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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휴식할미러문
작성일 2011-11-03 13:43:20 KST 조회 541
제목
조선의 가장 위대한 점.



 사관과 사초.



진짜 이렇게 정신나간, 그리고 완벽한 역사기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계에서 제일 완벽한 역사기록.


물론 사관도 사람이니 당연히 주관적인 기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조선왕조 500년의 그 긴 세월을 모두 기록하고, 그것을 또 세 본을 필사하여 만든 세계 최고의 기록이 아닐련지.......



진짜 이런 정신나간 기록은 세계를 찾아봐도 유례가 없죠(...)


참고로 사관의 소름끼칠 정도의 직업 정신을 표현하는 일화가 있는데.......



왕이 사냥 나가서 말에서 떨어졌는데, '이건 기록되면 좀 부끄러우니까 사관에겐 말하지 마라' 라고 명령 내린 걸 그대로 적어놨음(...)



'~가 사냥을 나갔다 말에서 떨어졌는데, '이건 ~~하니 ~~라고 하시더라'라고 말씀하셨다' ...... 이런 식으로.



......



진짜 이런 미친 관료제와 수준높은 기록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진심 존경스러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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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Ganymede85 (2011-11-03 13:45:0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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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임란때 그 많은 실록과 승정원일기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죠....
아이콘 TheVillain (2011-11-03 13:45:1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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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조선은 그 당시 치고 진짜 문화대국인듯
아이콘 루나씨엘 (2011-11-03 13:46:0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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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에요~ ㅎㅎㅎ 말에서 떨어져 부끄럽다고 말한건 그래서 싫어서 막 피해다녔는데 파파라치같이 죽으라 따라다녀서 갈등이 있었는데 그 태종도 결국 두 손 두 발 다들었죠. 알아서 하라고. 세종이 나중에 자기 아버지 어떻게 평가 되었을까 걱정해서 그걸 보려고 막 떼쓰다 결국 포기하기두 하고.. 정말 실록 대단한거 같아요 저도 읽어봤는데 정말 자세하게 기록했다는.. 그예로 태종 첫째 양녕이 이도보고 약았다고 고자질쟁이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죠~ ㅎㅎ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46:3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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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실록 전부는 살아있습니다. 원래 실록은 국가에서 세 부씩 복사하여 각각 보관하고 있었고, 임란 때 한 곳이 다 타버리고 그걸 또 재복사해서 다시 만들었음. 근데 한 질은 6.25 때 부산에서 평양으로 보냈는데 중간에 사라졌었고(그 이후 북한측에서 어떻게 그걸 찾아내서 대도서관에 놨다고 들음), 간신히 살아남은 한 질을 또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죠. 나머지 한 질은 전쟁 중에 타버렸고 ㅠㅠ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47:1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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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빌리안 // 문화대국 수준이 아니라 말도 안되는 국가입니다. 이 정도로 발전된 국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봐도 드뭅니다. 아니, '조선왕조실록'이란 것만 해도 진짜 정신나간 역사서입니다;; 이런 역사서는 세계적으로 없어요. 실록이 유일합니다.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47:2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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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씨엘 // 진짜 사관들 장난 아니라니까요 ㅋㅋㅋㅋ
아이콘 Rkaenddl (2011-11-03 13:48:4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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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결과론적이지만 흥선대원군의
쇠국정책이 바둑용어로 최대 악수가 아닐까...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50:3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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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aenddl // 쇄국 정책의 경우는 요즘 재조명받고 있는데, 오히려 섣불리 열지 않은 흥선대원군의 정책도 옳은 판단입니다. 물론 그 세월이 너무 길었고, 그놈의 왕권 강화에 목숨 건게 문제죠. 다만 쇄국 정책 자체는 충분히 옳은 판단이죠.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충분히 이제 견딜만하다 했을 때 문호 개방을 해야하는데 그런 게 없이 무조건 0과 1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정치였으니.......

