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토리제니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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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02-02 22:56:39 KST | 조회 | 1,747 |
제목 |
이승현 사건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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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에어 경기가 있어서 프로리그를 시청했습니다. 응원하는 팀이 승리해서 기분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반면 좀 씁쓸한 느낌도 있더군요. 사실, 체포수사 건 뉴스가 뜨고 나서 처음으로 스타2 프로 경기를 본 것인데, 그 이후에 생각이 참 많아져서 여기에 끄적끄적거려봅니다.
저는 '유입유저'입니다. 저는 스타1을 열심히 한 사람도 아니고, 프로경기를 챙겨 본 사람도 아닙니다. 대학 동아리에서 가끔 재미로 스타1을 하곤 하는데, 아비터, 퀸, 리버 모두 모르는 상태였고, 친구에게 듣기 전에는 임요환, 홍진호 같은 유명한 프로 선수도 알지 못했습니다. 스타2를 해봤을 리가 더더욱 없겠죠.
'유입'이라는 단어를 통해 말씀드리려 하는 바는, 제가 게임을 통해서 스타2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프로 경기를 보면서 그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흥미를 느꼈고, 프로 경기를 지속적으로 시청하고 난 후에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는지 써보는 것이 앞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과 연관될 것 같습니다.
2014년 초였을 겁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롤을 시작했고, 대학에 가서도 열성적인 롤 팬이었던 저는 카토비체에서 열린 iem대회 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kt가 멋진 백도어 전략으로 경기를 따낸 그 장면을 보기 위해서 구글링을 하던 도중, 실수로 스타크래프트2 결승전 동영상을 띄우게 됩니다. 뭐지 하고 몇 분 후로 넘겼는데 초록색 빛의 맵이 맘에 들어 계속 시청을 하게 되었고, 김유진 선수의 표정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멋져 보였습니다.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고 결국 4대1 승리를 따내는 모습. 암흑기사가 들어와도 그냥 그림자를 보자마자 쿨지지를 치는 것까지 간지가 좔좔 흐르더군요. 감명깊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몰랐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진 않았고, 한참 동안 잊어버렸었습니다.
이게 기억나게 된 건 2015년 프로리그 개막전 즈음입니다. 이번에도 롤 영상을 네이버에서 틀다가 실수로 스타를 틀어버렸는데, 어떤 경기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견제가 화려했고 게임이 너무 박진감이 넘쳐서 이번에는 도저히 스킵할 수가 없더군요. 거의 9개월 전에 시청한 결승전도 생각나고 해서 프로 경기를 좀 더 챙겨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타리그를 보자마자 제 고민은 끝났습니다. 그때부터 전 고정 시청자가 되었고, 스타2 팬이 되었습니다. 시즌1 조성주 선수와 조중혁 선수의 결승전에서 제게 우상처럼 남아있던 김유진 선수를 아주 근거리에서 마주치고 나서는 직관도 다니는 꽤 열성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친구들한테 전파하고 다녔고, 같이 보자고 유도도 해서 친한 친구들은 현재 스타2를 다 봅니다.
스타2 팬이 되는 길은 다양하겠죠. 대다수 분들이 스타1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스타2가 나온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이 이 게임을 해봤기 때문에 아직 하고 있거나 재미 없어서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처럼 경기를 보다가 팬이 되는 경우도 적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에 더 세게 영향을 받는 이유입니다.
선수들에 대한 히스토리는 하나도 몰랐고, 오직 볼 수 있는 내용에 의해서만 이미지가 결정됬습니다. 해외 최강 폴트 최성훈 선수. 그리고 비슷하게 잘 하는 하이드라 신동원 선수. 응원하는 팀 에이스 조성주 선수. 뇌섹남 이병렬 선수. 프프전 기계 주성욱 선수. 개인리그나 해외대회에서는 잘하지만 프로리그 오면 못하는 강민수 선수. 프로의 세계에 정말 다양한 선수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앞의 선수들처럼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는 이승현도 있습니다.
처음으로 본 토너먼트 중 하나가 2015 GSL S1입니다. 우승자는 이승현이죠. 제 머리속에는 저그 하면 이승현입니다. 시즌3 들어서 폼이 많이 죽었었다 해도 그랬습니다. 스타리그 4강전 조중혁 선수와의 경기에서 졌어도 그래도 이승현 잘한다. 과거를 돌아보니 iem 타이페이에서 우승한 것도 이승현. 그것도 응원하는 팀 에이스를 꺾고 우승했던데. 월챔에서 외국인을 링으로만 셧아웃 시키는 모습, 역시 이승현. 참 이번 사건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드는 급의 사람이었네요.
최병현도 똑같은 류의 사건을 터뜨렸는데도 저에게 별 파장이 없었던 건 이 선수가 제가 스타를 본 이래 꾸준히 졌기 때문일 겁니다. GSL 코드 A에서 지는 모습으로 저에게 인상이 남았으니까요. 프로리그 출전은 무조건 패배였습니다. 근데 이승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친구 중에 스타1 시절부터 kt를 응원하는 놈이 있습니다. 원래 안봤는데 스타2를 다시 보게 만든 것도 접니다. 이 친구랑은 직관도 가끔 가고 했는데, 그 친구와 함께한 시간에도 이승현이 있네요. GSL 시즌 3 32강. 김유진 선수, 송병구 감독, 정우용 선수와 이승현이 한 조를 이뤘었는데, 제가 그렇게 좋아하던 김유진 선수와, 친구가 믿고 의지하는 바로 그 넥라가 나오는 날인데 놓칠 리가 없겠죠. 삼성역으로 직관 갔었습니다.
먼저 김유진 선수가 1등으로 진출해서 제 마음은 편했는데, 이승현이 남아있으니 저도 친구도 참 안타까웠죠. 친구 담배피는 거 따라나가서 떠들면서 이승현 잠깐 밖으로 나가서 담배피고 들어가는 거 보고 미성년이 담배핀다고 킬킬거렸던 기억. 메카닉에 계속 박으면서 좌절할 때 같이 좌절했던 기억. 박진영 해설이 '이제 안되는 것 알면서도 들어가야 합니다' 할 때 허탈했던 기억.
돌이켜보면 옛날에 뉴스에서 스타2를 본 적도 있었네요. 셧다운제 사건도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이승현이었습니다. 이것에서 미디어와 스포츠 강의 때 토론 주제를 끄집어 낸 적도 있고..
스타2와 연관된 추억 속에 이승현이라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 글에서도 명확하게 밝히기가 불가능할 만큼 생각이 어지럽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스타2에 대해서 거부감이 생긴 것은 아니고, 여전히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팀을 응원할 것이고 게임도 가끔 하겠죠. 근데 예전보다는 열정이 많이 식을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언제 뭐가 또 터질 지 모르겠고, 이 게임을 오래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딜 가나 이런 류의 사건은 많지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것일까요. 스타2가 싫지는 않지만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이라면 속히 아무 탈 없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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