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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채표까스활명수
작성일	2022-07-09 19:42:12 KST	조회	1,601
제목	(TRPG) 최초의 숲과 생명들에 대한 짧은 글

X의 세 딸이 아직 우애가 깊었을 적에, 아버지 X와 함께 나무를 심은 일이 있었다. 비단 한 그루만 심은 것이 아니라, 여러 그루를 군데군데 심어, 자랐을 때 보기 좋게끔 하였다. 세 여신이 좋아하는 나무와 동식물이 제각기 달라서 다투기도 했지만, 지혜로운 아버지의 조율 덕에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다.

그 중의 가장 어여쁜 한 그루는 아버지와 세 딸이 손을 한데로 모아 숲 한 가운데에 심었으니, 이 묘목이 훗날 엑스페리온의 근간을 이루는 이데아의 첫 번째 둥지가 되었다.

맨 먼저 나무뿌리에 닿았던 바위와 자갈에서 최초의 드워프와 노움이 태어났다. 그들은 더욱더 넓은 터전을 꿈꾸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무뿌리와 깊이 얽혀있던 균사와 땅 위 가까이 피어있던 이끼와 버섯 같은 것에서 최초의 오크, 고블린, 그리고 그들의 형제종족이 함께 탄생했다. 이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숨 쉬며 살았고, 숲의 영역을 점차 넓혀나갔다.

나무둥치를 수없이 타고 오르는 다른 원시적인 종족들이 점차 번성해나갔고, 최초의 숲은 뿌리와 그 주변이 만들어낸 이데아와 함께 공존해가며 하늘 높이 성장했다.

자연스럽게 가지와 잎사귀, 꽃망울에서 새로운 이데아가 태어났다. 최초의 엘프들은 나뭇가지를 스치는 산들바람과 나부끼는 잎사귀를 닮아 섬세했으며, 나무와 하늘의 힘을 동시에 지니고 태어났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창조주가 누구인지 깨달았고, 그 덕에 신들과 간접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다.

엘프들이 태어나서 고유한 문명을 이루고 처음 나무들이 새 열매를 맺고 싹을 퍼뜨릴 적에 마지막 이데아가 태어났다. 숲의 식솔들이 먹고 소화한 열매와 그 씨앗에서 태어난 최초의 와일드본은 여느 숲의 식솔들을 닮았고, 숲의 식솔들은 그가 막내인 줄로만 알고 기뻐하며 갖가지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숲의 식솔 중 누군가가 열매를 먹은 뒤에 죽음을 맞이하고, 시체가 살아생전 마지막에 먹었던 열매 속 씨앗이 발아하여 새로운 이데아가 태어났다. 그는 숲의 식솔 중 그 누구도 닮지 않았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와일드본이 마지막 이데아인 줄로만 알고 있었고, 자연히 그에게 온갖 관심이 쏠려 진짜로 마지막으로 태어난 이데아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축복조차도 없었다.

마지막 이데아의 이름은 인간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났던 시체와 미처 발아하지 않은 다른 씨앗을 가지고 숲에서 멀리 떨어져 엑스페리온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가 떠나기 전에 어떠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가 슬퍼했는지, 외로워했는지, 하다못해 원망스러워하며 떠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짧게 써봤습니다. 기존 세계관이랑 잘 어울릴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