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XP

서브 메뉴

Page. 1 / 12522 [내 메뉴에 추가]
글쓰기
작성자 아이콘 김강건포니
작성일 2012-11-03 15:06:11 KST 조회 178
제목
중세물리학(...)의 정점 전날의 섬

아 생각해보니 전날의 섬 세계관은 르네상스 태동기네 그래도 중세로 침


어쨌든 전날의 섬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미의 이름 다음으로 대단한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귀족 출신이자, 유럽인들이 바다로 떠나가던 <대항해시대> 의 태동기에,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고 출정한 주인공 로베르토의 이야기입니다.


로베르토는 항해 도중 표류합니다. 도중 암초에 걸려 다 망가진 어떤 무역선의 갑판 위로 올라 어찌어찌 살게 되고, 거기서 잠적 중이던 한 수도사를 만납니다. 무역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섬으로 헤엄쳐 가길 원하는 수도사입니다. 하지만 수도사는 너무 늙었고, 로베르토도 수영에는 미숙하며, 섬 근해에는 강한 독을 가진 쏘가리들이 서식하고 있어 섬에 접근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수도사와 로베르토는 중세와 근대의 모든 과학적, 혹은 미신적 지식들을 총동원해 섬에 접근할 방법을 골몰합니다. 동시에 '갈릴레오' 로 대변되는 지동설을 믿는 로베르토, 그리고 천동설을 고수하는 수도사의 무지막지한 자연철학 대결도 펼쳐집니다.


지금 보면 "이게 무슨 빤타지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개헛소리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지동설을 주장하는 로베르토의 '최신 천문학' 도 우리 입장에선 실소를 금할 수 없고, 수도사의 천동설 모델 역시 기적의 거시물리학자라고 조롱할 만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전제가 잘못되었을지 언정, 적어도 이들의 논리와 모델은 첨예하기 그지 없습니다. 두 명의 돈키호테가 논리 대결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근대인과 현대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사실 로베르토와 수도사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인 '전날의 섬' 에 대한 토론도 비록 허황된 것이긴 하다만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시사하는 점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석기를 쥐고 생활하던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띡띡거리기 까지 인류가 가진 유일한 힘은 논리였다는 것...우리의 과학, 인문학, 사회학은 분명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결론적으로 우린 언제나 까막눈이였습니다. 귀납과 연역의 방법으로 이 가설이 틀리면 다른 가설을 만들고, 또 다른 가설을 만들고 폐기하는 식으로 전진과 후퇴를 번복하며 살아왔습니다. 전날의 섬은 우리가 '암흑시대' 라며 비아냥거리던 그 중세시대, 혹은 산에서 내려온 수도사들이 가난하고 무지한 시골사람들을 꾀어 마녀사냥을 자행하던 근대시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논리를 무기 삼아 우주의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 투쟁해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합니다. 설령 신학을 공부하던 13세기의 수도사들이 무지했을언정, 그들은 나름의 논리로 자신들의 세계 모델을 연구한 사람들 아닙니까...


미래의 후손들이 현재 우리를 바라보면 미련한 족속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수많은 이론들이 미래에는 발칵 뒤집혀버릴지도 모릅니다. 어떤 획기적인 양자물리학의 도입으로 인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토론하고 쌓아왔던 이 지식의 역사가 결코 조롱받을 순 없다는 거죠.

에코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써두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이 기록이 어떤 사람의 손으로 들어가고, 그 사람이 색 바랜, 지저분한 필사 원고 뭉치 속에서 뽑아 이 기록을 나에게 주게 되었는지 그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원고를 건네주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상상하는 유혹을 마침내 뿌리치지 못한다.

<필자는 미상이네. 글씨는 잘 쓴 글씨네만 자네도 보다시피 이렇게 변색해 있고, 종잇장에는 물때가 묻어 있지 않은가? 다 읽어 보지는 않았네만 내용은 틀에 박힌 것 같네. 그 시절 사람들 글 쓰는 버릇 있지 않은가......영혼이 없는 사람들 같아요.....>

지속적인 허위 신고시 신고자가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고 사유를 입력하십시오:

발도장 찍기
사사하라 (2012-11-03 15:20:33 KST)
0↑ ↓0
센스 이미지
역시 설정 덕후 움베르트 에코...!
사사하라 (2012-11-03 15:20:53 KST)
0↑ ↓0
센스 이미지
저런 논리 같은 것도 뭐 파보면야 나오지만 자기가 그거 다 이해하고 소설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ㄷㄷㄷㄷ
김강건포니 (2012-11-03 15:21:38 KST)
0↑ ↓0
센스 이미지를 등록해 주세요
소설 한 권 쓰는데 6~7년 걸리셨다지 말임돠 ㄷㄷㄷ
김강건포니 (2012-11-03 15:21:54 KST)
0↑ ↓0
센스 이미지를 등록해 주세요
쓰는 건 얼마 안걸렸는데 자료수집만 10년 가까이 하니..
김노숙 (2012-11-03 15:23:02 KST)
0↑ ↓0
센스 이미지를 등록해 주세요
이것도 다른 에코 소설처럼 초반은 졸라 어렵다가 그것만 넘기고나면 볼만해지나요?
김강건포니 (2012-11-03 15:28:03 KST)
0↑ ↓0
센스 이미지를 등록해 주세요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으시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데...초반,중반,후반이 고르게 어렵습니다 --;
그리고 번역판도 에코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낡은 문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옛날 소설 특유의 격정적인 걸 싫어하시면 읽기 어려우실 수도 있음.
김노숙 (2012-11-03 15:39:35 KST)
0↑ ↓0
센스 이미지를 등록해 주세요
아 옛날 소설 그 격정적인거 아주 좋앟마 ㅋㅋ 한 번 읽어보야징
댓글을 등록하려면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 로그인 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롤토체스 TFT - 롤체지지 LoLCHESS.GG
소환사의 협곡부터 칼바람, 우르프까지 - 포로지지 PORO.GG
배그 전적검색은 닥지지(DAK.GG)에서 가능합니다
  • (주)플레이엑스피
  • 대표: 윤석재
  • 사업자등록번호: 406-86-00726

© PlayXP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