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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사하라
작성일 2012-01-04 22:54:31 KST 조회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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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떡투척2:레닌그라드의 식인
소련 정부는 레닌그라드 포위 기간 동안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정부를 신뢰하고 정부의 적절한 조치 아래에서 질서를 잃지 않았다고 포장하곤 했습니다. 보급 정치위원이었던 드미트리 파블로프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너무나 고결해서 피격당한 트럭에서 빵을 줍지도 않았고 불을 피우기 위해 공원의 가지를 자르는 짓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외국인들의 주장처럼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도덕성을 잃고 음식만을 찾아헤메는 짐승처럼 변했다면 레닌그라드는 진작에 무정부 상태가 되었을꺼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개인의 기록과 이런저런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쌩구라입니다. =_=

1941년 겨울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삶의 질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닌그라드는 위의 주장처럼 무정부 상태로 빠지진 않았지만, 그 대신 레닌그라드는 범죄의 그늘에 덮여버렸습니다. 그 범죄의 대부분은 식량과 관련된 범죄였습니다. 음식, 배급카드를 노린 절도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도 있었으며 식인행위까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레닌그라드의 배급 체계는 시민이 종사하는 분야에 따라서 배급량이 달랐습니다. 군인들이 제일 많이 받았고 민간인들 중에는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배급받았습니다.(물론 그나마도 절대 충분한 것이 아니었지만) 사무실 직원들과 아이, 여성들이 제일 적은 몫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들의 배급량은 양이나 질이나 너무나 부족했습니다.(하루 125그램까지 떨어지고 했거니와 그나마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후에 배급량이 늘어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레닌그라드 시민이 아닌 자들은 제대로된 배급을 받지 못하고 자신들이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야했습니다. 농부 출신 피난민들과 직업학교 학생들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직업학교 학생들은 농가의 10대들을 공장 노동자로 교육시키기 위한 기관으로 레닌그라드 포위망이 완성되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가족, 지인들과 연락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도둑질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은 배급받은 빵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노렸습니다. 그런 이유로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배급받은 빵을 숨기고 다녔습니다. 이런 절도 행위는 이런 학생들만 행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부족한 배급량에 분노한 시민들이 배급처에 몰려들어 음식을 강탈해가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NKVD에 따르면 1942년 1월에만 이런 사례가 72건에 달했습니다.

배급카드와 음식을 얻기 위한 살해도 점차 그 빈도가 늘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이 중에 자신들의 가족을 살해한 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살인 또한 그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대부분이 배급체제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었습니다. 1941년 겨울에 거의 대부분의 행정 체제와 마찬가지로 경찰 기관 또한 제대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없었기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은 더 많으리라 추측될 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건 역시 식인행위였습니다. 물론 식인행위가 공공연하게 행해지진 않았고 대부분의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소문과 괴담, 혹은 이를 직접 확인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전해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납치되어서 먹힌다거나 거리에 나뒹구는 시체에서 옷뿐만 아니라 허벅지살도 뜯어져나갔다는 일기의 내용등이 이에 해당했지요.

NKVD에서는 1941년 12월 13일에 최초 9건의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어머니가 3살 먹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18달된 아이를 살해한 사건이나 일자리를 잃은 배관공이 아들을 먹이기 위해 아내를 죽이고 호스텔의 화장실에 시체를 숨긴 사건들이 여기에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듯이, 이런 식인 행위는 주로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취약계층에게서, 그리고 자신의 주변사람(심지어는 친족)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12월에는 26명을 이런 식인행위로 잡아들였지만 1월에는 356명으로, 2월에는 612명으로 겉잡을 수 없이 급증해버립니다. 이러한 식인 행위는 이후 어느정도 기세가 꺽여(하지만 5월까지도 300여건에 달했습니다.) 1942년 12월에서야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이런 식인행위도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러시아어로는 trupoyedostvo(corpse-eating)와 lyudoyedstvo(person-eating)으로 각기 따로 불립니다. 어감에서도 나타나듯이 전자는 시체를 '발견'해서 식인행위를 하는 것이고 후자는 식인행위를 위해 사람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식인 사례는 대부분 전자에 해당했습니다. 1942년 4월의 300여건의 식인 행위 중 44건만이 후자에 해당했지요. 치밀하게 계획된 연쇄적인 살인-식인 행위는 1건뿐이었습니다.(이는 6명의 젊은이들이 식품 판매를 미끼로 으슥한 건물로 유인해서 도끼로 피해자의 뒤통수를 내려치는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는 13명이었습니다.) 특히 식인 행위 자체가 도심지에서보다 근교 지역에서 더 심하게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이 지역에 취약계층이 살았을 뿐만 아니라 경찰력의 힘이 이런 극한 상황에선 닿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극한 상황에서 식인행위로 인해 자신들의 도덕성과 생존을 위한 욕망을 저울질해야하기도 했습니다. 광학 기술자인 드미트리 라자레프는 아내의 친구가 '사고사한 동료의 시체를 얻었으니 좀 얻어가라'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밤새 고민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그것만은!'이라고 외쳤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들이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커졌지만 그녀는 결국 반대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식인 행위로 잡힌 사람들 중 64%는 여성들이었습니다. 44%는 무직이었고 90%이상이 기초교육 이상은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대부분의 식인 행위는 오래된 스위니 토드 전설과는 거리가 먼,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아내들에 의해 이루어지곤 했던 것입니다.

이것도 블로그 복붙복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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