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석의 파괴
세계석의 파괴라는 것은 나름 파격적인 엔딩이었습니다. 디아블로2 당시 자세한 내용은 없었지만 세계석이라는 물건은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바알은 이 중요한 세계석을 오염시키려 했습니다. 아마 세계석을 오염시키면 천상과 지옥의 전쟁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그 당시에는 세계석의 힘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중요한 세계석을 오염시키려는 바알을 저지하기 위해 영웅들과 티리엘이 세계석이 안치된 하로가스 산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바알을 처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 발 늦은 나머지 세계석은 바알에 의해 오염된 후였지요. 결국 대천사 티리엘은 세계석을 파괴하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여기까지가 디아블로2의 스토리였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세계석이 박살났으니 후속작에 분명 이로 인해 뭔가 사단이 나고 새로운 영웅들이 싸우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죠.
그리고 디아블로3가 발매되었습니다. 세계석이 억누르고 있던 네팔렘의 힘이 풀려나서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영웅들이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세계석이 파괴된 여파로 하로가스 산이 박살나서 으스러진 산이 되고 세계석을 지키던 야만용사 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답니다.
그런데 이게 다에요. 성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큰 뉴스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에겐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 세계석의 파괴로 새로 생긴 것은 '네팔렘'과 '으스러진 산'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네팔렘'을 빼 봅시다. "네팔렘의 힘을 지닌 영웅이 디아블로를 처단했다." 에서 "영웅이 디아블로를 처단했다."로 바뀔 뿐입니다. 뭐가 다른건가요. 디아블로1, 2의 영웅들도 네팔렘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디아블로와 메피스토, 바알까지 모조리 처단했습니다. 디아블로는 아이단 왕자를, 바알은 탈 라샤를 숙주로 삼아 상당히 강력했는데도요. 네팔렘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결국 이야기의 중심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으스러진 산 이야기는 말할 나위도 없군요.
세계석의 파괴는 분명 스토리의 중심이 될 만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사족 이야기 말고는 성과가 없어서야, 시나리오 작가가 디아블로2를 해보긴 했나 의심스러운 수준이군요.
웃기는 일은 끝이 아닙니다. 디아블로3에서 세계석의 설정은 더 파워업했어요. 디아블로2의 세계석은 "뭔진 모르겠는데 존나 중요한 돌덩어리" 수준이라면 디아블로3에서 붙은 세계석의 설정은 "요것만 있으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도 있는 킹왕짱 물건... 그래서 악마와 천사들이 세계석을 놓고 다투다가 이나리우스라는 찐따가 세계석을 훔쳐 성역을 창조하고 일련의 사건을 치룬 후에 세계석을 성역에 두고 악마와 천사는 서로 성역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입니다. 세상을 새로 창조할 수 있는 개쩌는 아이템이라구요. 그런 걸 파괴해 버렸는데 고작 할 이야기가 '주인공이 이렇게 강한 이유'가 전부입니까???
2. 영혼석
디아블로1에서의 영혼석은 '고위 악마들을 봉인하기 위한 수단' 이었구요.
디아블로2에서의 영혼석은 '고위 악마들을 봉인하기 위한 수단...인 줄 알았는데 강한 힘을 가진 숙주에 빙의해서 성역에 손대기 위한 수단' 이 되었습니다. 통수맞은걸 알게 된 티리엘이 영혼석을 놔 두어선 안된다면서 헬포지에 가져가서 영혼석을 몽땅 파괴해 버렸죠.
그런데 갑자기 검은 영혼석이라는 물건이 나옵니다. 검은 영혼석은 악마의 영혼을 여러개 담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네요. 티리엘은 영혼석이 이미 악마들만 이롭게 하는 수단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검은 영혼석에 악마들의 영혼을 수집하려고 합니다. 티리엘이 지상으로 추락하다가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겁니까?
아, 디아블로2에서 영혼석을 파괴한 일이 고위 악마들을 성역에서 추방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고 하면 티리엘은 '디아블로2에서 악마들을 추방하기 위해 영혼석을 박살냈고, 디아블로3에서는 벨리알과 아즈모단의 영혼을 추방하기 위해 검은 영혼석을 이용했다' 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디아블로2에서 영웅들은 영혼석을 파괴하기 위해서 무슨 짓을 했죠? 악마들이 득시글 거리는 헬포지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만약 실패하여 영혼석을 악마의 군대에게 빼앗기기라도 했다가는 애써 잡은 메피스토를 다시 풀려나게 하는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왜냐면 헬 포지에서가 아니면 영혼석을 파괴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디아블로3의 티리엘은 어떻습니까. 아드리아가 철벽의 성채 꼭대기에서 검은 영혼석을 파괴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데 쭐래쭐래 따라갔다가 레아의 몸에 대악마 디아블로가 깃들게 하는 걸 허용하고 맙니다. 아무래도 티리엘은 지상에 추락하면서 기억상실에 걸린 게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영혼석은 세계석의 조각이라고 합니다. 세계석의 조각은 부수려면 헬 포지로 침입하여 헬 포지에서 파괴해야 부서지는데. 본체인 세계석은 티리엘이 엘드루인을 집어던져서 박살냈군요. 티리엘 이새끼...)
3. 대악마
졸툰 쿨레가 검은 영혼석을 완성시키자 마자 다섯 지옥군주의 영혼이 검은 영혼석으로 빨려들어갑니다. 아드리아의 말로는 아드리아가 돌아다니면서 지옥군주들의 영혼에 표식을 남겨서 검은 영혼석으로 빨리들어가도록 했다네요. 것 참 편합니다. 역시 마법은 대단해요.
아니,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아드리아의 말 대로라면 아드리아는 사실 디아블로2 시점에서 영웅들의 뒤를 은밀히 밟다가 안다리엘이 쓰러지면 몰래 다가가 안다리엘의 영혼에 표식을 남기고, 듀리엘이 쓰러지면 듀리엘의 영혼에 표식을 남기고, 메피스토도, 디아블로도, 바알도... 했다는 겁니까? 아니면 성역을 떠돌아 다니는 무형의 악마군주들의 영혼을 찾아서 뭔거 표식을 남겨...?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그랬다니까 그렇구나 하고 멍하니 믿어야 합니다. 우리 기억상실의 대천사 티리엘은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데 그렇구나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런 모양입니다.
한심한 스토리는 더 있지만 나중에 또 생각나면 마저 까야징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