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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04-08 00:03:53 KST | 조회 | 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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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중간하게 노숙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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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대학 오리엔테이션 버스를 타야하는데 워낙 거리가 멀어서 통학버스를 타는 곳을 착각. 이제와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자니 너무 귀찮아서 [뭐, 귀찮으니까 저녁까지 시간 때우다가 집에 돌아가면 되겠지.]
해서 물고기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문자가 오더군요. 형한테서요.
"큰일났다, 그거 1박2일인데 잠옷이랑 양치도구 없으니 어쩔거냐."
선택지.
1. 정직하게 말한다. "어...오리엔테이션 안 갈건데."
2. 답변하지 않는다. 난 지금 버스에서 자고 있으니까.
애석하게도 교통비만 딱 들고 왔기 때문에 물고기방에 갈 여유가 없었어요. 저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제와서 집으로 돌아가서 잔소리 먹기는 싫은데. 후아아아아.
어떻게든 되겠지해서 저녁까지 동네를 빙글빙글 돌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잠을 잤습니다. 저희 집 아파트 비상계단에서요. 창문이 없어서 바람도 안 불고 사람도 없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거든요. 2월이라 밖이 춥기도 했고. 주상 복합이라 꽤 아늑합니다.
하지만 바닥에서 한기가 끝없이 올라오더군요. 또 몸이 추우니까 소변이 또 마려워요. 1층으로 내려가서 방문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배는 고프고 잠은 안 오고.
웅크려 보고 그냥 재킷으로 요를 깔고 누워도 한기가 끝 없이 몸에 스며옵니다. 그렇게 3시간 가량을 아둥바둥 거리다가 지하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는 곳인데 거기서 신문지를 듬뿍들고 왔지요.
깔아보니까. 오, 그나마 살만합니다. 몸위에 덮어보니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잠이 안 오는건 여전했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창문이 없어서 햇빛이 전혀 안 들어옵니다. 완벽한 어둠의 세계라 시간감각도 희박해지니 뭐라 형용하기 힘든 고통이 끝 없이 닥쳐와요. 코트 입고 나올 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시간 간격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면서 시간을 확인했고, 다음날 낮이 되서야 저는 집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몸이 얼어서 씻고 싶기도 하고 피곤해서 그냥 자고 싶기도 해서 환장하는 줄 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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