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18시 40분
저녁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접속을 해도 딱히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저 습관적으로 접속할 뿐이다.
만랩찍은지 꼬박 5개월이다.
아이템 욕심이 없어서인지, 에픽 하나 없음에도 모으는 건 엄두도 안난다.
300까지 찍은거 2개 지운거 까지해서 6번째 전문직업도
새로 올리기 귀찮을 뿐이다.
그나마 낚시를 안올린게 다행이다.
오그리마 연못에서 하루 3~4정도 숙련을 올린다.
(이제 낚시도 내일이면 끝이구만...)
전쟁에 별 취미가 있는것도 아니니,
하루종일 올라가는 전쟁메시지를 봐도 무덤덤하다.
‘쓰랄형님은 지켜야지’ 하는 생각도 없어진지 오래다.
인구비율 4:1의 섭에선 공세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들 안목도 있고 해서 얼라쪽의 대규모 오그리마 공세가 있을 때만
예의상 싸운다.
재미는 없다.
여느 인던에서와 마찬가지로 몇시간 내내 힐만한다.
기여도 정말 안오른다..... 불만은 없다. 올릴려고 생각한 적도 없으니까.
그저 예의상 참가다.
은행앞 돌에 앉아있는, 반쯤은 봉인됐다고 봐도 무방할 내 캐릭은 언제나
아이디앞에 <자리비움>이란 명찰을 달고있다.
요즘 들어 낯선 아이디의 만랩사제들이 많이 보이지만 아직도 모자를때가
있는 모양이다.
하루 몇 번씩 귓말이 온다.
길드원들이나 다른 인연으로 아시는 분들이 인던 퀘스트 도움을 요청하면
가끔씩은 움직인다.
1파티로 인던가서 퀘스트 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니,
절반쯤 퇴역한 사제라도 외면할 수만은 없다.
인던기피증 걸린 신성사제 .... 그게 지금의 나다.
6월 5일 20시 07분
첨탑으로 향한다.
또 핼프 요청이다.
돌위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섭에 어지간한 분들은 다들 한마디씩한다.
“오랜만에 돌에서 내려오셨군요.”
싱급게 웃고 만다.
속으로 걱정은 된다.
수리비 걱정이다.
현재 전 재산은 3골드에 조금 못미친다.
얼마전에 젖소선달님이랑 둘이서 화산심장부 놀러 갔다가 맞아죽는 바람에
수리도 못할뻔했다.
때마침 핼프요청에 응해서 엠씨욱까님한테 수리비 5골드를 지원받았다.
프로게이머도 아닌 주제에....
용병이라지만 이왕 도와주러 온거니만큼 최선을 다한다.
보루와 동부 예배당에서 몇 개씩의 일급 마나랑 물약을 틈틈이 산다.
인벤엔 각 20개 정도의 물약은 늘 있다.
50후반 랩 분들 나락 퀘스트 핼프때면 저글링방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아슬아슬한 주머니 털어서 산 물약을 하나씩 나눠드린다..
솔로잉 안한지 3달째 ,,,돈이 모일 리가 없다.
3파티 풀로 채워서 가는 상층 파티...
왜 도와달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많아야 5~6마리가 무리 지어있는 몹들을 15명이서 개패듯 두들겨 팬다.
캐스팅 계열 몹들은 스킬 한번 못하고 눕는다.
어지간한 오크 무리는 광역으로 쓸어버린다.
이정도면 몹들 입에서 욕나올만도 한데...
드라키가 눕는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아이템 가지고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자기 해당 직업템이 안나와서 실망이라는 푸념들을 뒤로 하고 귀환한다.
한번도 모아야겠다는 생각 안했지만 다 모여져 있다.
시간 지나면 알아서 모일 아이템들일 뿐이다.
다시 돌위로.... 여기가 내 자리다.
‘쓰랄은 얼라들 처분에 맡기지만, 이 돌을 캐가면 곤란하지..’
6월 5일 21시 33분
내일이 현충일이라 화산레이드를 가는 모양이다.
