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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9-14 22:05:45 KST | 조회 | 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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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선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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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씨는 나노공학, 뇌과학, 그리고 신경약학 세 학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능한 인재이다. 그녀는 쉽게 사회공헌훈장과 그 부상인 '업적이 계속 유지될 시 자신과 직계 후손의 영원한 생명 유지의 보장'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세 가지 전공을 통합하는 연구 방면은 학계에서도 가장 뜨거울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주목받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다른 사회공헌훈장을 받은 친구들, 예를 들면 고고학 학자라든가 서양 고전철학자 같은 사람들과는 달리 필멸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훈장을 받고 난 12년 후, 그녀는 응용 나노로봇 군체를 만들어내었다. 그것은 청소년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군체가 청소년의 몸에 주입되면, 군체의 나노봇들이 혈중의 신경전달물질의 구성비율을 매우 높은 신뢰도와 낮은 오차범위로 외부에 전송하였다. 이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군체로 청소년의 사고와 감정을 알아낼 수 있는 건 일도 아니었고,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자는 사이에 몰래 주사기를 꽂아넣었다. 그 과정에서 깨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런 것은 매우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다.
지은씨에게도 물론 아이가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유전자 구성으로 만들어진 인공정자로 만들어진 그녀의 아들 수민은 그야말로 가장 완벽한 인간상에 가까웠다. 착하고 잘생기고 총명한 그녀의 아들은 앞으로 지은씨와 함께 영원히 살아갈 동반자이기도 했다. 수민이 자신과 함께 영원히 20대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면 영원의 시간도 외롭지 않을 것이었다. 지은씨는 그런 상상을 하며 흐뭇한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수민이 얼마나 이상적인 유전형질을 가졌던 간에, 그는 이제 16살이었다. 아직 전전두엽이 완전히 익지 않은 이 시기의 인간은 일반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하는 법이다. 지은씨는 수민이 서파 수면에 빠져들었을 때 자신이 미리 설계해놓은 원격조종 투입기를 이용하여 수민의 감각에 아무런 영향 없이 군체를 주입했다. 다른 부모들처럼 좀 더 '야만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테지만, 지은씨는 그녀의 위대한 철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수민의 신경전달물질 비중은 완전히 정상적이었다. 행복의 세로토닌, 성취의 도파민, 그리고 동기의 노르에피네프린. 억제의 GABA, 운동과 기억의 아세틸콜린 . . . 우리의 생각을 관장하는 모든 물질들은 수민의 혈관에서 완벽한 비율로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지은은 완벽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인정받은 엘리트 중 하나였고, 십만이 간신히 넘는 영생을 보장받은 이들 중 하나였다. 매 세 시간 마다 그녀의 뇌는 완전히 스캔되고 저장된다. 설령 그녀가 죽더라도 그녀는 새로운 육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대부분의 일반인들과 같은 군체를, 비록 자신이 발명했더라도, 자신도 사용하는 것은 꺼려지는 일이었다.
그녀는 부모용 군체 외부 관측기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자신이 완벽하게 만든 것에 새로운 추가 기능을 그녀의 인생에 가장 고된 일 중 하나였지만, 지은 나름의 모성애로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그래도 그 개조는 약 세 달의 시간이 걸렸고, 지은은 하루 중 16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했다. 지은의 위업 덕에 지은은 안식년 중이었고, 그래서 정부의 경고를 받을 일은 없었다.
지은은 외부 관측기가 수신하는 나노봇 신호를 한 개인으로 한정되지 않도록 수정했다. 그 관측기를 가진 조종자는 아주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자기가 원하는, 군체가 설치된 어떤 청소년이든 그의 사고와 감정수준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대상의 영양상태만 충분하다면 혈관 내의 기본 아미노산을 이용하여 신경전달물질 수준을 조정할 수 있었다. 즉, 군체를 장착한 어떤 청소년의 사고 감정을 마음대로 알 수 있고 그것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조작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완벽한 위법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수민에게 주었다.
수민은 그것을 받은 즉시 그의 세상에서 작은 신이 되었다. 그는 이제 그 주위 인간의 모든 생각을 피상적으로라도 알 수 있었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었다. 그 또한 자신의 어머니에게 꾸준히 뇌과학 수업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조종이 매우 전문적인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우선 가장 자신의 친한 친구 영준에게 수신기를 고정해보았다. 그와 만날 때는 그가 잔잔한 수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침상에서 우정을 나눌 때에도, 영준의 감정이 보통 섹스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민은 기뻤다.
