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이
명사】
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아니하여 태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
②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쓸모가 없는 사람.
그렇다. 언제나 난 어중이였다. 나의 지나간 생애를 반추하여 보면-물론 20년 남짓한 삶 밖에는 되지 않지만- 내가 어떤 것에 집착하거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공부도 언제나 중간이었고, 말수도 적어 어떤 일에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다못해 놀이나 체육, 게임 같은 것 또한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몸이 선천적으로 약한지, 운동을 하면 다치기 일쑤였고, 게임 같은 것은 쉽게 질려버렸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어느 한 가정의 남편이, 아버지가, 가장이 될 수 있을까, 언제나처럼 질려버려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것은 아닐까, 난 이 질문을 마음속으로 되뇌일 때마다 나에게 자신이 없었다.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20년을 살면서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쓸데없이 커진 몸뚱이와, 모든 것에 냉소(冷笑)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군대에서 얻은 약간의 발작뿐이었다. 가슴은 텅 비었고, 이것을 채우고자 하는 노력도, 바램도 없었다. 그저 바람에 휘날리며 허공을 떠돌며, 땅에 부딪혀 내장을 쏟아내어 죽고 싶은 마음, 벌건 백주대낮에 내 나약함을 과시(誇示)하며 현기증으로 쓰러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떠오를라 치면, 그저 마음을 다잡고, 살고 싶다고 되뇌이며 억지로 그런 마음을 눌러 참을 뿐이었다.
나의 병(病)은 뿌리가 깊었다. 나는 내 자신을 혐오(嫌惡)했으며, 끝없이 변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곧 제 자리로 돌아오는 하나의 과정일 뿐, 결국 나 자신은 변함이 없는 것이었다.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지만, 겁이 많은 나는 이 방법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다. 아니, 시도는 했었지만 실패했다는 게 옳은 말이리라. 그래, 살면서 딱 한번, 목을 매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매듭은 허술했었고, 내 체중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목이 졸리며 느꼈던 공포를 난 잊지 못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공포 덕분이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고서......
나를 겁쟁이라며 비웃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난 겁쟁이다. 도로 주변을 거닐 때면, 어떤 취객(醉客)이 세상을 저주하며 나에게 차를 몰아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겁쟁이이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태울 때면, 바람이 불어 내 몸뚱아리를 저 바닥으로 던져 머리를 깨버리지 않을까 기대하는 겁쟁이이다.
밤길을 걸으며 누군가 뒤를 따라올 때면, 어떤 살인마(殺人魔)의 칼이 나의 배나 목을 쑤시지 않을까 기대하는 겁쟁이이다.
하지만 이 기대는 번번히 빗나갔고, 난 지금까지 살아있다. 아슬아슬한 평행선에서 어느 쪽도 가지 못하고 있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나의 모습은, 그저 내가 살아온 삶에 있어 놀라울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어느 쪽도 가지 않아 도무지 쓸모가 없는, 어중이, 그것이 내 삶을 요약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이리라, 어중이... 어중이... 어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