그보다는 명성황후라는 국썅(...)과 왕이 호구인 게 가장 큰 문제였죠. 을미의병만 해도 을미사변 때문이 아니라, 단발령 때문에 일어난 거구요. 당시 기록들 보면 오히려 '민비가 죽어서 잘되었다'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라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긴 역사 속에서도 죽을 때를 가장 잘 맞은 왕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뭐 이런거 들으면 웃음밖에 안 나오더군요(...)
아이콘 슈퍼공돌이 (2011-11-03 13:51:3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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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의 부정부패를 척결한 흥선대원군의 공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죠.
쇄국정책을 펼친게 결과적으로는 독으로 작용했지만 흥선대원군이 함포외교와 묘 도굴 사건 등을 겪으면서 쇄국정책을 결정한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51:5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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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없이 갑자기 문물을 받아들이는 건.....강화도 조약 이후 우리나라를 생각하시면 되시겠네요. 그 때 일정한 쇄국 정책은 오히려 득이었죠. 다만, 그 이후의 발달에 관심을 안 가져서 문제였죠......진짜 민씨 일족이 최소한의 정신만 차리고 있었다면 중립국화와 동시에 상당한 이득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에 IF는 없는 법이니까요 ㅠㅠ

안타깝지만, 그것들은 전부 가정일 뿐이죠........
아이콘 슈퍼공돌이 (2011-11-03 13:52:2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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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국권을 잃게 된 가장 큰 잘못을 한 사람은 민비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나름 잘했어요.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52:4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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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공돌이 // 맞습니다. 그러나 쇄국 정책도 정도가 있죠.....결국 개방은 어쩔 수가 없는 필연적인 결과였는데, 그것을 너무 무시하고 또한 외면했어요. 더구나 왕권 강화하겠답시고 뜬금없이 경복궁 짓기 시작해서.....쯧;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53:3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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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과 완전쇄국만 아니었다면 흥선대원군은 시대를 잘못 만난 명군으로 평가받았을텐데 말이죠 쩝. 뭐 그 정도면 나쁜 편은 아니긴 했습니다 확실히.
아이콘 루나씨엘 (2011-11-03 13:55:3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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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는 좀 미화된 부분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두 휴식할미러문님이 명성황후라고 불러주니까 좋네요~ 명성황후에 대한 비판과 민비라 부르는 건 전 별개라 생각하거든요~~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58:3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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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씨엘 // 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인데 민비라고 부르는게 폄하하는 표현은 아닙니다(...) 음, 제가 여기서 설명하긴 너무 길고........잠시만요.

http://pgr21.com/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5&sn=off&ss=on&sc=on&keyword=%EB%AF%BC%EB%B9%84&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078


여기요. 만약 민비가 비하표현이면 흥선대원군이라 부르는 것도 문제이고, 신정황후의 경우는 흔히 조대비라 불리는데 이것도 비하표현이 됩니다(...)
아이콘 Rkaenddl (2011-11-03 13:59:2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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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그렇군요...국사를 대충 배운 저로서는...그래도 그시기가 세계적으로 격변기라
우리나라도 그때 잘 대처했으면 좀더 나아지진 안았을까해서...그중 쇄국정책이 일조한거라 생각되서요..ㅎㅎ 일본은 매이지유신으로 우리나라랑 중국까지 잡아먹을정도로 강대해졌으니...
드라구요..ㅎㅎ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3:59:3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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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단 거북해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민비라는 표현보다는 명성황후라고 부르는 편입니다. 사실 그 정도의 존칭도 아까운 사람이긴 하지만, 뭐 그래도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놓은 이미지란게 있어서 ㅡ_ㅡ;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01:0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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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aenddl // 솔직히......만약 그 당시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ㅠㅠ 사실 주변 국가가 너무 먼치킨이에요. 너무 강해요; 메이지 유신의 경우 일본이 워낙 빨랐기 때문에, 그 이후 우리나라가 따라가려고 해도 너무 멀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역시 부들러와 유길준이 제기했던 한반도 중립화론인데......이게 됬다면, 우리나라는 태국처럼 가장 끝내주는 중립국 중 하나가 되었을텐데 말이죠.
안타깝죠 ㅠㅠ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02:4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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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사는 역시 IF 이다보니......아마도 필연적으로 끝났을 확률이 컸습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서도 국가를 위해 싸워주신 독립운동가분들이 계셨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느님의 힘도 있었고 일본의 삽질도 있었다지만요.......