친구들의 감정을 둘러보면서 수민은 가끔은 절망했고 가끔은 행복했다. 그는 누가 자신 앞에서 가식의 가면을 쓰는지, 누가 자신 앞에서 진정한 자신을 보이는 지 알 수 있었다. 가식의 가면을 쓰는 사람 앞에서 수민은 그 사람들의 생각을 교란시켜 가면을 자신의 얼굴로 만들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직 수민은 사람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수민은 함부로 자신의 권능을 활용하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조숙한 10대였다.
인간관계를 하나씩 정리하고, 자신의 주변에 가면을 쓰지 않은 자만을 남기는 작업은 고통스러웠다. 그것이 끝나고 수민은 단 일곱 명 가량이 그의 근처에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 유전적으로 매우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월한 자일 수록 오히려 진정한 친우를 만드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몇 달 간은 수민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버텨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이가 자신을 만날 때 웃음 안에 유전적으로 조작된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설령 그것을 원래 알고 있었더래도 이제 완전한 사실로서 알게 된 그는 관계 자체에 약간의 회의와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예전의 시원한 성격에서 예민한 성격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지은은 수민의 그런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그것이 모든 우성인간이 거쳐가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은 또한 가장 우월한 유전자만을 가지고 태어난 우성인간이었기에 그는 수민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빠른 성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메인코스 요리가 빨리 요리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수민은 굉장히 분노했다. 여느 날처럼 그는 밤에 모든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잠시 영준의 감정 변화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경악했다 - 영준의 신경전달물질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글루타메이트, 인돌아민, 노르에피네프린, 아데노신, 뉴로펩티드 Y, 엔도르핀, NO, 카테콜아민 계열의 물질들, 그리고 ATP. 그 혐오스러운 그래프의 양상은 그가 영준과 섹스를 할 때 은밀히 보았던 그 모양과 완전히 동일했다. 단지 그 때보다 훨씬 격렬하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 영준은 분명히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서로 애인이라고 선언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민은 영준이 자신에게만 진솔한 우정을 느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기였다. 영준이 수민을 배반한 것이다. 아니면 수민의 생각이 수민을 배신한 것이거나. 수민은 손가락을 몇 번 돌렸다. 간단한 움직임이었지만 영준에게는 그것이 생명의 종말이었다. 2256년 4월 3일 오후 11시 30분,영준은 일반적인 자연환경 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노르에피네프린 폭주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법의학자들은 영준에게서 아무런 문제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그의 혈관 속에 수많은 지은의 나노봇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거의 모든 한국의 청소년들의 혈관 속에 있는 것이었기에 아무런 이상소견이 되지 못했다. 법의학자들은 그 이유를 정부가 법의학계에 최소한의 예산만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라고 확신했다. 법의학자들은 모두 정부 과학기술부로 달려갔다.
수민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윤리관 내에서는 살인은 배신보다 더 가벼운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감정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가장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라도, 결코 이미 해 버린 것에 대한 중독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모든 사춘기 인간들의 숨겨진 왕이 되었다.
그의 인간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확장되었고 진실했다. 모두 그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존경했다.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마주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행복과 만족이 쏟아지니까. 그리고 수민은 스스로 신이 될만한 자격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유전적으로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생물보다 뛰어난 유전형질을 갖고 있으며, 또한 그의 종의 미성숙자들의 사고회로를 완전히 알고, 또한 조종할 수 있었다. 만약 신의 개념이 '전지전능'이라면, 어찌 그가 신이 아닐 수 있었겠는가?
어쩌면 신의 조건에는 그 전지전능한 능력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다룰 수 있는 의지 또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제우스는 그토록 강대한 힘을 가지면서도 단 한 번도 그의 야욕을 채우는 데 번개의 힘을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하지만 수민은 확실히 신의 필요충분조건을 채우지는 못했다. 그는 모든 사람, 즉 청소년들이 자신을 위하도록 조정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섹스와 음식, 음료로 그 어떤 황제들도 누리지 못했을 최고의 쾌락을 누렸다.
그러나, 그 어떤 쾌락이 어떤 황제를 완전히 묶어두었는가? 사람은 결코 만족할 수 없고, 그것은 수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수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의 감정을 완전히 조작했고, 맘에 드는 모든 남자와 여자를 취했으나, 결코 자신이 완전히 충족되었다는 느낌은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약 2년간 지속된 그의 통찰이었다.
