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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05-14 22:20:32 KST | 조회 | 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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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28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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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펌 눈참매 님 작품
프로리그 병행 후 벌써 28일이나 지났다.
스타크래프트 1, 스타크래프트 2 병행 체제 운영.
그것은 선수들로 하여금 긴 연습시간과 심각한 수준의 정신적 요구를 필요로 했고, 결국엔 그 스트레스를 극에 달하게 만들었다.
연습생의 기대심리조차 허망하게 무너졌다,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예전 스타크래프트1로만 운영되던 프로리그에서 주전을 차지했던 선수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상황 속에서, 숙소를 박차고 나오는 프로게이머들이 많아지고 결국에는 이스포츠에는 소수의 프로게이머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동생들을 달래고, 떠나가는 동료들에게 애원도 해 보았지만 그들은 더 늦기 전에, 이 희망고문을 끝내고 싶다며 모두 팀을 나가 버렸다.
얼마전에 감독님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아마 CJ 프론트 측일 것이다. 이미지 마케팅을 위해서 수십 억을 쏟고 있는 CJ쪽에서 더 이상 이익이 될 것이 없어 보여 발을 빼겠다는 내용을 통보했고, 그것을 감독님이 애원에 사정을 거듭해 겨우 막아낸 것이다.
이미 팀 내의 사기는 바닥이다.
그나마 스타리그에 진출했던 영진이 마저도 1승 2패 상황에서 5번이나 재경기를 한 끝에 탈락해서 키보드를 부수고ㅡ 과장이 아니다, 정말로 키보드를 부쉈다 ㅡ그길로 팀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피지 않던 담배마저도 손을 대고, 이미 몸 상태는 한계까지 떨어졌다.
다행히 그것은 다른 팀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겨우 겨우 순위는 중위권을 유지하는 상태, 나는 이를 악물고 연습한 까닭에 그럭저럭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이것은 내가 원하던게 아니었다.
나는, 해병이 아니라 마린을 클릭하고, 전투자극제가 아니라 스팀팩을 쓰며, 가시촉수가 아니라 성큰을 짓이기는 맛에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클릭, 클릭, 탭, 언제나처럼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그 위화감은 숙소를 뒤덮고도 남았다.
텅 빈 숙소는 나, 동원이, 경민이, 정우, 그리고 아직 혹시나 모르는 마음으로 연습하는 연습생 몇명 빼고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처럼 내 자리에 앉아, 그러나 6개월 전만 해도 바탕 화면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파일을 더블클릭한다.
곧 정우와 게임을 한다. 맵은 십자포화
너무나 평범하게 흘러가는 경기, 단 한번의 전투로 게임은 스무스하게 밀려버린다.
나의 승리, 정우는 이제 별로 감흥이 없는듯 고개를 세차게 저어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땀을 털어낼 뿐이다.
눈이 아파온다. 전에는 없었던 증상이다, 아마 연습시간을 너무 무리하게 늘린 탓이겠지.
"상문아, 쉬었다 하지 그래?"
온 몸에 기운이 빠진 듯한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젓는다.
SCV...아니 건설로봇을 클릭하고 커멘드센터...아니 사령부를 부대지정한다.
나는 주먹으로 키보드를 내리친다. 그 때문에 주위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아무것도 아니야...연습 해."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분노를 가지면서도 정작 벗어날 수 없는 그 이유,
그것은 내가 원해서 선택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존경하고, 원해오고, 바라오던 꿈이었기 때문에.
[그게 뭐가 중요하지?]
내 머릿속의 목소리가 말을 걸어온다. 나는 게임을 종료한다.
[너는 벗어날 수 있어...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나는 그 목소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동원이 나를 정신나갔냐는듯 처다본다.
"조금 쉴게요..."
감독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방에 들어간다. 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ㅡ 조작이 5명이다 ㅡ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스파키즈였었지.
옆에는 광안리의 사진이 있다, 언젠간 가겠다고, 가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결국 CJ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꿈이었다.
[뭐 해? 빨리 하라고.]
"알았어."
나는 혼잣말이 아닌 혼잣말을 한다.
곧 방을 바라본다. 치이고 치인 삶에서, 겨우 얻은 보금자리.
내 삶에 다가온 두번째 위기를, 나는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의자에 올라선다.
내 땀이 수백, 수천, 수억 방울은 담겨 있을 마우스를 손에 쥔다.
천장에 걸린 형광등 걸개에 마우스 선을 건다.
매듭을 짓고 나머지 하나는 내 목에 건다.
[이제...날개를 다는거야...자유의 날개를...]
그 목소리가 유혹하는 듯 속삭인다.
나는 눈을 감는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두 줄기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나는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어서!]
그 목소리에, 나는 의자를 걷어 찬다.
[오늘 오전, 한 건물에서 20대 청년이 목을 매달고 자살한 채로 발견되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고민은 성적도, 취업도, 빚 문제도 아닌 바로 '게임'이었습니다.
프로게이머 S씨는 게임 스트레스로 인해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에 사회적으로 게임의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서...]
그는 TV를 끈다.
그에게서 슬픔, 미안함, 죄책감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킥킥 웃으며 발로 컴퓨터의 전원을 킨다.
곧, 방 안에는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BJ흥엉이입니다~여러분 반가워요~~"
그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다.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프로리그 개막 28일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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