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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빌리언빌리스
작성일 2011-09-28 12:45:28 KST 조회 325
제목
역사떡밥 나온 김에 이순신은 육전에서도 명장이었을 것 같음.



방금 누가 임진왜란 떡밥 던진 김에 저도 덥썩. 이순신은 육전 해도 명장 아니었을까요.



이순신은 그 쪼잔해 보일 정도로의 치밀한 기록하며(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었다는 반증) 녹둔도 전투에서도 지형을 이요해 기습해서 숫적 열세에도 불구, 포로 되찾아온 걸 봐도 그렇죠. 애초에 50살 가까히 되서 수군제독 될 떄까지 수군을 격어본 적이 없었던 육전 장수였으니까요.


임진왜란때 육전 장수로 활약해도 명장으로 남지 않았을까요. 지금처럼 한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거 없이 처음 원균을 좌수사로 박고 이순신을 우수사로 박아놨으면 임진왜란 시작할때 일본 상륙선이 다 작살나면서 전쟁 끝났을지도... 우수영이 좌수영보다 규모가 5배 가까히 컸는데(판옥선이 100척 이상이라죠?) 원균이 싸우기도 전에 겁먹고 다 태웠으니까요 __;


ㅇ_ㅇ 이순신이 세계적인 명장들이랑 '객관적으로 비교해서' 전쟁 경험 횟수나 홈그라운드 잇점 때문에 여러모로 전과에서는 부족해 보이기는 하는데 오히려 육전 장수였으면 해군보다 더 큰 업적 세웠을 수도 있겠네요. 해군은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라서 중요성이 육군에 비해서는 덜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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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부기팝 (2011-09-28 12:47:3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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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군 사령관은 지방에서 세금 걷어서 쓸 수 있었지만 육군은 그러기가 힘듬.
할 수 있는게 오히려 부족햇을 듯.
아이콘 광휘의날개 (2011-09-28 12:49:1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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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순신 장군님은 초기엔 육군장수였음..

일단 발령지가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방어하는 임무를 띄던 장수인데.. 나름 선전했었음..

문제는 당시 상관이 등신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고생 크리
아이콘 광휘의날개 (2011-09-28 12:49:3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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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일단 위키백과 일부 발췌임

무과에 응시, 급제
대대로 문신 집안 출신이었지만, 20대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하여 28살 때에 무과(武科)에 응시하였다. 그러나 이때 시험을 보던 중 타고 있던 말이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여 버드나무 가지로 부목을 대고 시험을 계속하였지만 결국 낙방했다.
4년 뒤인 1576년(선조 9년) 32살에 비로소 과거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처음 관직에 나섰고, 1579년에는 10개월간 해미에서 동안 훈련원 봉사로 근무하였다. 그 뒤 북방 국경 지대인 함경도로 가서 여진족 방어를 맡았으며, 1586년(선조 19년)에 사복시 주부가 되고 이어 조산만호(造山萬戶) 겸 녹도 둔전사의(鹿島 屯田事宜)가 되었다.[6] 1587년(선조 20년) 당시 조산만호이던 이순신은 북방 여진족의 약탈, 침략을 막고자 수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추가 병력을 요청하였으나, 절도사 이일(李鎰)은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 결국 그해 가을 여진족이 침입하여 많은 양민을 학살하니 이순신은 적은 병력으로 이를 맞아 싸워 포로 60여 명을 탈환하였으나, 녹둔도(鹿屯島) 병영이 와해되었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경흥부사 이경록(李慶祿)과 함께 여진족의 침입 때 패하였다는 죄를 받아 수금되었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되었다. 사실 이순신은 혼자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여진족을 무찔렀고 당시 이순신의 직속상관으로서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친 이일의 모함으로 이렇게 된 것이었다.[7] 이일은 자신의 죄를 이순신에게 뒤집어씌우고 벌을 회피한 것이다. 이후 이순신은 순변사 휘하에서 종군하며 여진족 장수 우을기내(于乙其乃)를 꾀어내어 잡아서 죄를 사면받았다.
아이콘 타락한아서스 (2011-09-28 12:52:0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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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임진왜란을 승리 한 결정적 역활을 한게 수군이오
일본의 최대 약점이 수군 전투력이오
근데 육전은 일본의 최대 강점 인데 더 큰 공을 어떻게 세우죠?
빌리언빌리스 (2011-09-28 12:52:4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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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팝 // 아... 조선인 걸 까먹었네요. 조선은 명장이 활약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죠. 이순신도 모든 움직임을 조정에 다 보고하고 허락받았어야 했으니... 반란 막기에는 좋지만 전쟁에서는 호구가 되는 조선 -_-...

광휘의 날개 // 애초에 비변사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좌수사로 선조에게 골라뽑힌 것도 이순신이 뛰어난 장수로 인식되었다는 건데, 육군 장수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것 같습니다. 육지에서 싸웠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지는 발췌 내용이에요 ㅇ_ㅇ;
빌리언빌리스 (2011-09-28 12:56:2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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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아서스 //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조총이 무적의 신병기도 아니었고, 탄금대 전투도 신립의 작전미스가 아니었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을 테니까요. 실제로 명나라 군대나 의병들도 일본군을 여러번 격파했는데 이순신이었다면 그 특유의 자만심 없는 꼼꼼함으로 공을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나폴레옹이 이런 스타일이었죠. 모든 상황 꼼꼼하게 고려해서 작전 짜는...

일본 입장에서도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된 전쟁은 아니었기에 수군 보급이 힘들더라도 장기전이 되면 충분히 격퇴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븐 보일(?)분등의 임진왜란에 대해 연구한 외서 사무라이 전쟁과 임진즈 워에서 둘다 명나라가 돕지 않거나, 이순신이 없거나, 둘 다는 아니고 둘 중 하나가 없어도 궁국적으로는 조선이 이겼을 거라고 예상하더라고요.
아이콘 광휘의날개 (2011-09-28 12:57:0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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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일단 육전에서 이정도로 이름을 날리긴 힘들꺼임..

왜냐면.. 일본군들은 육전에서만큼은 전국시대를 거쳐오면서 상당한 경험을 가진 정예병이였고, 무기 수준도 더 우월했음..

아무리 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전략적 식견을 가지신 분이래도 중과부적이라고 생각함..
아이콘 광휘의날개 (2011-09-28 12:58:1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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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군사의 질이 너무 달랐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이콘 타락한아서스 (2011-09-28 13:02:2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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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개개인의 접근전,난전 능력이 사무라이가 좋았을듯..조선은 내전이 없었어서
그런 능력이 무뎌졌을듯
그래서 조선은 성벽전,수군전으로 장기전을 유도...ㅋ
아이콘 광휘의날개 (2011-09-28 13:04:1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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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육전이라는것은 해전같이 자기 뜻대로 병력 운용하기도 쉽지가 않은데다가 결정적으로 육전에는 이순신장군이 해군에서 가지는 위치만큼 오르기도 힘들었음..

이모저모 따져봐도 그냥 우수한 전과를 가진 장수로 남을 확율이 더 높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IF 할게 너무 많아요 ㅠㅠ 고려해야할 사항들이 너무 많아서 전 더이상 결론이 나오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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