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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리호성
작성일 2012-05-15 15:45:33 KST 조회 180
제목
[스갤문학]단편 어느 은퇴한 프로게이머의

ㅇㅇㄴ 님 작품


됐다는 것을, 굳이 따라가는 내내 동갑내기 팀원은 그에게 그랬다. 도착하면 전화해라, 꼭 연습실 놀러와야 된다, 경기 보러 와, 연락 자주 하고, 안 그럼 죽는다! 지하철에 도착하고서야 그는 대답했다. 알았다, 맛있는 거 사가지고 놀러갈게, 간다, 들어가봐. 선선히 손을 들어보인 그와는 달리, 쉬이 안녕하지 못하는 동료의 눈빛은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그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는 재차 손을 저어보이곤 계단을 도망치듯 내려갔다. 오전의 지하철은 한적하다. 그는 스크린 도어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양 뺨이 푹 꺼져있다. 언제 이렇게 살이 빠졌다냐, 어머니 속상해 하시겠다. 하며 그는 푹 쭈그려 앉았다. 무릎이 절로 꺾일 만큼이나 생각은 무게가 엄청난 반면, 어린애 인형마냥 꼭 끌어안은 가방은 썩 버겁지도 않다. 덕분에 몸은 매우 가벼우니 다행이라면 다행인가.전동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한걸음 물러서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은 참으로 상냥하다. 그는 주머니 속의 라이터를 떠올렸다. 송별회 후, 조금 취해있던 그는 숙소 앞 편의점에 갔었다. 담배 한 갑이랑, 어... 그냥 아무거나, 네, 그냥 그거요, 저, 저기 라이터는 그... 빨간색, 빨간색으로 주세요. 떠듬떠듬 술냄새 섞인 요청에 카운터의 여자는 의아해하는 표정이었지만,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상투적인 인사와 함께 웃었더랬다. 또 오세요! 명랑했던 그녀의 목소리를 곱씹으며 그는 일어났다. 싸구려 라이터면 족하지. 불쏘시개가 될 추억에겐 죄스러워 말자. 별 것도 아닌 거, 그까짓 거. 고집스럽게 다물리는 입. 스크린 도어가 열렸다. 전동차로 들어서는 이마와 목과 어깨는 곧은데, 내딛어진 발은 잠시 망설인 듯도 하다.

 

  네,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가요, 짐 부친 건 도착했어요? 네 되도록 일찍 들어갈게요, 연락 드릴게요 네네. 전화를 끊자마자 도착한 메세지를 확인하는 대신 그는 버스표만 한참 보았다. 광주. 그는 과앙주우, 느릿느릿 해보았다. 그러며 어정쩡 서있던중 급하게 지나가는 이에게 어깨를 치였다. 사과도 없이 멀어지는 뒷모습이 아닌, 숨가쁘게 딸려가는 캐리어를 바라보다 표로 옮겨지는 시선은 우습지만 덤덤하다. 언젠가 용산 경기장 옥상. 겨울답지 않게 따스했었다. 팬미팅의 화제는 여행이었고, 누군가가 쨍하게 그랬다. 선수님 영산강이 진짜 좋아요, 제가 저번에 여행 갔었는데 진짜 예뻐요, 꼭 가보세요! 영산강. 영산강. 영산강. 그가 번잡한 고속버스터미널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출발시간은 한참 남았지만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서 그런걸까, 내딛는 꼴이 엉망진창. 발은 점점 느려지다, 두어번 삐끗하고, 결국 멈추었다. 찡그리며 올려다본 천장 전광판 시계의 숫자가 시뻘겋다. 정각 한 시. 한 시. 아. 한 시. 빨간색. 빨간색. 빨간색 유닛이 좋은데. 습관은 무섭다. 우두커니 서선 팔을 축 늘어뜨린채, 잘게 움찔대는 손끝은 흡사 키보드를 두들기는듯. 그러던 그가 정신을 차렸다. 이 병신새끼! 가방끈을 움켜쥐는 손마디가 창백해진다. 미친놈처럼 걸으며 그는 내려놓을거다, 재차 다짐했다. 모두. 죄다. 조금만 남겨놓고 다 털어내야지.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프로게이머로서 시선과 주목과 환호를 한 몸에 받아왔던, 이젠 그저 이십대 중반의 평범한 청년의 신분이 된 그는 이제 최소한으로 추려낸 기억과, 나머지를 불살라버린 한 줌의 재만을 원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다. 잔상만큼은 무지개면 좋겠다아. 지난 몇 년은 힘들고 고달팠지만, 또한 행복하고 다채로웠으니까. 그래서 그 정도의 바람은 욕심이 아닌 예의라며. 그렇게, 그는 영산강으로 간다.

