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 13일 아침, 알리 나시르 남예멘 대통령은
‘개각’을 이유로 각료들을 소집했다. 오전 10시에 아덴 항구 부근에 있는 그의 사령부에서 15인으로 구성된 ‘정치국’ 회의를 열겠다고 장관들에게 알린 것이다. 장관들은 국무회의 테이블에 앉아 알리 나시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대통령 경호원 한 명이 들어와 차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또 다른 대통령 경호원 하산이 알리 나시르의 서류 가방을 열어 스콜피온 권총을 꺼내 부통령 알리 안타르를 향해 난사했다.
이와 동시에 다른 경호원들이 AK-47 소총을 들고 들어와 다른 장관들을 사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들의 경호원들도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현장을 방문했던 「뉴욕 타임스」 기자 존 키프너는 벽의 카펫에 무수히 많은 피와 총알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
장관들은 각 부족의 대표로, 국무회의 총격전 소식이 퍼지자 아덴 거리는 부족들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일주일 동안 5천 명이 전사했고 6만 5천 명의 부족민이 북예멘으로 피신했다. 국무회의 총격전에서 살아남은 3명의 장관 가운데 한 명인 알리 살렘 알 베드는 존 키프너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동료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작년 6월 국내 정치 분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자는 조국의 반역자로 간주한다는 정치국의 결의가 채택되었습니다.”
나는 알리 살람이 그 결의를 믿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서방의 관측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중동 정치의 부족적 성격과 야만적 권위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의회 같은 민주주의의 외피만 본다.
Friedman, Thomas L.,
From Beirut to Jerusalem, New York: Anchor, 1990
(장병옥 역,『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서울: 창해, 2003, pp.91-92)
스펙터클하네요, 한국의 선진 정치문화를 도입해줘야 할 것 같네요. 남예멘이 공산국가란 건 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