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XP

서브 메뉴

Page. 1 / 12522 [내 메뉴에 추가]
글쓰기
작성자 아이콘 김노숙
작성일 2014-01-02 21:20:26 KST 조회 164
제목
요즘 다시 쓰고 있는 것


  안세희 씨가 옥탑방 창문을 잠깐 여니 겨울밤의 냉기가 비집어들었다. 세희씨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을 깊게 들이켰다. 어차피 모든 흡연자들은 겨울의 냉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익숙해져야 하는 법이다. 허파를 가득 채운 불편한 회색 공기를 가득 내뿜으며 그녀는 익숙한 창밖의 광경을 습관적으로 둘러보았다.
  서울의 어떤 대학 근처, 오밀조밀하게 모인 허름한 벽돌 건물들, 집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혼잡한 골목길의 미로를 만들어낸다. 대부분 학생들이나 세희 씨 같은 어른들에게 월세를 내주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작은 마을은 오후 11시가 약간 지난 지금 전등빛으로 수놓여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광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잠들지 않고 함께 비슷한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감. 세희 씨는 약간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언제나처럼 찾아오는 짧은 지독한 현기증과 함께 안세희 씨의 세상이 조금은 낯선 방향으로 다르게 보였다. 그녀가 내뿜은 회색빛 연기는 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갯빛 구름이 되어 낯선 색깔의 하늘로 뭉게뭉게 퍼져갔다. 어둠이 내린 건물들은 둥그스름한 달이 되어 어느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희 씨는 시선을 즐기며 아래를 내려보았다가 잠시 움츠러들었다. 창문 바깥은 어느새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변해 있었다. 물론 그녀는 그 낭떠러지가 채 2 미터도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지각은 그녀의 감정을 속였다. 세희 씨는 희미한 웃음을 띄며 몇 모금 들이키지도 않은 담배를 낭떠러지의 저편으로 떨어뜨려보냈다. 담배가 비명을 지르며 끝없는 심연으로 사라져갔다. 

  삼 년 전, 안세희 씨는 허기와 부족함을 지병으로 안고 사는 매우 평범한 전업 작가였다. 20대 시절에는 서른이 되면 무언가 바뀌리라고 생각했으나 서른이 되는 그 순간 세상이 그녀에게 마법 같은 팡파레를 들려주지 않았다. 서른은 그저 서른이었을 뿐, 그녀의 삶은 항상 그러던 대로 그저 그랬다. 아니 사실 그저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어떤 가금류의 형편없는 죽음'으로 당당하게 등단한 이후 그녀는 그녀의 삶이 항시 완전한 문학 추구에 바쳐지리라고 생각했으나 항상 시상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배고픔과 가난이었다. 팍팍한 삶 속에 하루에 피우는 담배 숫자만 늘어났고 담뱃값은 그녀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었다. 
  지독하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는 일반적이지 않은 우울감을 키워나갔다.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야 어딨겠냐만은 대지의 두께와 두개골의 두께를 비교해보는 것은 - 그것도 고공에서의 추락 이후에 - 일반적인 우울함과는 그닥 연관이 없는 일이다. 30대의 첫번째 생일 그녀는 5층에서 뛰어내렸다.
  짧은 추락 동안 그녀는 비할 데 없는 상쾌함을 느꼈다. 너무 빠르게 다가오는 대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오며 그녀는 생각했다.
 
  '아, 더 높은 곳에서 뛸걸 그랬어.'
 
  그 짧은 생각을 끝으로 안세희 씨의 기억은 멈췄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평생 철저히 남아 있겠지만.
  세희 씨는 아직 날이 밝을 때를 선택했기 때문에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빠르게 뭉개진 안세희 씨를 처리할 119를 불렀다. 앰뷸런스는 신속하게 세희 씨를 근처의 대학병원으로 데려갔다. 추락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그렇게 확실한 죽음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세희 씨의 두개골은 부서졌고 도로의 파편이 세희 씨의 뇌 속에 들어갔지만, 의사들은 세희 씨를 긴 시간의 수술 끝에 어떻게든 살려냈다. 무너진 두개골은 많은 보형물로 재건되었고 세희 씨의 뇌를 비집고 들어간 파편들은 대부분 제거되었다.
  몇 주일 후 세희 씨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 세상을 되찾은 그녀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 애초에 그녀에게 몇 주일의 공백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눈을 뜨고, 생경한 천장을 바라보고, 입을 여는 것을 다시금 연습해보고, 마지막으로 부딪힌 머리 쪽이 부어올라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소리를 냈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뭔가 멋진 말을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녀의 두개골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는 지지대 때문에 세희 씨는 별다른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동물 같은 신음 소리만 낼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의식을 찾았다는 것이고 근처에 있던 간호사에게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몇 가지 절차 후에 그녀는 일반 2인실로 옮겨갈 수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단호하게 6인실에서 시끄러움과 더러움과 함께 지내기를 절실히 바랐으나 병원 행정팀은 비어있는 2인실을 채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세희 씨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세희 씨의 손을 잡고 교훈적이고 감동적이지만 진부한 얘기를 하였다. 세희 씨에게는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더욱 비관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아아아 글 잘 쓰고 싶다

지속적인 허위 신고시 신고자가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고 사유를 입력하십시오:

발도장 찍기
아이콘 WG완비탄 (2014-01-02 21:27:05 KST)
0↑ ↓0
센스 이미지
30대의 첫번째 생일 그녀는 5층에서 뛰어내렸다.
명불허전
댓글을 등록하려면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 로그인 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롤토체스 TFT - 롤체지지 LoLCHESS.GG
소환사의 협곡부터 칼바람, 우르프까지 - 포로지지 PORO.GG
배그 전적검색은 닥지지(DAK.GG)에서 가능합니다
  • (주)플레이엑스피
  • 대표: 윤석재
  • 사업자등록번호: 406-86-00726

© PlayXP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