가장 큰 것으론 역시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저격이 있겠군요......
아이콘 고릴라led (2011-11-03 14:05:5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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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문가들이시네 다들... 끼어들수가 없다!!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06:2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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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의외로 역덕후들 찾아보시면 많습니다(...) 역사 진짜 재미잇어요
아이콘 치즈맛김치형님 (2011-11-03 14:07:0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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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문 :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일본이 조선병합 하는 스피드를 더욱 빠르게 한 측면이 있어요.
이토는 온건파였고 일본 내 정한론자들이랑 별로 사이가 안좋았었음.
단지 이토가 암살될 당시에 이미 정계은퇴한거나 마찬가지 몸이라 크게 실권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발언권은 가지고 있었는데 이토 죽은 이후에 스피드가 더 빨라짐.
뭐 결론적으로는 이토를 죽이던 말던 시기가 문제지 결국 국권침탈은 일어났겠죠.
아이콘 루나씨엘 (2011-11-03 14:07:3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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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제가 이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는데 길어서 이전 글서 좀 붙이기 할께요 양해바래요~ 조선왕비 중에서 성씨와 비자를 붙여서 부르는 경우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묘호를 붙여서 부르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현황후 문정왕후 등등.. 민비는 일본이 한나라의 황후를 일개 후궁으로 지칭하는 경멸의 의미로 붙인건데 그걸 그대로 사용하는건 명성황후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비'라는 표현 자체는 승정원일기나 고종실록에서도 나오는 것이므로 완전히 일본인이나 친일역사학자들이 만들어 낸 말은 아닙니다 다만 보통 우리가 조선왕비를 부르는경우 인현왕후나 문정왕후 등의 묘호를 붙여서 씁니다. 그런데 유독 명성황후만 민비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공식 호칭이 되어야 하는 여러 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마치 후궁을 지칭하는 경멸의 의미로 민비라는 호칭을 일본이나 친일 역사학자들이 계속 사용해왔고 그것이 그대로 잔제로 남아 민비라 게속하여 불리우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성씨와 비를 붙여서 부르는 왕비는 명성황후를 제하고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명성황후의 경우엔 격하하여 민비라 불리우는게 맞는 거죠... 우리가 보통 왕후를 부르면 성씨를 붙여서 불어왔는데 민비만이 예외는 그 유래가 친일학자라는 것입니다.. 인현왕후를 민비라 부르지 않고 문정왕후를 성씨를 붙여 윤비로 부르지 않고 묘호로 부르는데 유독 명성황후만 민비라 하는 건... 일본이 부르는 명칭인 민비로 그대로 따라 부르는 대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승정원이나 고종실록에서 민비라 나왔다고 해서 공식명칭이 뻔히 있는데 한나라의 국권을 무시하고 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아이콘 모라논 (2011-11-03 14:08:1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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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성들의 주인의식이 더 대단했다고봄
전란이 났을때 자기 한목숨 우선하기보단 의병봉기로 왜란을 넘겼죠
아이콘 슈퍼공돌이 (2011-11-03 14:10:4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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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 왕비들을 비라고 적었고 당시 사람들도 다 비라는 호칭으로 불렀는데 지금 드라마 때문에 사람들이 명성황후라고 부르니까 민비라고 부르면 안된다고 말씀하시는건가요? 민비라고 호칭한건 일제 때문에 생긴 습관이 아니라 조선시대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는데요?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11:1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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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논 // 의병의 경우는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레지스탕스'의 문제라서......프랑스 레지스탕스들도 국가를 위해 싸우기보단,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한 개인주의가 뭉쳐서 단체가 된 사례죠. 의병의 경우도 자기 고을만 지켰지 굳이 '국가를 위해 싸우자!'곤 안 했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낫이나 창 등을 들고 정규군에 맞서싸운 조선 백성들의 용기를 폄하할 순 없지요. 그 때 일본군의 경우는 100년 동안의 전국시대로 단련될 데로 단련된 강군이었는데요. 누가 했던 말마따나, '아시아 최고의 육전국가' vs '아시아 최고의 해군 국가'였죠.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12:2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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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공돌이 // 그러나 거북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거기서 굳이 '민비'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죠 ㅋ 그러나 확실히 '민비'란 호칭이 결코 폄하하거나 비하하는 호칭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아둬야하구요. 우리같은 역덕후(...)들이야 그 사실을 알지만, 일반인들은 일단 매스미디어에 의해 환상이 껴있다보니......쩝 T_T

