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반란군이요. 내가 가진 거라고는 스코티 볼저 올드 8번이 든 술병과 멩스크의 이마에 박아줄 총알 한 발,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 뿐이오."
제임스 유진 레이너가 코랄에서 벌어진 오딘 전수식에서 멩스크 황제의 범죄를 밝히기 위해 가던 도중 UNN 기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케이트 록웰이 방송한 <레이너 특공대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코프룰루 구역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건설로봇을 뽑게 되지만, 때로는 그 건설로봇 때문에 인구수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꾼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주병력 인구수가 막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해 경기 초중반까지 멀티기지 두 곳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건설했었다, 전장을 지금의 행성으로 옮겨 왔을 때 앞마당과 3멀을 먹은 것이다. 상대는 저그라 테란이라고는 해병과 건설로봇들 뿐이었다. 건설로봇들을 위해 행성요새를 박았고, 뮤탈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 자원 근처에 미사일포탑 다수를 박아 두기도 했었다. 사령부 위에 뜬 숫자가 꽉 차면 새로운 광물필드를 찾아 건설로봇의 일부를 옮겨 주어야 했고, 더 원활한 자원 수급을 위해 지게로봇도 내리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산개 연습에 바쳤더라면 아마 이정훈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건설로봇을 뽑고 관리한 보람으로 해병불곰은 자극제와 방패를 달고 췩 소리를 내며 나를 설레게 했고 의료선들은 초승달처럼 항시 하늘에서 청청했었다. 우리 테란 진영을 찾아온 사람마다 해불선 부대의 위용를 보고 한결 같이 좋아라 했다.
초반이 말리고서도 저그 멀티 두곳을 화려한 의료선 견제로 파괴한 어느 날 신나게 멀티와 3멀을 동시에 먹은 일이 있었다. 완성이 돼자 궤사에서 지게가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병영에선 병력이 미친듯이 뿜어져 나왔다.
아차! 점막을 걷으며 중앙까지 진출하자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포탑을 짓지 않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의료선 컨트롤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뮤짤에 터져나갈 건설로봇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3멀로 돌아 왔다. 아니나다를까, 건설로봇은 상당히 줄어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사령부를 그룹지정해서 S키를 연타했더니 1년전보단 많이 뽑혔다. 하지만 게임시간이 30분 넘어갔는데도 40기 이하인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건설로봇에 너무 집착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