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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맥건
작성일 2013-08-25 21:02:44 KST 조회 94
제목
외출 2

나는 곧 그곳이 강남역 근처라는 것을 깨닫는다. 시간은 7시가 약간 지났다. 나는 떠올린다. 7시 강남역.

또 약속을 떠올린다. 나는 테헤란로에서 죽기로 되어있다. 

 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는 또 움직인다. 많은 커플을 본다. 한 여자는 매우 당당한 차림새였다. 흰 반팔티였는데, 하체는 신경쓰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녀의 가슴이 커서 그것을 보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수술이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저 그녀 옆에 있는 남자가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남자라면 속옷의 무늬가 살살 비추는 일명 시-스루라는 복장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 커플을 보내고 나니 눈 앞에는 짝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곧 알게된다. 요즘 유행이 돌아왔는지? 커플 티라는 것이 말이다. 누구는 만 오천원이면 살 듯한 유니클로스러운 커플티를, 누구는 나이키 티를 입는다. 그 찰나의 순간 한 여자가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렇다. 당신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아니, 박제가 되어버린 복장을 아시오?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보는 윗도리라면 바로 저것일 것이다. 풀색과 회색과 각종 어둑푸르스름한 색의 팔에 흰 복판이 있는 반팔이던 긴팔이던 이라고 묘사해야 하는, 그렇게 나를 복잡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과거에는 Jeep 로고가 새겨져 있던 것 같은데, 없는 게 더 많은 모양이다. 나는 순간 분개하여 그녀의 멱살을 잡고 땅에 뒤집고 싶었으나, 또 순간 아무 감정도 없어져 가던 길을 가게 되었다. (가던 길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때 나에게 가던 길이 생겼다. 한 가지 시가 떠오른다.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인데, 나는 요즘 가지 않은 화장실을 찾고 있다. 나의 삶의 한가지 소박한 프로젝트다. 서울의 모든 화장실을 평가해두어 어디를 가던 최고의 화장실을 가는 것이다. 오늘은 GT 타워다. 나는 꺼져 있던 휴대폰을 켜서 메모를 한다. GT타워. 향이 좋고 비누가 있다. ★★★★. 

휴대폰을 켠 것이 화근이다. 온갖 소식이 나를 되돌린다. 나는 강남역 바로 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을 만난다. 인사하는 대신 나는 몇 인치 되는 화면을 본다. 이것이 나의 삶의 방식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화면을 보며 다시 잘 모르는 아저씨로 돌아간다. 누군가의 관심을 최대한 피하면서 한 쪽으로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다시 돌아간다. 이상하게 생긴 화약통을 지나서, 코너를 돌아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여기까지 썼을 때 나는 그 뒤로 무언가 쓸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쓰며 계속 무언가를 잊어가고 있었 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일상을 녹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국가에 CCTV를 대량으로 증설하여 나에 대한 다큐멘터리라도 찍어 달라고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감시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판옵티콘이다. 벤담이다. 공리주의다. 그런데 강남역에는 노숙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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