오그리마 은행앞이 오랜만에 번잡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섭에선 호드 레이드가 있는 날은
얼라쪽의 대규모 침공은 없다.
누군가가 얼라쪽에 통보하고 얼라쪽에서도 자제를 하는 모양이다.
최근들어 신사협정-이라기엔 조금은 이상하지만-도 잘 지켜지고 있진 않지만,
2~3공대 규모의 쓰랄형님을 눕힐만한 전력은 투입되질 않았다.
얼라의 허락없으면 레이드조차 힘든 섭 형편이다.
골때린다.
6월 5일 21시 50분
레이드 팀이 출발한다.
오그리마엔 적막함이 감돈다.
“칼바위 언덕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전쟁메시지가 뜬다.
10랩도 안되는 유저들 가는 곳이다.
아마도 얼라쪽 몇몇분들 와서 장난하시는 모양.
이미 이 정도엔 무감각해진지 오래다.
‘오늘은 네임드 몇 마리 잡을려나’
참가하진 않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다른섭에서 레이드가 시작될때 꿈도 못꾸고 있던 호드다.
늦었지만 잠재력은 충분하다.
몇 번의 경험은 우리 호드를 강하게 단련시켰겠지.
이젠 그만한 경험도 있고 때만 기다리면 낭보가 오겠거니 생각한다.
‘정말로 가고 싶었는데..’
섭에서 처음으로 오닉시아 인장을 만들었고,
화산 직행퀘도 제일 먼저 끝냈다.
상위 몇몇 축섭 같았으면 ‘지금쯤 계시 풀셋일지도 모르지’
다만 기다림이 너무 길었을 뿐이다.
몇 달을 기다리다가 레이드 자체가 무의미해져버렸다.
출출하다 밥이나먹자.
6월 6일 03시 46분
저녁먹고 티브이앞에 누웠다가 잠이든 모양이다.
재접해보니 아무도없다.
레이드는 잘끝났나 모르겠다.
물어볼 분들도 없다.
“오그리마가 침공받고 있습니다.”
“오그리마가 침공받고 있습니다.”
“오그리마가 침공받고 있습니다.”
노란색 글씨가 계속 올라간다.
돌위에서서 뒤로 돌아본다.
흠 낯선 색깔의 아이디가 보인다.
‘제길 손님들 또 오셨네’
천골마에 올랐다.
아직도 4백골이란 빚더미에 올라있게 해준 말이지만, 걱정은 없다.
언젠가 갚겠지...아니면 떼먹으면 그만이다.
천엽이한테 조금 미안할뿐이다.
‘흠 1공대는 좀 안되는듯하네’
“쓰랄형님 방으로 모이세요”
붉은 색 외침이 뜬다.
어디 있었는지 몇몇분들은 지켜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절대로 그럴수는 없겠지만 돌 가져가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말을 돌려 쓰랄형님 방으로 간다.
퇴역 비슷하지만 나도 호드다.
4:1 비율이 넘는 섭에선 엔피시 힘을 빌리지 않고는 방어가 힘들다.
맞서 싸울 엄두는.... 글쎄 1:1.5정도가 아닐까?
대족장을 죽이러 오는 적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에픽 열 자루 백 자루보다 값어치 있는 쓰랄의 수급 아닌가...
'절묘한 타이밍이군.'
6월 6일 03시 48분
트롤 대표 볼진형님과 대족장님 사이에 만랩 다섯명과 54랩 한 명이 섰다.
문밖에 온통 노란 글씨의 아이디들.
‘조금만 놀다가 가라’ 마음속으로 바래본다.
얼라들 진입시도...
입구의 몇몇 엔피시 경비들이 점사와 광역에 쓰러진다.
볼진형님 출동 ...
큰 도움은 안되겠지만, 호드유저들도 나갈 차례다.
이미 할 수있는 각종 버프는 다받았다.
드루분이 없어서 발바닥은 없다.
타겟은 볼진형님....상치 4래밸은 키보드 3번에 올려져있다.
한번이면 죽는다...일반섭이라 한번의 기회라도 있다.
