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세계는 놀랍고도 간단한 발견과 발명 -이를테면 불과 바퀴, 숫자와 화폐, 트랜지스터와 구글 등- 이래 그 문명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20세기 가전기기는 해가 바뀔 때마다 성능은 오르면서 가격은 내려가는 기적을 보여주었고, 21세기 스마트폰은 구매자가 통신사와 맺은 약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단계 진화한 모델이 등장한다. 바야흐로 기술과 공학은 격변의 시대에 있으며 아직 그 전자공학의 끝이 어디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커피 자판기에서부터 기상청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기기는 수백만, 수십억, 수조 개의 논리 소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그 논리 소자를 쪼개면 마침내 트랜지스터가 나타난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 그것이 바로 만물의 근원 트랜지스터이다. 만물이 얼마나 더 빨라지고 똑똑해지고 효율적으로 진화할 지는 바로 이 트랜지스터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트랜지스터는 세대를 거듭하며 작아지고 있다. 작은 트랜지스터는 좁은 공간에 더 많이 모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존하는 가장 작은 바이러스보다도 작아지고 있다. 어쩌면 늦가을 독감 예방 백신을 만드는 제약회사 연구실의 배양 접시 하나를 전자현미경으로 조심스레 들여다본다면, 수 없이 많은 인플루엔자 사이에 어디서 집을 잃었는지 모를 딱한 트랜지스터 한 조각이 변태들 사이에서 벌벌 떨며 웅크리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개중에는 가늠할 수 없이 작은 전자 소자의 위험성을 설파하며 은나노 극세사 마스크를 팔아대는 약장수들이 있지만, 속지 마시라. 이것들은 아직 연구실을 떠나 일반인의 코에 들어갈 만큼 값싼 물건이 아니며, 설령 가출하는 녀석이 있더라도 그깟 잡동사니 따위로 막을 수 있는게 아니다.
어찌됬든 이 놀라운 물건이 시중에 나오기까진 아직까지 관문이 매우 많다. 무엇보다도, 앞서 기술하였듯이, 이 것은 굉장히 생산 단가가 높다. 물론 비용 부담은 으레 기술의 점진적 발달이 해결해주는 시간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이제는 결코 자연을 이루는 근원적인 힘들을 무시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 그리고 혁신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전자 소자를 실리콘 기판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다. 전자기력으로 중력을 상쇄한 작은 세계 안에서, 작은 트랜지스터들은 유유히 떠다니다가 서로를 만나 결합하고, 작은 저항과 작은 캐패시터 부하들을 거느리며 논리를 확장하다가, 작은 무기물 먹이를 발견하면 거대한 전력을 공급받아 자가복제를 시작한다.
이 특이한 실험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 지금까지와 단위가 다른 천문학적 비용을 요구하지만, 어쨌든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놈이라도 자가복제에 성공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윽고 공급된 무기물들은 모두 작은 트랜지스터로 변모할 테고, 그것은 곧 대량생산으로의 첫걸음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기판에서 분리되어 떠다니는 녀석들을 잡아다가 다시 기판에 붙이는 것인데, 그 작은 세계를 들여다 본 연구원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 작은 녀석들에게 작은 세계 졸업장을 수여하였다.
이후의 청문회에서, 연구소장은 '왜 그 때 미리 은나노 극세사 마스크를 만들지 않았는가'하는 질의에 응답하지 않아 죽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잡동사니 따위로 막을 수 있는게 아니라고 수십 번을 말해도 듣지를 않아요, 포기하면 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