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건에 대한 묘사가 형편없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해, 스토리가 전혀 없습니다.
스타워즈에서 루크가 광선검 얻고 바로 황제 목을 딴다면, 누구도 이걸 좋다고 하지 않을 겁니다.
헌데 군심 스토리가 딱 그렇습니다.
케리건이 힘 얻고, 황제 목딴다. 끝.
바로 이것이 눈보라의 케리건 밀어주기가 형편없는 이유입니다.
절대적인 강자가 별다른 굴곡없이 복수를 성취해서 감동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케리건을 정말로 우주를 구할 열쇠를 만들고 싶었다면 그에 걸맞는 위기를 주어야 말이됩니다. 아몬말이죠.
어떤 사람은 아몬은 등장하지 않아야 아몬의 위엄이 산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그런가요?
아가사 크리스티의 빅포에서 제1호인 중국인은 마지막까지 콧뵈기도 안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에르큘 포와로를 몇번이나 궁지에 빠뜨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입니다.
코난 도일의 모리아티 교수는 어떤가요? 그는 회상으로만 나올뿐 실제로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셜록 홈즈를 몇번이나 몰아붙였으며 그 강렬한 포스는 지금도 홈즈의 최대 적수로 인정받습니다.
조지 루카스의 펄버틴 황제역시 실질적인 등장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럼에도 황제의 포스는 공포통치란 제국의 모습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스토리에서 주목할 만한 악역 즉, 아몬의 부재는 케리건의 개성 부재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악역은 단지 스토리상의 역경을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프로타고니스트를 '정의'합니다.
은하제국과 황제가 다스베이더와 루크를 완성시켰듯, 악역과 역경이야말로 주인공을 완성시키는 핵심입니다.
그런데 케리건은? 알맹이가 없습니다. 속이 텅텅 비었어요.
맹스크가 스타크래프트의 우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를 쓰러뜨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군심에서 나오든가요?
맹스크는 이미 자날에서 악역으로서의 임무를 다했습니다. 그는 이미 쭉정이에요. 군심에서 죽은건 확인사살 밖에 안됩니다.
맹스크는 세계관으로보나 케리건에게보나 '일시적인 위협'밖에는 안됩니다.
셜록 홈즈에게 가장 큰 타격을 가한 존재는 홈즈가 기진맥진할때 습격한 불량배입니다만,
그렇다고 누가 그들을 홈즈의 적수로 봅니까? 그들이 홈즈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홈즈의 적수가 모리어티이듯이 케리건의 진짜 악역은 아몬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빅포에서 그렇듯, 홈즈에서 그렇듯, 스타워즈에서 그렇듯, 아몬은 굳이 등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몬이 무슨 의미를 지닌 적이고, 그와 대적하는게 무슨 의미인지만 분명히했으면
케리건이 악역으로서 별 쓸모도 없는 맹스크 목이나 따고 덩달아 쭉정이가 되는 꼴은 안되었을 겁니다.
물론, 케리건을 살리는게 꼭 악역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케리건 자체의 케릭터를 살리는 방법도 있죠.
그래서 제대로 되었던가요? 아닙니다.
절대적인 강함을 지닌자가 소원을 성취하려는 것('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체엔 문제는 없습니다.
절대적인 강함을 지녔지만 슈퍼맨은 언제나 고뇌합니다.
왜냐면 그는 그 힘과 관계없이 영원한 이방인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많은 입양아, 이민자처럼 그는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주변인으로서 밖에 살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인류의 적이 되는 것 자체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악중의 악. 마계의 제왕인 루시퍼는 형제들을 등돌린 것을 한치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악의 정점에 서 있는걸 자랑스러워 합니다.
동시에 천국에 대한 충성심은 그 어떤 천사보다도 강합니다(자신이 마왕인데도!).
이런 부분이 단순해질 수 있는 인물들에게 새로운 면을 부각시키고 강렬한 매력을 선사해줍니다.
이제 케리건을 다시 봅시다. 케리건에겐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서 명확한 역할이 정해져 있나요?
스토리에서 확연한 대적자나 역경이 있나요? 그것이 케리건이나 세계관에 명확한 의미가 있나요?
케리건이란 인물 자체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나요?
...전 이 모든 질문에 '아니오'로 답할겁니다.
...진짜로, 어떻게 쥐어짜도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볼때...
케리건은 매우, 매우 한계가 분명한 케릭터입니다. 보다 정직하게 말해 장래성이 없습니다.
스토리가 진행되어서 '좋아 이제 우리 우주에 위기는 없어!'라고 말하면...
팬들에 의해 케리건이 재조명을 받거나, 사랑받거나, 세계에 미친 영향을 평가받는 일은 없을겁니다.
케리건은 그만큼 깊이가 부족한 얄팍한 캐릭터입니다.
이런 케리건을 밀어주는건 스타크래프트 자체를 얄팍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케리건의 어디의 어느 부분이 밀어줄 부분이 있는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네요. 인터넷 양판소의 먼치킨 영웅보다 케리건이 나은 부분이 뭐가 있는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