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이다. 서울시 노원구의 어느 중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XP 회원들 중에 나처럼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망언룡이라 불리는 어느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와우는 만 15세 이상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게임이고, XP 회원이 되려면 주민번호인증을 해야 되니까. 하지만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지금 대부분의 학교가 곧 기말고사 시험을 본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꺼다.
특목고로 진학하게 될 우등생들은 예외겠지만, 일반고나 실업고로 진학할 학생들에게는 중학교에 들어와서 보는 12번의 시험이 모두 중요하다. 이 모든 시험 점수가 고등학교 내신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분야엔 당최 관심이 없는 무개념이라 내신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다. 단지 고등학교 갈때 필요한 점수라고만 알고 있다. 중학생들이 시험기간만 되면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보는 것도 다 내신을 높여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다.
물론 중학교 공부의 목적은 이것만이 아니다.
중학교 시절에 배우는 교과 내용의 상당수는 고등학교 교과 내용으로
이어진다. 암기과목은 예외지만, 우리가 흔히 '국영수+과'라고 부르는
이 4가지 주요 과목들은 대부분 옛날에 배웠던 내용을 토대로 공부하고 익혀야 하는 과목이다. 따라서, 중학교 때 이 과목들을 게을리 하면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이 과목들을 배우기 힘들어지고, 나아가서 고등학교 내신이 크게 깎이게 되고, 더 나아가서 가고 싶은 대학교에 갈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S.K.Y.라고 부르는 명문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미리미리 철저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에 일체 도움이 되지 않는 방해요소들을 멀리하고 공부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가까이 해야 한다. 방해요소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요즘 청소년들 최대의 적, 컴퓨터 게임이다.
나는 주제에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해서 중학교 국사 교사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금쪽같은 중학교 시절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시간에, 서둘러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눈앞의 강력한 욕망에 휩싸여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
와우 오픈베타 시절부터 그랬다. 하필 와우 오픈베타가 처음 시작 2004년 11월은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한달여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와우가 블리자드의 차기작이고, 내가 좋아하던 워크래프트 세계를 온라인으로 옮겨놓았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하던 공부를 모두 멈추고, 그 후 약 한달여 동안 와우를 하는데만 열중했다.
내가 공부는 안 하고 와우만 하자, 부모님께서는 나를 심하게 꾸중하셨고, 나는 와우를 그만두려 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안 들키기 위해 밤에 몰래 컴터를 키고 와우를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들키고 말았고, 나는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 주민번호를 도용해서 만든 내 와우 계정을 삭제해야만 했다.
그러나, 와우가 어디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임이던가.
나는 다시 계정을 만들고 와우를 계속했다. 베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와우에 대한 내 욕망은 줄어들지 않았고, 어머니 몰래 돈을 모아 와우 계정비로 헌납해 와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키고, 지우고, 만들고, 들키고, 지우고, 만들고를 반복하는 내 와우인생과 함께, 성적 하락, 성적 하락, 성적 하락을 반복하는 내 학교 생활도 계속 이어졌다.
3학년 2학기가 되고, 마지막 중간고사를 또다시 망쳐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는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시는 신세가 되었다. 집안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살던 집을 빚쟁이들에게 빼았기고, 혼자 사시는 작은할머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차마 와우를 계속할 수 없었고, 이 일을 계기로 열심히 공부해서 기말고사만은 잘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 때 불타는 성전 베타테스터 모집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 마음은 계속해서 '신청하면 안돼! 신청하면 안돼!'를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빌어먹을 손은 마우스 커서와 함께, 키보드 자판과 함께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당첨자 명단에는 내 이름이 당당히 적혀있었다. 몇일 뒤, 내 몸은 더 이상 종이와 필기도구들 사이에 있지 않았다. 대신 온갖 소리를 내고 온갖 것들이 움직이는 기계들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기말고사는 계속해서 다가왔다.
이제 우리학교 기말고사는 3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처참한 성적표와 함께 나의 중학생으로써의 인생은 종결될 것이다. 어쩌면 고등학생으로써의 인생도 이와 같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인생 전체가 이 꼴이 될지도 모른다. 솔직히 고등학교 가서 제대로 공부를 할수 있으리란 자신은 없다. 와우가 너무나도 나를 망쳐 놓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나를 망친 것은 와우가 아니라 와우를 막지 않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자유 게시판은 이런 쓸데없는 글을 쓰는 곳이 아니라, 와우를 하면서 일어났던 일이나 그에 대한 생각을 쓰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긴 내용의, 이 게시판과는 상관없는 내용의 글을 쓴 이유는,지금 자신이 진짜 해야할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와우를 포함한 컴퓨터 게임이나, 그밖의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어서다. 하필이면 이 게시판에 쓴 이유는, 와우 XP의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다. 비록 이 홈페이지에 가입한 지도 얼마 안됐고, 별로 활동도 하지 않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지만, 이런 사람들이 나처럼 와우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XP의 와우저 여러분, 앞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로그인 하실 때,
부디 이 말을 입으로 되뇌이신 다음, 로그인 해주세요.
'내가 지금 진짜 해야될 일이 뭐더라? 혹시 안한 일이라도 있나?'
솔직히 말해서, 이 글이 너무 길어서 읽으시는 분들도 없을 테고, 내용도 공익 캠페인 같은 데서 한번쯤 보여준 내용이라 식상하실 테지만, 그래도 꼭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소한 노움 눈동자 크기만큼의 도움은 될테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내가 서두에서 나쁘게 말한 망언룡군, 나처럼 중 3인데도,
와우를 하면서도, 외고에 합격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고 부럽다. 늦었지만 외고 합격 축하하고,
열공하고 즐와하기를 바란다.
그외, 적절한 선에서 와우를 즐기며 자신이 해야 할 일까지
열심히 하는 XP 와우저들도 즐와하시기를.
추신 2: 망언룡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는데 정작 망언룡 자신은
댓글조차 안 달았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