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으로 인해 연맹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 체류한 탓에 연령대 (88년)에 비해 스타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꽤 늦은 편이었지만 (제대로 팬이 된 것은 아무래도 2010년 초) 나름 열성팬으로서의 자긍심(;;)도 가지고 스타판을 그동안 열심히 응원했었습니다. 스타2가 출범한 뒤에는 GSL 오픈 시즌 2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거의 모든 경기를 챙겨보고, 그 와중 스타1도 가능한 선에서 시청할 수 있는 경기는 다 보았습니다. 스타1 판에서 승부조작이 터졌을 때 모두와 함께 당사자들을 규탄했습니다. MSL이 망했을 때 모두와 함께 절규했습니다. 협회가 각종 병크를 터트릴 때 모두와 함께 협회를 깠습니다. 심지어는 이번 스타리그 보이콧 사건 때에 협회가 저지른 병크를 이해하지 못하고 협회를 옹호하는 해외 팬들에게 분노해서 팀리퀴드에서 글로 폭주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연맹은 협회와는 다르게 모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집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 환상은 설마 단기간이었더라도 슬레이어스에게 연습제재를 가한 것이 밝혀진 연맹 측의 행동으로 무참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연맹은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 생각이 듭니다.

"연습제제는 잘못되었지만 왕따는 아니었다"라는 연맹 측의 발언에 저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게이머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아실 거라 믿습니다. 비록 스타크래프트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이 게임의 특성상 연습할 상대가 없으면 연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그 당시 스타2 게이머의 절대다수인 현 연맹 구성원 팀들이 한 팀을 상대로 연습제재를 가했다라는 것은 그 팀에 소속되어있는 선수들의 게이머 인생을 끝내버리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을 사회에서는 린칭 (lynching)이라고 부릅니다. NASL 불참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린칭을 일개 게임단 전원에게 가하는 연맹, 이것이 각종 무법 단체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왕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참여의 자유"를 표방한 연맹이 실제로는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댓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 말입니까?

이 사건에는 프로의식이라는 말을 꺼낼 필요가 없습니다. 프로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슬레이어스가 연맹에게 매우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해도, 기간이 얼마나 되었간 간에 무조건적인 연습/채팅제재를 하달한 것은 대놓고 연맹 소속 선수들에게 "우리와 함께 안 했으니 슬레이어스가 나쁜 놈들이다"라고 권위를 이용해 선동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고, 이는 위에 말한 것처럼 집단 폭행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일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천한 제가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연맹 수뇌부 퇴진을 요구하자니 수뇌부가 팀의 운영을 맡고 있는 이상 퇴진할 경우 선수들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한 일이며, 그렇다고 협회의 과거 행적을 봐서는 협회를 믿을 수도 없고...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진정한 선수협의회가 등장해서 협회와 동등한 위치에 맞서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타2 판 초기에 이런 사건이 등장해서 미리 암을 잘라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결말을 깔끔하게 짓지 못한다면 이 암은 스타2 판 뿐만 아니라 이스포츠 판의 전부에게 전이될 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 두렵습니다. 아무쪼록 잘못을 인정하고 더 발전하는 스타2 판을 바라는 한 팬의 염원입니다. 관계자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립니다.

서울에서 9600 km 떨어진 곳에서 스타팬 pencil_ethics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