누가 한 카더라 통신인지 몰라도 왜 민비가 비하하는 표현이 됬는지.....알 수가 없네요.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13:4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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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맛김치형님 // 그 경우에 대해서도 이미 반론이 나와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경우 온건적 침략자였죠. 즉, 만약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있었다면 우리나라에서 나왔던 영화인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꼴이 '안 날 래야 안 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합병을 반대했던 이유도 어디까지나 '때가 아니다'였지, '하면 안된다'가 아니었거든요(...)
아이콘 모라논 (2011-11-03 14:15:0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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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시 의병의 활동이 자기 주변지역을 지키는게 국한된건 아니었습니다.
육로 수송의 대부분이 의병에게 끊어먹혔었죠.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15:1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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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의 의견을 따랐을 경우 오히려 진짜 장난 아닌 침략과 침투가 벌어졌을 겁니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요. 오히려 일찍 죽어줘서 일본쪽이 합병 일찌감치 추진한 게 독으로 파고들었죠. 당장 이토 히로부미는 무력 통치보다는 문화 통치부터 표방했으니(...)
아이콘 루나씨엘 (2011-11-03 14:15:4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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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 민비라 언급된 부분은 승정원 일기에도 그리 적혀있다고 언급하여 드렸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고 픈 부분은 유래입니다. 명성황후 민비 이외에 성씨에 비를 붙여서 부르는 경우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현왕후 원경왕후라 불리우지 민비라는 호칭으로 일반적으로 불리우지 않는데 유독 명성황후만 민비라 붙여지고 있는것은 일제식민사관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유독 명성황후만 민비라 불리우는지 생각하여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16:2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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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논 // 대다수의 의병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큰 규모의 의병이 그런 수송을 방해했다는 것 또한 맞는 말이죠 ㅋ 하지만 일단 바다가 막혀서.....(...) 10에서 거의 8 정도가 침몰하고, 2 정도를 간신히 수송하는데 그게 끊겨먹으니.....일본군이 미칠만도 하죠(...)
휴식할미러문 (2011-11-03 14:17:0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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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씨엘 // 어.....제가 드린 링크 읽어보셨나요? 제가 알기로 그 쪽에 이 논란과 이 논란에 대한 해명, 전부 적혀있던 거로 기억하는데 쿨럭(...)
아이콘 루나씨엘 (2011-11-03 14:27:1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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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할미러문// 링크는 잘 보았습니다. 그래도 전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굳이 다른 왕후들과 차별화된 호칭으로 불러야 할 근거의 타당성이 부족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요..희빈과 대비가 아닌.. 왕후만 두고 봤을 때이야기입니다. 굳이 다른 왕후와 차별두어서 쓸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민비란 표현이 틀린게 아니라 나쁜 의도가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하지 않는가가 저의 생각이자 포인트 입니다
아이콘 슈퍼공돌이 (2011-11-03 14:27:5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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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는 일본이 지어낸 호칭이 아닙니다.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민비 사망후 고종이 황제가 되고 나서 붙인 이름이며, 당시 사람들이 민비라고 불렀다는 것은 당시 사람인 의병장 윤희순 의사의 '왜놈 대장 보거라' 라는 글에보면 "~우리 민비를 시해하고도"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문정황후를 윤비로 불렀었고, 후대에도 자주 부릅니다.
아이콘 루나씨엘 (2011-11-03 14:34:4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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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공돌이님// 다시 강조해 드립니다.. 민비란 표현이 틀린게 아니라 나쁜 의도가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는겁니다...... 대한제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은 비라는 호칭을 붙인것입니다. 그러한 의도가 밑바탕에 깔린것이고 실록에서 민비가 맞다고 하지만 그리 불리우는 왕비는 없습니다. 민씨가 몇명인데 왕비를 다 민비라 불리우긴 힘들죠.. 그래서 호칭을 붙인그런의도와 대한제국의 존제자체를 부정하기 위해 민비로 격하해서 부른 그 의도와 같게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윤비하면 어느 왕후인지 어떻게 알죠? 민비만 해도 조선에 몇이나 됩니다. 후대에대 자주 부르죠 하는 데 문정왕후라 거의 부릅니다. 문정왕후가 윤씨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의외로... 그건 좀 억지인것 같습니다... 제가 괜히 분란을 일으키는 것 같으니 그냥 제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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