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이 언제 일어났는가? 물어본다면 솔직히 종종 당황함. 년도를 외고 다니지는 않으니까.
을미사변은 몇년에 일어났는가? 물어보면 솔직히 대답 못 함.
간혹 현충일이나 제헌절이 몇월 몇일이냐 물어보면 기억 안 날 때 많음. 그 월달이 되어서, 빨간 날이 보이면 아, 현충일이라 쉬는구나 이정도 알 수 있음.
통역사와 일본 역사학도를 데려다놓고 이사람과 독도의 소유권 문제에 대해서 토론해보라 하면 사실 난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임. 내가 배운 건 독도가 원래 우리 나라 소유였는데 일제시대가 지난 후 독도를 일본에 귀속한 형식의 지도로 주작되서 일측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 밖에 없으니까.
2월 14일이 밸런타인 데이고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인 건 잘도 알고 있으면서 국가의 역사는 쥐좆만큼도 모른다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함. 그리고 역시 국사만큼은 무조건 수능에 넣어야 되고 필수과목이 되어야 되고 뭐 국사1급을 따게 해야되고 어쩌구 저쩌구 말이 많음.
근데 사람은 아무래도 모든 일에 뛰어날 수 없는지라, 전문성이 필요함.
과거를 모르는 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지만, 그런 쪽 방향으로 앞으로 전진할 사람들에게 좀 더 심도있게 국사를 배우게 만들면 될 노릇임.
지금 딱 고등학교를 마치고 아직 기억들이 생생할 나이의 고등-대학생들은 이런 걸 모르면 무척이나 한심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네들도 30~40살 먹고 중년이 되어가면 어쩔 수 없이 임진왜라는 몇 년도 일이었는지, 병자호란은 몇 년도 일이고 어디어디서 누가 몇 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무슨 지형을 활용해서 어떻게 이겼는지, 그때 등장했던 민병은 누구고 뭐는 뭐였는지 잊어가기 마련임.
이것을 모든 국민들의 머리에 굳이 법으로 박아넣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모든 국민이 자신의 국가의 역사에 대해 빠삭하고 0000년 혹은 그 이전부터 현재까지 2천 몇 년간 각 년도에 뭐가 있었는지 바짝 알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영광스럽게 그것을 욀 수 있다면 그건 보기에는 정말 멋질 수 있음.
하지만 이건 빛 좋은 개살구. 지금 내신공부로 죽자사자 고등학교 2학년 정도까지 국사교육을 받는 것도 많은 학생들에게는 고역임. 엄청난 양의 공부를 시키니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분야에 맞는 과거를 기억하면 되는 것 아님?
사학자야 논외로 치고, 철학자는 과거의 철학에대해서, 나같은 건축쟁이들은 건축물의 과거에 대해서 알고 그 문제점이나 장점을 현재에 응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과거 토속 건축물의 비스듬한 지붕형태가 물을 막지 않고도 방수할 수 있는 상당히 좋은 기술이라던가, 아니면 재료학적인 면에서 과거의 집들이 이러이러했다던가.
난 내가 역사를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음. 내가 비록 상식으로 여겨지는(누구의 상식인지는 모르겠다마는) 많은 질문들에 대해서 답할 수 없지만 한국의 중대사에 대해서 배운 만큼은 알고 있고, 내가 필요한 역사에 대해서는 나와 같은 전공이 아닌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활용한다고 자신하기 때문임.
그냥 요즘 국사교육의 중요성이 이상한 방향으로 대두되는 것 같아서 글을 써봄.
3줄요약
1. 국사 몇년도에 뭐가 있고 그런거 물어보면 난 잘 모름
2. 근데 매우 큰 사건 정도랑 내가 알아야 될 내 전공분야에 대한 과거는 잘 암.
3. 그만하면 된 거 아닌가?
추신: 글을 읽으신 분은 알겠지만 비스듬한 지붕은 거의 완벽한 방수효율을 보입니다. 파괴되지 않는 이상 빗을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 수준. 양옥집이 방수가 좋았던 이유도 비슷한 데에 있죠.
지금 집들이 그렇게 지어지지 않고 항상 물이 흐른다 어쩐다 하는 이유는 오로지 법에 있음. 최고높이와 최고용적율 등등이 있어서 이득을 보려면 바닥 면적은 최대한 사용가능해야 되고 높이는 사용가능한 바닥을 덮을 정도로만 올려야 됨.
기술적인 설명은 집어치우고, 법적으로 이제 양옥집은 개인 주거용이 아닌 이상 유리한 구조가 못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