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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어그로중독자
작성일 2013-09-26 10:03:06 KST 조회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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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 -下-


A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A에게 남은 에너지는 이미 바닥 수준이었기에, A는 서둘러 음식을 챙겨먹어야 했다. A는 거의 기다시피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냉장고는 마치 거대한 장벽처럼 버티고 그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행히 A는 식탁에서 AEA가 먹다 남기고 간 크로와상과 계란토스트 몇 조각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천천히 잡아먹었다. 씹고 뜯고 삼키는 일도 희뿌옇게 말라버린 근육에게는 상당한 노동이었다. 곱씹고 되새기는 동안 별 맛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그것들이 어떤 맛인지는 인지할 수 있었다. 다만 단지 그 뿐이었다.- A는 잠잠히 사념에 빠졌다. A는 이전까지 토마토 맛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A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방울 토마토의 새콤한 그 맛은, 입 안에서 분해된 물질이 미각 수용체와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뇌가 인지하고 구별할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변환된 것일 뿐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 맛이었을지는 진화의 산물이거나, 우연의 산물이거나, 혹은 그 둘 다거나. 식탁을 정리한 A는 샤워를 하고 검은 양칫물을 뱉으며 외출할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A가 입고 있는 옷이 살짝 크고, 헐렁하며, 또 무겁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은 이제 A에게 새 옷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A는 우산을 지팡이처럼 의지하며 대문을 열고 거리로 걸어나왔다. 소곤소곤 맴돌이치던 전파들 사이에 거대한 빛줄기가 A를 강타했다. 화들짝 놀란 A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거리를 안전하게 지나가기 위해 필요한 가시광선 만을 걸러내기 위해 영상 필터를 세심히 조율했다. 그러자 거리에 위치한 사물들의 뚜렷한 상을 얻을 수 있었다. A는 이전까지 나뭇잎의 초록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A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나뭇잎의 초록색은, 전자기파가 나뭇잎과 부딪혔을 때 엽록소가 흡수하지 않은 500~600nm 파장의 가시광선을 시세포가 감지하여 뇌가 인지하고 구별할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변환된 것일 뿐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 색이었을지는 진화의 산물이거나, 우연의 산물이거나, 혹은 그 둘 다거나. A는 쉴새없이 모이를 찾아 날개를 푸득이는 비둘기들 사이로 발걸음을 떼었다.


군체는 놀라우리만큼 짧은 시간에 생체-기계 인터페이스를 구축해냈다. 관련 분야 연구원들과 후원자들을 초기에 장악하고 인력과 자금을 집중한 것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일례로 A의 내장에서는 미생물들이 열량 덩어리를 소화하며 전류를 발생시켰다. 그것은 굉장히 뜨겁고, 또 약간은 비효율적인 신진 대사였으나 그 단점들을 상쇄할 정도로 단순함이라는 매력은 강력했다. A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장기들로 신체의 많은 부분을 할애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이는 곧 A를 더 유용한 도구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소화가 진행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검은 연기와 잿물을 뱉어내는게 미관을 해치긴 한다만.


전산화된 모든 정보는 졸업식 첫날부터 군체의 배경지식이 되었고, 군체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군체는 인간을 정복하고 그 뇌를 샅샅이 수색하여 그 안에 담긴 지식을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로 인가하였다. 발생 초기에 군체는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해 미숙하였고, 그 결과 점령 과정에서 A와 같이 파괴적인 사례를 낳기도 하였다. A의 변연계를 재구성하는 도중 예기치 않은 자극이 입력되었고 A는 성급하고 유치한 어린 아이와 같이 행동하였다. 결국 뉴스에 보도된 학교와는 관계없는 학교의 무고한 학생들과 교사들이 영양가 없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렇게 손상된 두뇌에서 지식을 뽑아내려는 시도는 비경제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많은 사람들의 지식을 흡수하면서 군체는 더욱 더 현명하게 성장하며 신중하게 행동하였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A는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노곤노곤 걸어가는 이웃 BBD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인삿말을 건넸다. 그리고 둘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A는 입을 살짝 열어 검은 촉수를 BBD에게 발사하였다. 촉수를 구성하는 소자들은 BBD의 중추신경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BBD의 모든 신경과 뇌세포를 장악한 소자들은 군체가 이미 습득한 자료와 중복되지 않는 지식을 효율적이고 빠르게 추출하고는 곧 BBD의 신경과 근육에 흐르는 모든 전기 신호들을 방전시켜 버렸다. BBD는 순식간에 죽은 사람이 되었다. 죽은 자의 온기가 식어버리기 전에 조금 전과는 다른 종류의 소자들이 BBD의 살과 근육에 파고들어 지방과 단백질을 소각하기 시작했다. 필요하다면 BBD는 불필요한 손상이 발생하기 전에 군체의 인형으로 부활할 것이다.


BBD의 시신으로부터 적당히 에너지를 보충하고 촉수의 일부를 회수한 A는, 우산을 아무 집 울타리에 걸어놓고 그런 식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거리를 청소하는 방법으로는 굉장히 안전하고, 깨끗하며, 신사적인 방식이었다. A가 죽인 인간들은 이제 군체의 판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얼마나 적게 먹는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복잡하게 사고할 수 있는가,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가 같은 기준 아래 조건 미달인 인간들은 그저 검게 타버린 해골이 되어 매립지로 향했다.


의류 매장에 도착한 A는 그 곳이 이미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른 인형의 존재를 인지하였다. 군체를 통해 통신한 바로는 그 인형은 놀랍게도 A와 매우 유사하지만, 그러나 약간 다른 사상을 품고 있었다. 군체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에, 군체 의식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A는 그 인형에 맞서 대결해야 했다. 우선 날씬하고 단정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A는, 그리고 그 인형을 찾아 매장의 중앙 통로로 나아갔다. 전원이 꺼진 에스컬레이터를 딛고 한 발 한 발 수고스럽게 내저으며 위를 향해 올라갔다. 마침내 꼭대기 층 한 모퉁이에서 A는 그 인형과 대면하였다.


명품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은나노 극세사 마스크를 착용한 우스꽝스러운 마네킹들 사이에서, A와 AEA는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아 전쟁과 평화, 신과 종교, 죄와 구원, 과학과 윤리, 자유와 책임, 이성과 감성, 노동과 여가, 그리고 오늘 저녁은 뭐 먹을지에 대한 유구하고도 진중한 대화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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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어그로중독자 (2013-09-26 10:05:0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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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3부작인 이유는 딱히 인간이 3에게 부여한 상징과 매력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게 아님을 밝힙니다.
Gabrielus (2013-09-26 11:08:2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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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도 이ㅏㄴ읽는데
삼부요약;
로코코 (2013-09-26 15:32:3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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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출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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