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일기
집을 나섰다. 두터운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눅눅한 햇빛이 간신히 검은 하늘을 뚫고 힘없이 내려 앉는다.
나는 습관처럼, 무거운 도시의 먼지를 들이키며 연신 마른 기침을 내뱉는다.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이고, 조의를 표하듯이 조심스럽게 담배를 입가에 가져간다. 가냘픈 허리같은 담뱃대가 불꽃에 문드러지길 기다리며, 그림자가 집어 삼킨 나의 도시를 응시한다. 나의 도시, 날 배신한 매춘부, 싸구려 포르노 잡지의 멍청한 여주인공 같은......
이 도시는 뿌리 끝부터 썩어들어갔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도시를 구원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독실한 신자 일기
하나님의 은총으로 또 한 번의 아침을 선사받으며, 기쁜 마음으로 방을 나선다. 하늘은 독생자의 숨이 끊어졌던 바로 그 날처럼 음울한 회색을 띄고 있다. 오, 주여.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심란케 했든지간에, 부디 미련한 그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시길...
겸허한 마음으로 복도를 내려갔다. 하늘에서 주님의 눈물 같은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는 금새 격해진다. 아파트 울타리 너머로 뻗은 나뭇가지에 붙은 가녀린 잎사귀들이 몸을 떤다. 자연의 칼날은 냉혹하구나, 나는 혀를 차며 나무 곁으로 다가간다. 고개를 들어올려 나무를 유심히 바라본다. 고동색에 가까운 검은 나무 줄기에 큰 옹이가 졌다. 마치 두 개의 거센 물결이 맞붙어 뒤섞이며 난 상처같다.
그 순간, 아! 나는 깨닫는다. 저 두꺼운 먹구름이 흩뿌리는 성수의 진의를. 거센 빗방울은 세례다. 상처를 견딘 이 땅 아래 피조물에 대한 세례다. 우리 주인되신 분의 감정은 너무 격정적인지라, 그 분의 작은 눈물에도 연약한 잎사귀는 온 몸을 전율하고, 이 땅은 음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빗물을 머금은 세상은 곧 본연의 색을 좀 더 확실히 빛낼 것이다. 태양의 힘이 거세면 바닥에 지는 땅거미도 더 진해지듯이, 빗물이 세상을 때리면 우리는 더욱 생명력을 얻는다. 주여, 이 지극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보로망 일기
아침에 눈을 떴는데 입가에 남은 느낌이 찝찝해 간신히 눈을 뜨니 창문 밖에는 빗방울이 추락하며 만드는 찰나의 그림자가 있고 나는 그저 침대에 누워 가만히 웅크린 채 빗방울의 동그란 몸뚱이가 지상에 내려 꽂히며 으깨지는 원초적인 소리를 감상하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누군가의 오줌 누는 소리가 마치 급류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작은 폭포수 줄기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혹은 빗소리 같기도 한데
흠 또 뭐 있음?
비온다!.
디아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