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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05-18 13:54:46 KST | 조회 | 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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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18 이라서 혹시 이 글 내용이 대부분 사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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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18 최초 사망자가 전경 4명이었떤 이유(폭동분자들이 버스로 밀어버림)
2. 순식간에 유언비어가 퍼지며 무기고 7개를 동시 습격한 사실
3. 폭동분자들 탱크 몰고 민간인들을 잡아 다가 투항시킨 사실
4. 교도소 죄수들을 풀어준 사실
5. 방송국을 불지른 사실
6. 방송국 지하에 tnt 설치와 도청 장치 설치한 사실
7. 어린 청년들까지 폭동에 동원한 사실
8. 매년 북괴 들이 518 기념을 하는 사실
9. 김일성이가 5.18때 남하하지 못한걸 후회했던 사실
10. 윤기권 같은 색희가 돈 챙겨먹고 월북한 사실
11. 518 폭동관련 사망자 부상자 조사 결과 폭동군들이 사용했던 칼빈과 m1에 의한 민간 사상자가 더많은 사실
5.18은 민주화라고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먼저 대의명분이 부족했고 그들이 내세운건 김대중에 대한 정치 탄압과 구속을 풀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남한 적화를 노린 북괴의 계획적인 폭동입니다.
폭동인 증거는 여러곳에 존재하는데 광주폭동과 관련된 인물 중에 월북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김근태는 전가족 월북했고, 윤기권(화려한 휴가 안성기역)은 91년 광주폭동 보상금 2억 후령후 달러로 환전한 직후에 바로 월북했습니다.
그 외에 문익환, 시인 황석영 등 광주사태와 관련자들중에 주요 인물들은 북한에 월북하여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찬양했던 인물입니다.
그 외에도 광주폭동당시에 전라남도 지역곳곳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는데 사건 일지와 장소를 보면 항구에서 시작되어 내륙으로 갔다가 다시 항구에서 끝났는데 루트를 연결해보면 간첩이 침투하는 루트와 동일하였습니다.
그리고 무기고 70여곳이 동시 다발적으로 습격당하고 무기가 탈취 되었던 것입니다. 광주폭동이 만일 계획적인 북괴 내란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무기고 70곳이 동시다발적으로 털리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주사태는 6.25같은 장기전도 아니고 길어야 열흘 정도 밖에 안되는 단기 국지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원을 알수 없고 시신을 찾아가지 않는 시체가 수백구에 달했던 점입니다.
요즘 뉴스 같은거 보면 민,군에서 합동으로 6.25 전사자 시체 찾아가고 아무리 수십년이 흘러도 시신을 수습하고 싶은게 가족의 도리인데 광주사태 당시에 사망한 시체는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 무더기로 매장했습니다.
이거는 나중에 남북통일 되면 시체 찾으러 오겠지만 북한에서는 5.18을 광주인민봉기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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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주 유언비어 중에 여학생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여직원의 팔을 도끼로 자른다는 내용이 있음
이것은 유언비어로 과장된 선동문구로 흔히 알려져있는데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것은 실제 북한에서 생방송되었으며, 수십 차례 재방송을 했음
-> 국군이 여학생의 가슴을 칼로 자르고, 팔을 도끼로 자르는 내용을 북한에 생방송으로 송출했겠는가?
아니면 북한 간첩들이 만행을 저지르고 이것을 국군의 행위인양 북한에 생방송으로 송출했겠는가?
2. 계엄군이 처음 광주시청에 당도했을 때, 시민들과 계엄군간의 육탄으로 밀고 당기기 싸움이 있었는데
별안간 총알이 날아와 계엄군과 시민을 사살함, 이 때 시민들은 계엄군의 등뒤에 숨음
-> 계엄군과 시민 사이에 총알을 뿌린것은 누구겠는가? 왜 시민은 계엄군의 등뒤에 숨었겠는가?
3. 광주의 무기고는 38개소가 있었는데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일사분란한 작전 아래
불과 3시간만에 38개소가 모두 털림
-> 정규군의 무기고를 3시간 안에 38개를 털은 그들은 일반 시민일까? 북한의 특수부대원일까?
4. 518 광주반란 당시 시민측 사망자는 M16 탄흔 사망자보다 칼빈탄 사망자가 훨씬 많음
계엄군은 소총으로 모두 M16을 썼고, 광주 반란군은 소총이 대체로 칼빈
-> 팀킬을 한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5. 광주에 8톤 분량의 TNT가 설치되었는데 TNT를 구분해내 선별적으로 절도하고, 뇌관을 설치해 기폭장치를 갖추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고, 당시 광주에는 폭파전문가가 없었음
이 TNT가 폭발했다면 광주의 절반이 날아갔을것이나, 계엄군과 목숨을 걸고 계엄군에 내통한 한 시민의 도움으로
간신히 광주가 아작나는 사태는 면함
-> TNT를 설치한 기술자는 누구인가?
과연 이들이 정말 광주시민이였다면 어찌 고향인 광주와 동지들을 다 폭사시키려 했겠는가?
6. 광주에서 남측 방송은 믿을 수 없으니 이북 방송을 청취하라며 주파수를 알려주고 널리 듣기를 권함
-> 이북 방송 듣기를 권하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7. 지만원씨가 518 관련 명예훼손으로 재판을 받을 때, 북한의 역사기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북한이 518에 어떻게 개입하고 어떻게 쌍방을 교전에 이르게 했고 어떻게 무기고를 털었는지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있어
3인의 공동재판부 판사들과 원고측 검사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이후 광주에서의 무질서, 약탈, 방화, 살인 등 민주화와 어울리지 않는 행위는 너무나도 많으나
지금은 북한군 개입 증거를 말하니 여기선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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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1시 40분 : 비상국무회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의결 · 23시 00분 : 민주인사, 복적생, 학생운동 지도부 등 예비검속 · 24시 00분 : 비상계엄 전국확대, 광주시내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및 학생 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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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시 40분 : 계엄군에 의해 전남대생 50여명이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 당함. · 10시 00분 : 학생들이 "계엄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 · 10시 15분 : 곤봉을 휘두르는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으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 · 10시 20분 : "금남로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하기 시작 · 15시 40분 : 유동 3거리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면서 진압작전 감행 · 19시 02분 : 계엄사령부, 광주지방 통행금지시간이 저녁 9시로 앞당겨졌다고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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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시 00분 : 증파된 11여단 병력, 광주역 도착 최초희생자 발생(김경철) · 20시 00분 : 수만명의 시민들 "전두환 타도" 외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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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시 00분 : 고등학교 휴교조치 ================================ 대통령도 518 행사에 참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것을 보면 뭔가 현재 알려진 진실과 사뭇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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