만약 관계에 모든 것을 쏟은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의 관계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그가 보아온 생물학적 증거로도 확증될 수 있었다. 인간은, 결코 어떤 사람을 완전히 사랑할 수 없었고, 또한 15명이 넘는 사람을 동시에 신경쓸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한 확실한 평가를 내린 그는, 워프 엔진에 머리를 넣었다. 그의 머리는 워프 엔진이 유도하는 공간의 접힘과 펴짐에 따라 완전히 그로테스크한 모양이 되었다. 수민의 오차원적으로 뒤틀린 뇌는 현대의 기술로는 그 어떤 방식으로든 회복될 수가 없었다. 차원학의 최고 권위자와, 의학의 최고 권위자, 그리고 생물복구학자의 최구 권위자로서도 수민의 뇌는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수민은 현대의 법률에 따라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지은은 일주일 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극히 합당한 서러움과 괴로움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심지어 정부도 그녀에게 1년 추가의 안식년을 허가했다. 모성애는 그녀를 지극한 슬픔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일주일 후 그녀는 이성을 찾았다. 그의 시냅스 형성은 분명히 그녀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매 세 시간마다 수민의 두뇌의 시냅스 구조는 저장되고, 현대의 생명공학으로서 완전히 시냅스 구조가 저장된 뇌를 복구하는 것은 ... 그렇다, 거의 200년 전의 고전적 기술이다.
그리고 물론 그녀는 수민의 완전한 뇌 시냅스를 저장하고 있었다. 수민이 수면을 취하는 7~8시간은 그의 뇌를 완전히 스캔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공학과 생물학이 생명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한 것은 이미 역사학에 기록될 정도로 과거의 일이다.
지은은 슬픔을 딛고 수민의 저장된 과거 시냅스 기록에 접속했다. 뇌와 유전형이 같다면 그것은 수민이다.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단지 정보복제형 순간이동에 걸린 시간이 좀 길었던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급속성장 인큐베이터에 넣으면 수민의 몸이 다시 그 때의 몸으로 돌아오는 것은 이주일도 걸리지 않는다.
수민을 되살리기 전에, 지은은 우선 수민의 시냅스 구조를 읽으며 수민의 잊었던 기억들과 사고과정을 생전의 수민보다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완전한 위법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나라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었기에 위험은 없었다. 그렇게 수민의 두뇌를 읽어나가며, 지은은 수민이 그녀가 준 선물로 영준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또한 자신의 사회에서 하나의 황제로 군림했다는 사실도. 지은은 수민의 끔찍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몸서리쳤다.
타인의 두뇌를, 그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든 아니든 읽는 일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뉴런과 교세포들의 소통을 해석하는 법이 개발된 2080년대에 이미 UN은 국제 금지법을 발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은 누구나 전의식 속에 확실한 자기합리화의 논리가 있고, 그 자기합리화는 두뇌 속에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읽는 사람은 자기합리화 또한 읽게 된다.
지은은 수민에게 완전히 공감했다. 그녀는 비록 슬펐지만 수민의 자살을 인정하고, 그를 되살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의 자살로 표출된 파괴욕구도 공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수민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녀와 수민의 사고와 감정이 덧붙여진 것이기에 그녀는 자살은 하지 않았다.
안식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업무에 전념했다. 옛 기억을 되살려 옛 것과 비슷한, 그러나 조금은 다른 목적으로 제작된 바이오웨어 나노봇이 만들어졌다. 이번에 그녀는 조금 다른 광고문구를 붙였다.
「스스로 당신의 신경전달물질 환경을 확인하고 조절하세요! 인슐린에서 세로토닌까지, 멜라토닌에서 프로락틴까지!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신경전달물질의 비중을 당신의 몸 속에서 나노봇이 직접 확인하고 합성합니다. 기분 조절, 수면 조절, 동기 부여까지! ※제품에는 적절한 신경전달물질의 비율이 설명되어있는 설명서와 나노봇 주입기, 원격조종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품으로 인한 생물학적 문제는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엔돌핀과 도파민 등의 쾌락관련물질은 합성되지 않습니다.」
"선물 4321"이라고 이름지어진 그녀의 나노봇은 불티나게 팔렸다. 인류의 95% 이상의 혈액에 선물 나노봇들이 함유되게 되었다. 학자들은 진정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감정조절의 사회가 도래했다며 그녀를 찬양했다. 그녀는 온갖 나라에서의 훈장을 받았고, 이제 확실한 영생을 보장받았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집에 수민이 한때 쓰던 것과 비슷한 송신기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단지 기다리고 있다. 그녀에게 시간은 영원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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