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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로코코
작성일 2016-05-13 13:59:02 KST 조회 774
제목
곡성(스포 아주 쎔)

영화에 대해

"밑줄을 치고 이탈릭체로 쓴 낱말 등은 내게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이지. 그것은 독자를 모독하고 바보 취급하는 것이야. 마치 '이것 봐! 여길 주목해 봐, 여기에 의미가 있는 거라니까!'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지."

스페인 소설가 미겔 데 우나무노의 말이에요. 저는 같은 맥락에서 요즘 일본 탐정소설에서 유행한다는 이른바 '서술트릭'도 싫어합니다. 독자들과 공평한 게임을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작가가 직접 나서서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재단하고 미끼가 되는 장면에 밑줄을 치는 거죠.

이게 영화에선 맥거핀과 동등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영화는 시각 매체인데다, 편집을 통해 감독의 의도가 매체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서술트릭보다 더할지도 모르겠네요.

애석하게도 곡성은 맥거핀 영화입니다. 심지어 영화 포스터에서도 전면광고를 때리죠. <미끼를 물었다.>

그래서 제가 실망을 해야 했을까요?

놀랍게도 아주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영화의 소재들은 거의 쓰까-잡탕에 가깝지만, 플롯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일관성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구요. 곡성은 맥거핀을 다룬 맥거핀에 대한 영화에요. 모호한 암시와 강조선이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의심이 구체화되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겐 현실이 됩니다. 영화가 소품으로 즐겨 쓰는 종교적 색체들도 이런 주제와 잘 어울려요.

 

편집은 아주 강렬합니다. 중반부의 굿씬은 세련되고 야만적인 귀기가 느껴질 정도구요.(물론 제가 민간굿에 대해 아는 바는 없습니다만) 관객들을 대놓고 혼동시키기 위해 꼼꼼하게 준비한 복선들도 볼만 합니다. 흠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요. 사실 박수무당의 존재와 행적이 오니의 노련한 현혹술과 잘 합치가 안되는 게 사실이에요.

 

 

느낀 점

듀나가 이 영화를 '한국영화'라 칭했는데, 그 말 그대로입니다. 한국에서만 만들 수 있다고 해야하나, 한국인들만 납득할 수 있다고 해야하나. 우선 소재들이 그래요. 형사극, 스릴러, 오컬트, 향토성(?)이 마구잡이로 섞여 들어가있죠. 그렇다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비틀거리지도 않아요. 곡성은 쌈박하게 직접 비현실의 영역을 뚫고 들어갑니다.

 

보통 이 영화를 다른 나라에서 만들었다면, 분명 귀신 이야기와 논리적인 추리극 사이의 간극에서 덤벙댔을 겁니다. 주인공은 경찰이고, 합리적이고도 냉철한 수사로 논리의 얼개를 만들어 범인을 잡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잡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민 거니까요. 하지만 곡성의 주인공은 대놓고 남의 주거지를 침입하고, 지 딸 살리겠다고 다른 사람을 협박하고 살해를 모의하는 것도 게의치 않아요. 이 무슨 큰일 날 인성입니까;

 

영화 초반에 마을 사람들이 겪는 '증상' 에 대해서 곧바로 두 가지 설이 제기되는데, 1.귀신에게 홀렸다. 2.부검하니까 독이 있는 버섯(?)을 먹고 그리 된 것이란다. 가 있습니다. 여기서 초중반부에 2번은 곧바로 폐기됩니다. 과학의 힘은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하고, 그 빈자리를 요술과 선무당이 채우는 거에요.

 

어쩌면 이게 바로 한국식일지도 몰라요 문명화된 시대의 사람들은 이게 미친 짓인줄 다 알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결국 민간신앙이 가진 신묘한 힘에 귀의하게 되고, 잡신들의 세계가 제공하는 신묘한 논리에 알아서 수긍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나름의 개연성을 유지하고 플롯은 귀신들린 것처럼 착착 진행되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세속화된 민족이 아닐지도 몰라요. 거의 수천년동안 민간굿과 샤머니즘의 전통은 이 땅 민중들의 입과 귀를 통해 계속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으니까요. 그것이 곡성의 "세련되게 기괴한" 분위기를 만드는 원천이 아니었나 싶어요. 어쩌면 한국 영화가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촌스러우면서도 기이한 몰입력을 가진 분위기의 원천일수도.

 

어쨌든 곡성은 좋은 영화에요. 꼭 네이버 시스템처럼 점수를 매겨야 한다면 7.5-8.0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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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Jin.K (2016-05-13 14:31:4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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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걸 보니 갑자기 보고싶어지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아이콘 고추장청정원 (2016-05-13 15:48:3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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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8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굿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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