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지껏 스타2를 해본 적이 없다. 프로리그 병행 시즌부터 스타2를 보았으니 아마 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비교할 때 월등히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적으리라 생각된다. 처음 스타2를 보았을 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혀 다른 게임 양상과 유닛, 빌드 등등, 스타 1에 익숙한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프로리그에서 진행되는 게임양상은 1합 승부에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아, 스타2의 재미를 찾기 굉장히 힘들었다.
게임이 이상했던 걸까? 그건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브루드워가 유별나게 재밌는 게임이라 티빙 스타리그에 1만여 관중이 몰렸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게임 그 자체보다 그 게임에 모든 걸 바친 게이머들의 역량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런 면에서 게임 숙련도가 높은 경기는 프로리그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GSL의 명경기와 생중계를 하나 둘 씩 챙겨보기 시작했다.
스타리그 중계진들이 말하기를 안준영 해설 스타일은 경기를 즐기는데 다소 저해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엄재경 해설위원은 게임 내적인 행위나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보다 흥을 돋구거나 포장을 하는 쪽의 해설이라 말한 바 있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두 가지는 칼로 무를 베듯 둘로 쪼개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때, 포장에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 아닌가? 스타리그 해설진들을 보면 뭔가 굉장히 급급해 보이는데 목소리만 크다. 서로 말을 끊기 바쁠 때가 있는가 하면, 삽시간에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정적이 흐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게임 흐름을 중계진들이 따라가지 못한다. 이게 흥이 아니라 '흥!'인데다, 결론적으로 '망'이고 '쇠'이며 '퇴'이기도 하였다.
나는 정윤종과 김성현이 스타리그 해설진들의 역량을 명백하게 노출시킨 게이머라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정윤종 선수를 매우 좋아한다.) 이런 저런 별명을 정윤종에게 붙이려 해보았지만 모든 게 엉성했고, 이상했고,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힘들었다. 스타리그 해설진은 기존 스타2 팬들을 비롯하여 새롭게 스2의 참맛을 보고 있는 라이트 & 신흥유저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스타리그가 이번에 건진 건 엄대엄 하나 밖에 없지 않나? 이영호와 김성현의 경기에선 이영호란 흥행 티켓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예상치 못한 김성현의 역스윕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가진 자에게 빌붙는 386 세대의 전형을 엄전김을 통해 보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망상이었을까? 리그 브레이커란 오명이 김성현에게 주어졌다면 리그를 브레이킹한 건 해설진들의 무능력이리라.
나는 박상현 캐스터의 능력을 굉장히 높이 사는 편이다. 일견 오바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설진들을 누구보다 잘 조율한다. 게임의 상황에 따라 발언권을 자연스럽게 넘기는 진행력이 발군이다. 여기에 해설자를 칭찬함으로써 중계진의 사기를 높인다. 다소 과장이겠지만, 강호동과 유재석이 결합된 캐스터란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 점은 어떤 취향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장담하건대 코드 S 중계에서 서로 말을 끊어 먹는 일은 일절 없다.
해설진들의 브랜드 파워 또한 리그의 흥행에 커다른 몫을 담당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 스타리그에서 13년 간 탄탄하게 이어져 왔다는 해설진들의 인지도와 관중 동원율이 비례하였던가? 김캐리의 눈물도, 전용준의 하소연도 옥션 올킬 스타리그로 이어지진 못했다. 내가 여기서 해설진들에 대한 언급만 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옵저버, 화질, 게임 연출 전반에 대해 지적하였다. 이번 스타리그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스타2가 기존의 스타1이 가져온 인기를 이어가기란 어려울 것이다. 유저수가 월등히 낮은 상황에서 지난 날의 영광을 재현하기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해설진들의 역량이 아주 큰 변수로 작용하리라 생각된다. 고스트 바둑왕이란 만화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정말 이상한 건, 나는 바둑의 바자도 모르는데 만화가 재밌다는 거다. 중계진들의 포지션이 고스트 바둑왕의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타1의 인기를 스타2가 계승하지 못한 원인으로 케스파를 지적하시는 분들이 많다. E스포츠 팬층을 이루고 있는 10대 20대들에게 케스파 특유의 관료적이고 독재적인 성향은 맞지 않다. 프로리그의 실패를 비롯하여 GSL 출연 보류 사태 또한 동일한 맥락이 아니었던가? 온게임넷 또한 그러한 절차를 밟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온게임넷 해설진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해설진 선별을 온게임넷 수뇌부가 아닌 팬들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해설자 서바이벌을 제안한다.
현 스타리그 해설자인 엄재경, 김캐리과 더불어 김정민, 이승원, 박태민, 유대현 해설자들에게 스타리그를 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건 어떨까? 현장 관람을 하고 계신 팬들의 투표와 TV로 관람하시는 팬들의 문자 투표를 합산하여 해설자를 결정하는 방식이 어떨까 싶다. 이스포츠 팬 입장에선 새로운 흥미 거리가 생기는 점에서 흥미를 가질 수 있고, 온게임넷 측에선 새로운 떡밥으로 흥행 요소를 취할 수 있고, 해설진들에겐 새로운 모티베이션이 생기는 셈이다. 속칭 겜알못으로 평가 받는 엄재경, 김캐리에겐 오명을 씻을 수 있고, 클래스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온게임넷 내부적으로 이번 스타리그를 복기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팬들의 담론과 온게임넷 내부의 그것은 다소 다를 수 있다. 무엇이 되었든, '문제가 있다'는 점과 '이대로 안 된다'는 점에선 동일하리라 생각된다. 어느 때 보다 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RT 9999 되면 핫식스로 목욕을 한다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팬층이 적은 반면 결속력이나 충성도는 어느 때보다 높다는 걸 증명하는 것 아닌가. 온게임넷은 이제 소통과 피드백을 전면으로 노출시켜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해설자 서바이벌은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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