췄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도 같이 사그라들어야만 했던 겁니다. 오, 배고픔을 못이기던 내 아내가 어느 날 딸의 뺨을 때리더군요.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나이가 이제 열일곱인데, 아직도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구나. 할 일이 그렇게 없니?' 당연히 할 일이 없죠. 이런 험한 세상에 누가 열일곱밖에 안된 어린 아이를 쓰려 하겠습니까? 하지만 내 아내를 그리 나무라지 말아주십시오. 그 사람은 절박해진 것 뿐입니다."
마지막 술꾼들이 여관문을 나섰다. 이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 그 악마사냥꾼밖에 없었다. 집주인은 콧노래를 부르며 선반을 걸레로 닦고 있었다.
"내 딸은 정말 예쁩니다. 그 고된 시절을 견뎌내고 아주 잘 컸습니다. 그 아이는 어떤 마음씨 좋은 부자 청년과 결혼했어야 했어요...하지만 운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더군요. 어느 날, 내가 술독에 빠져 정신없이 자고 있었을 때...그 아이가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걸 봤습니다. 두 눈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몸에서는 은근히 술과 담배 냄새가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내 머리맡에 돈뭉치를 내려놓았습니다. 나는 그때 알아버린 겁니다. 그 아이가 어떤 숭고한 희생을 한 건지.......그 아이는 정말로 착합니다. 난 그 아이가 천사의 환생이라고 해도 믿을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 누가 어린 창녀에게 신경 써주겠습니까?"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오늘 난 그 애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날 쓰레기같은 인간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벌을 받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행했던 수많은 극악무도한 일들을...그들은 너무 사악해서 스스로를 비난해야만 하죠.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 최악의 인간이 되어서, 그 사람들이 나를 맘껏 비난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나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밭길을 걸어갈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거 뿐이니까요."
말을 마친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다. 다음 날 나는 예정대로 신트리스트럼 대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자료를 수집한 뒤 다시 마을로 내려왔을때, 나는 온 마을 사람들이 떠들썩한 걸 보았다. 어떤 노인을 붙잡고 무슨 일인지 묻자,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마을에 어떤 지독한 술주정뱅이가 한 명 있는데, 오늘 자살했지 뭐요. 그 무능력한 양반 때문에 가족들만 불쌍하게 됐지..."
독자여.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악마는 무엇일까. 탐욕? 거짓? 아니면 최악의 대악마라 불리는 공포의 군주? 나는 가난이라고 대답하겠다. 지금까지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극악무도한 악마들과 싸워왔다. 그러나 우리의 낡은 체계 속에 둥지를 튼 빈곤의 악마는 몰라봤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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