 

  스물 다섯을 조금 넘긴 그가 강변에 섰다. 예전의 그는 한강을 종종 찾았었다. 검은 밤의 한강은 삭막한 인공조명이 흘렀었드랬다. 지금은? 내려앉는 노을의 자락은 자연의 파스텔톤이어서 그는 그제야 아 서울을 벗어났구나! 했다. 으그그그, 기지개를 펴니 긴 버스여행에 굳어있던 관절이 비로소 풀린다. 뚜둑. 뚝. 가뿐한 소음. 와아 진짜 죽이네 여기! 그는 사진을 찍는 대신 손가락으로 앵글을 짜보았다. 양 손의 검지와 엄지를 비틀고 맞댄 직사각형의 틀. 어설프다. 어쩐지 쑥스러워졌지만, 그 상태로 팔을 내뻗은 그는 좀 홀가분해지는 거 같다, 막연히 생각했다. 그는 대부분을 뜨거운 조명과 높은 무대와 중후한 부스에서 있었다. 그 곳에서 항상 피사체의 입장이였던 그는, 이젠 그럴 필요성이 사라졌다. 강변을 디딘 다리는 트라이포트. 예전에 솜털이 가신 두 귀는 마이크. 연신 가늘어지는 눈은 렌즈. 이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덕지덕지 덧대여봤자 지저분해진다. 손가락의 틀 안에 담으려 했던 것은 그저 현재의 강풍경이었는데, 어쩐지 눈앞을 선명히 가리는 것은 과거의 추억. 방송 시작하겠습니다아- 오! 사! 삼! 이! 일! 경기장 스테프의 싸인이 떨어지면 그는 팀원들과 줄지어 무대로 올라갔었다. 열기의 박수 속에서 상대팀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었다. 팀원들과 모여 화이팅을 쩌렁 외쳤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벤치에 앉아 팀원의 경기를 봤고, 자신이 준비한 세트에 출전을 했었다. 이기는 날은 웃고, 지는 날은 입을 굳게 다물고. 그랬었다.

 

  다 버리고 와야지 했으면서도 지금의 그는 그런다. 보기보다 미련을 끌어안는 성격일까. 아니라면, 관성의 법칙은 물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보다. 오오- 사아- 사암- 이이- 이일- 별로 환청 같지도 않은 스테프의 싸인을 힘껏 재현해보는 입은, 그럼에도 모양만. 소리는 부재하다. 임시의 직사각형 프레임 속에서 모든 풍경이, 사물이 움직인다. 가식적인 대사는 없다. 제각각 울고 웃고 박수치고 흥분한다. 한숨과 야유가 뒤섞이기도 한다. 소수의 것들은 침묵을 고수한다. 환상속 상대의 본진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gg가 뜬 순간 그는 잠시 숨을 참았다. 실제 필름으로 남는 것도 아니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와꾸조차 짜지 않아 담담하되 치열한 기록. 지루한 다큐멘터리, 혹은 총천연색의 영화. 쨌거나 거칠게 잘라 이어붙일 장면 하나하나는 노이즈가 심할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고서도 그는 내내 강변이었다. 밤의 강바람은 유독 써늘하다. 얇은 옷 아래로 소름이 돋고, 숙소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 이후 아무것도 넣지 못한 위장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다. 허기를 느끼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 하지만 그는 별 일 아닌 듯 말았다. 몸뚱이가 비틀거리는대로, 무릎이 꺾이는대로 내버려두었다. 불안정과 어긋남은 리얼리티의 대명사라고 했던가. 누가 그랬더라, 거 참 말 존나 어렵게 하네.

 

  이쯤해서 정리는 대략 끝난듯. 얼추 갈무리된 머릿속 영상들을 마지막이다 하며 되감아보던 그가 멋쩍게 웃었다. 간지럽지도 않은 뒷덜미를 긁적이는 손이 부산하다. 어설픈데다 감정이 과잉되어 덧대어진 작업의 결과물은 허접하기가 짝이 없어 고전처럼 품격이 높지도, 판타지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는 아쉬워는 안 했다. 이정도면 준수하지. 먼지가 가라앉은 골방에 처박아 두었다가 가끔이나 슬슬 돌려보면 혹시 알아. 간혹 감격도 하고, 감상에도 젖어보고, 순수한 외연도 설핏 느낄지도 몰라. 이러한 그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들은 분명 비웃을 것이다. 그 누군가들이 종종 지껄이던 말이란 것이 이렇다. 프로게이머? 아아 그 게임폐인들? 온종일 앉아서 키보드 두들기고 게임이나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는 오락쟁이들? 여태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하느라 우겨넣었던 대꾸를 그는 지금에서야 질러본다.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떠냐, 가벼우면 또 어떻고 유치하면 뭐 어쩔건데 이 시 발새끼들아! 피같은 외침에 놀란 물새의 날갯짓소리가 푸드득! 솟았다, 흩어졌다.

