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jpg 픽사는 잡스가 만든 3개의 컴퓨터 회사 중 하나다. 지금은 애니메이션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지만 당초에는 애니메이션과 관련한 하드웨어 회사였다. 1985년 자신이 창립한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가 이듬해 루커스필름으로부터 컴퓨터그래픽 부문을 1000만 달러에 사들인 게 출발점이다. 그 뒤 1995년 말 발표된 토이스토리1이 히트하기까지, 잡스는 근 10년간 픽사에 개인 재산 5000만 달러를 쏟아 부어야 했다. 함께 운영하던 컴퓨터회사 넥스트도 부진했던 탓에 1985년 그가 애플 주식을 처분해 손에 쥔 1억5000만 달러는 1989년에는 250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그해 잡스는 한때 자신이 홀딱 반했던 픽사의 하드웨어 부문을 매각했지만 애니메이션 제작 부문은 남겨놓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했다.


1991년 픽사는 디즈니로부터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위기의 잡스에겐 그건 마지막 희망이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잡스에겐 디즈니가 ‘백마를 탄 왕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계약은 철저히 픽사에게 불리했다. 13쪽이나 되는 계약서를 보면, 함께 제작하는 영화가 <인어공주>만큼 성공하지 못할 경우 픽사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거의 없었다. 디즈니는 영화제작에 들어간 뒤에도 ‘언제든 영화를 포기할 수 있는 권리’를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행사할 수 있었다. 이 계약은 앞으로 3편을 만드는 동안 계속 적용 받도록 했다. 영화 캐릭터의 로열티 역시 디즈니가 독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장편 영화였다. 극장에서 끝까지 볼 관객은 없을 거라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픽사는 기껏해야 디즈니와 손잡고 싶어 안달하는 일개 하청회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픽사는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벅스 라이프〉, 〈토이 스토리 2〉,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를 잇따라 흥행에 성공시키며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우뚝 서게 된다.


이유는 바로 남과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픽사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디즈니의 방식이었다. 픽사는 다르게 만들고 싶었다. “공주와 왕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특별한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픽사의 등장인물은 멍청하지만 귀엽고, 순수하지만 삶에 대해 고민하는 캐릭터였다.


성공은 기회를 포착하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기 마련이다. 1995년 추수감사절 시즌 <토이스토리>가 개봉되면서, 실리콘밸리의 미운오리새끼였던 픽사는 백조로 변신한다. 영화는 곧바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역대 추수감사절 개봉작 가운데 최고 흥행작이 됐다.

잡스는 영화 개봉 일주일 뒤에 픽사의 기업공개(IPO)를 단행했다. 주식공모가는 22달러였지만 상장 첫날 49.50달러까지 올랐다가 39달러로 마감했다. 픽사는 1억3970억 달러의 자본을 끌어들였고, 픽사의 주식 80%를 갖고 있던 잡스도 마흔의 나이에 또 다시 돈방석에 앉았다. IPO 뒤 잡스가 갖고 있던 픽사의 주식 가치는 11억 달러가 넘어섰다. 10년 전 그가 애플을 떠날 때 갖고 있던 애플 주식의 자산 가치와 맞먹었다. 픽사의 성공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컴퓨터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최초’였기에 가능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끊임없이 ‘도전’했던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더욱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