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광원(
光遠). 휘(
諱) 경(?). 초명 방과(
芳果). 태조의 둘째 아들. 비(
妃)는 김천서(
金天瑞)의 딸
정안왕후(
定安王后). 성품이 인자하고 용기와 지략이 뛰어나, 고려 때 아버지를 따라 많은 전공을 세웠다. 조선 개국 뒤
영안군(
永安君)에 책봉되었고,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세자로 책립되었다. 태조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는데, 신도(
新都) 한양(
漢陽)에서의
골육 상쟁, 즉 제1차 왕자의 난을 상기하여 구도(
舊都) 개경(
開京)으로 돌아갔다.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이 수습된 뒤 동생
정안군(
靖安君:
芳遠)을 왕세제로 삼고 왕족 ·권신(
權臣) 등이 기르던 사병(
私兵)을 폐지하여
삼군부(
三軍府)에 편입시켰다. 하륜(
河崙)의 건의에 따라 관제를 개혁하고, 한양의 5부에 각각 학당(
學堂)을 설립하였다. 정종의 정치는 거의 이방원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정종은 재위 기간동안에 정무보다는 격구 등 오락에 심취하였으며 그의 이런 행동은 이방원을 안심케하는 효과가 있었다. 즉위한 지 2년 만에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
上王)으로 추대되었는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왕위에서 물러난 뒤
인덕궁에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 1419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정종은 사망 후 묘호도 없이
공정대왕으로 불리다가 1681년(숙종 7년)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능은
개풍군의 후릉(
厚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