 

  팬에게 선물 받았던 청바지, 동료들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주었던 티셔츠, 경기가 있는 날 즐겨신었던 운동화는 묵묵하다. 멀끔한 운동화코를 내려다보던 그의 왼쪽 손목으로 문득 통증이 일었다. 습관처럼 주무르고 있자니 쌍소리가 절로 샌다. 그는 문득, 혹은 그제야, 화가 치밀었다. 손목이 이 꼴만 안 됐어도. 하지만 이내 저어지는 고개. 됐다 병신아, 그런 생각해서 뭐해, 이제 와서 뭔 소용. 지 주인이 눈물을 뽑건 썽을 내건 싹싹 빌어보건 난 모르는 일이요, 하며 야속하게 고장나버린 손목은 은퇴의 합당한 이유였지만, 유일함은 아니었다. 조금씩 떨어지는 성적. 그에 따른 주변의 우려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흔들리는 판. 불안한 자신의 미래. 그래서 그는 더 이상 화를 낼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빼곡하게 들어찬 메세지들. 진솔한 혈육에 진배 없던 이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뭐라고 답장해야하나. 망설이던 그는 결국 다 넣어두곤 먼 곳을 응시했다. 일렁이는 강물 속으로 채 가라앉지 못한 기억의 재가 조금은 묻어나면 좋겠다. 남김없이 버려야지 했지만, 실은 애초에 알고 있었다. 모두 버리지 못할 것도, 미련스레 뒤를 돌아볼 것도. 은퇴를 알렸던 진지함 끝의 침묵, 이어 쏟아지던 탄식들이 떠오른다. 그는 그의 은퇴를 다룬 기사 여럿은 빠짐없이 정독했지만 댓글은 단 한 줄도 보지 않았다. 웃음과 눈물은 한 끗 차이라던가. 그래서 그는 소리내어 웃어본다. 저 홀로 실실 쪼개는 것이 흡사 실성한 사람의 꼴 같다.

 

  응, 아침에 나왔어. 아직 집 아니야. 어디 들릴데가 있어서 잠깐 왔다. 서울은 아니고 저... 여튼 여기서 하루 자고 집엔 내일 간다. 뭐? 밀월여행은 무슨? 여친 없는 거 알잖냐. 그래. 앞으로는...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아직 잘 모르겠다. 군대부터 빨리 다녀올까 싶기도 하고. 근데 진짜 잘 모른다. 아직은. 여튼 잘 하고 있어. 언제 한 번 경기 보러 올라갈게. 너무 무리하진 말고. 쉬엄쉬엄 봐가면서 해. 그래. 연습 열심히 해라. 친형제 같던 타팀 누군가의 통화를 끝으로 그는 강변을 떠나기로 했다. 이쪽으로 가면 되나? 방향 맞나? 하룻밤 묵을 민박을 찾아나서는 그림자가 홀가분해보이기도 하고. 되레 배로 지쳐보이기도 하고. 자박자박 어둠을 차던 그가 생각난듯 담배를 꺼냈다. 예전엔 엄두조차 못 냈었는데, 감독님 아시면 놀라 자빠지시겠다. 비닐을 뜯어내는 손동작도, 하나 꺼내물어 불을 붙이는 모양도 어설퍼죽겠다. 힘껏 들이마시자마자 콜록콜록, 기침과 함께 눈물이 찔끔. 아 이딴 걸 왜 피우는건데? 구시렁대면서도 내팽겨치진 않는다. 무슨 생각일까. 어색하게 담배를 쥔 왼손. 오른손잡이면서 왼손으로 담배를 잡은 그는 어쩐지 슬퍼졌다. 아주 안녕하는 날이 오겠지. 기왕이면 바람이 맑고 햇살이 따뜻한 오후면 좋겠다. 완전히 털어낼 마지막 순간만큼은 찬란하길. 근데 지나치게 밝지는 않으면 싶기도 해. 싫다는 걸, 안 된다는 걸 억지로 등 떠밀어 내쳐버린 과거의 자신은 진작에 멀어졌을거다 했지만, 실은 그러지 못했다는 걸 안다. 오랫동안 그럴 거라는 것 역시. 제 속 어딘가에서 꼭꼭 숨어 웅크려지낼 예전의 자신이, 이미 난 널 버렸으니 꺼져라 이따위 윽박에 서러워할까봐 조금 겁이 난다. 어색한 연기에 매운 눈을 껌벅이며 그는 걸었다. 달도 별도 없어 시꺼먼 길을 전쟁의 한복판처럼 걸었다. 강바람을 탄 눈물이 뺨 위로 사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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