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브이 포 벤데타는 아나키즘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실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브이는 민중의 자유를 꿈꾸는 낭만적인 혁명 투사라기보다는, 폭탄으로 모든 권력 집단을 처부수고 공동체에 혼돈을 가져오는 테러리스트에 가깝습니다.(영화에선 이런 면이 싹 거세되었죠. 결과적으로 브이의 심리적 프로필이 원작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워졌습니다)
'당' 으로 대변되는 영국의 지배 권력은, 사실 어떻게 보면 사악하고 탐욕스런 독재 세력과는 다소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당을 이루는 여러 인물들은 저마다 욕망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욕망 때문에 자멸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당의 실질적인 요체인 '리더' 는 자신의 슈퍼컴퓨터 '운명' 을 숭배하는 광신자이며, 또한 운명을 진심으로 사랑하나 결코 사랑받지 못하는 비운의 연인입니다. 운명은 단지 컴퓨터일 뿐이니까요.
여기서 운명은, 리더가 영국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입니다. 즉, 운명은 리더가 믿는 정치적 신념,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여기서 우린 리더가 영국의 지독한 신자유주의 신봉자 마가렛 대처와 닮았음을 알 수 있죠 ㅎㅎ)
한편, 브이도 일종의 광신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가 몽롱한 각성 상태에서 깨달은 아나키즘의 진리죠. 브이가 정의의 여신상을 폭파한 뒤 독백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죠.
"나는 다른 남자와 자고 그에게 핍박당하기를 즐기는 창녀인 너(정의)를 버리고, 대신 새로운 여인을 숭배하기로 했다. 그녀는 진정한 정절이 무엇인지 아는 여인이다. 그녀의 이름은 무법이다."
노숙님 덕분에 벤데타의 진짜 어원을 알 수 있게 됐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네요.
벤데타의 어원이 앙숙 사이인 두 가문의, 수 십번 대를 이어가며 벌어지는 피의 복수극이라면, 그것은 강압적인 규제를 통한 질서vs무법(정확히는 아나키즘) 이라는 두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그리는 브이 포 벤데타에 가장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양측 모두 일말의 타협의 여지도 보이지 않으니, 독재자와 혁명가의 싸움은 계속 되는 겁니다. 독재자를 죽이고 혁명가가 등극하여 다시 독재자가 되고, 그 독재자를 처단하기 위한 또다른 혁명가가 등장하고...패러다임을 부순 새로운 패러다임은 다시 낡은 고정관념이 되고...
이런 장대한 딜레마를 끊을 수 있는 존재로, 엘렌 무어는 이비를 내세우지 않았나 합니다. 이비는 분명 브이를 계승하는 또다른 브이지만, 적어도 브이와는 다릅니다. 복수(벤데타)의 광기를 품에 안고 있는 브이는 단순히 혼돈만을 몰고 올 뿐이지만, 이비는 그런 브이의 한계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죠.(만화책에서 브이가 "네가 죽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꽃을 꺾기만 하면 된다." 하며 자신의 화단을 보여주자, 이비는 웃으며 "그냥 자라게 두세요." 라고 대답하죠.)
즉 단순한 무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공동체의 인간적인 관용과 신뢰에서 우러나오는 '무법의 질서' 를 상징하는.........음 생각해보니 이건 좀 궤변이네요
여튼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