6월 6일 03시 50분
유령인 채로 오그리마를 향해 달린다.
급할건 없다.
1공대규모인데 뭘 어쩌겠는가.
공개창에 “볼진 죽어요” 라는 메시지가 뜬다.
생각보단 많은 숫자인가보다.
랩이 낮아 전투에 참가하시지 못하는 저랩유저분이신듯하다.
아이디가 전혀 생소하다.
6월 6일 03시 54분
이젠 천천히 ....
오그리마 정문이 보이는 시점이라, 약간뒤에서 뛰어오고있는
다른 다섯분의 유령과 같이 부활하면 된다.
좀전에 쓰랄형님의 어쓰퀘이크에 반했다면서 얼라들이 격퇴됐음을 알리는 메시지도 있었다.
1파티 + 1명의 호드공격대 전체가 웃었다.
얼라들 물리쳐서 좋다고 웃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냥 한번 웃고 말았다.
누군가가 농담을 한다.
“빨리 부활해서 무덤이라도 지킬까요?‘
6명이서 1개공대의 무덤부활을 지킬 수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거다.
또 한번 웃고 만다.
이런 농담 지겹다.
오그리마 정문이 보인다.
‘그만하고 가줬으면...’
나란히 시체 찾는 다른분들도 같은 마음이리라.
6월 6일 03시 55분
“헉..................”
“!”
정문을 들어서니 놀라운 광경이다.
여관과 은행사이가 온통 노란색 아이디 천지다.
경비병 열댓병은 칼한번 못휘둘러보고 죽어가고있고,
한쪽엔 대군주 룬탁의 시체가 보인다.
키보드에 손가락 힘이 가해진다.
‘위기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난다.
오늘은 엔피씨를 도와줄 유저조차 없다.
2공대는 넘을듯한 인원.
좀전에 쓰랄 형님이 물리친 1공대는 분명히 아니다,
뒤에서 뛰어오면 1분이면 이곳에 도착할만한 시간정도 ...
시체를 찾고 부산해진다.
접속한 전체 호드유저에게 공개창으로, 길드창으로, 귓말로 메시지가 간다.
6월 6일 04시 00분
현재 호드 접속자 33명중 20명이 쓰랄형님을 좌우로 서있다.
한분이 귀환 쿨탐이라 오는 중이지만 의미가 있을까....
볼진을 비롯한 경비병을 물리친 3공대 규모의 얼라들은
이미 방안으로 진입해있다.
쓰랄을 앞두고 마지막 작전을 점검하는 듯하다.
그 시간이 길기야 할까, 경비병 리잰 생각 안할리 없으니 길어야 10초 20초.
온다.....
6월 6일 04시 01분
나를 제외한 호드분들 모두 유령상태다.
쓰랄형님 피가 30% 빠졌다.
다른 분들 따라 형님이라고 부르지만,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오크 엔피시가
왠지 안쓰럽다.
몇십초 늦게 죽는 게 다른 분들께 미안하다.
이제 내 차례다.
보호막쓰고 대족장에게 상급치유 4래벨 한번.
그리고나서 영혼의 절규 한번.
4초동안 할 일하고... 죽는 건 그것보다 더 짧을 거다.
6월 6일 04시 10분
시체 앞에서 부활할 20명과 막 귀환해서 아직은 파란색 아이디인 1명이
부활과 동시에 할 일을 얘기했다.
뛰어오면서 이미 대족장의 피가 20% 미만임을 전해 들었던 바,
전쟁마크가 풀릴 때까지 기다릴 여유는 없다.
이번엔 앞서보다 더 빠르겠지만, 크게 억울할 건 없다.
1달전 명예패치때부터 예견하던 일이다.
어쩌면 생각보단 많이 늦은 건지도 모르겠다.
공대장이 카운트를 한다...
3..2..1..부활.
6월 6일 04시 12분
21명 호드 공격대 전원과
전쟁 비활성화 상태로 소식을 전하던 21랩 오크 도적 1명과 함께,
쓰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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