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NEXMarian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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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1-02-17 07:39:12 KST | 조회 | 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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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테러활동에 대해 (네이버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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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국어사전을 참조했을 때 '테러'와 '테러리스트'의 사전적 의미를 본다면,
테러 : 폭력을 써서 적이나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 ‘폭력’, ‘폭행’으로 순화.
테러리스트 :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계획적으로 폭력을 쓰는 사람.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테러리스트와 안중근 의사를 비교하는 까닭으로는, "애국의 명분 아래 사람을 살해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는 까닭 때문일텐데요, 사전적 의미만 참고한다면 안중근의사는 테러리스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독립하지 못했다면 안중근의사는 결국 테러리스트로 남았을 것이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 것을 알고 조심해야 한다."
라는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현대에 출몰하는 테러리스트들은 안중근 의사의 활동과 성격이 다릅니다.
현대의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은, 사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테러리스트'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사람은 대표적으로 알카에다같은 사람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테러'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활동은 폭탄을 달고 버스에 뛰어들어 자폭한다든가, 기자 등의 민간인을 납치 해 협상을 요구한다든가, 가장 대표적인 테러 활동은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사건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눈치채셨을 수도 있겠지만, 안중근 의사와 현대 테러리스트들의 가장 큰 차이점을 '누구를 대상으로 삼았는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현대 테러리스트들의 가장 잔인한 점은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의 '영광'이라 하는 거물급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안중근 의사는, 한 개인으로서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대한국 의병조직 참모중장'의 자격으로서 국가적 차원으로 이 일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그를 저격한 이유를 쉽게 풀어 쓰자면, 첫째,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을 위협하는 극악한 인물이었다는 것이고 둘째, 이 사건을 통해 한국(과 동아시아)의 상황을 전세계적으로 알리고자 함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당시 동아시아를 집어 삼키려는 일본의 야욕, 그 중앙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안중근이 저격한 것이 간디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달라져야 할테지만 안중근 의사가 쏜 사람은 민간인도, 위인도 아닌, 한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이토 히로부미의 자국내에서의 평가는 우리와 다를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일본의 '영광'의 상징이었고, 그가 죽었을 당시 40만의 참배객이 그를 추모했습니다.
동양 평화론은 그가 부르짖던 것이었지만 그것은 일본이 아직도 내세우는, '우리 때문에 조선이 경제적으로 부강해졌다'라는 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사실은 강한 침탈성을 내포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그 당시에 그의 저격이 실패했다면 동아시아의 판도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저격행위는 전쟁 중의 전투 행위로 간주하여 발생 지역의 정부가 주도하여 전시 국제법을 적용해 처리해야 했습니다만 굳이 안중근 의사의 저격을 '개인'의 '테러 활동'으로 급히 종지부를 찍은 것은
오히려 일본측이었습니다.
전투 중 '교전'으로서, 그 사유가 얼마나 정당한가, 의로운가를 국제법으로 다루게 되면 일본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건이 일어났던 러시아 정부와 타협하여 일본 정부의 주도 하에서 일본 형법을 적용하여 안중근 의사를 단순 테러리스트로 지목, 급히 사형에 처하여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단순 테러리스트가 아닌 의인이었다는 것은 그가 옥중에서 집필한 저격사유 15개조와 동양 평화론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 1867년에 대일본 메이지천황 폐하의 부친 태황제 폐하를 시살한 대역 부도
2. 1894년 한국에서 사람을 시켜 병사를 몰아 황궁에 돌입하여 대한황후 폐하를 시살한 것
3. 1905년 병력으로 대한 황실에 돌입하여 황제 폐하를 위협하여 5조약을 늑정한 것
4. 1907년 다시 병력을 늘려 한국황제에게 돌입하여 칼을 뽑아 위협하여 7조약을 늑정한 후에 대한 황제를 폐위한 것.
5. 한국 내의 삼림천택, 광산 철도 어업 농상공업 등을 하나하나씩 늑탈한 것
6. 이른바 제일은행권을 강제로 사용케 하고 이를 반대하는 소요를 저지하여 한국 내지까지 통용시켜 전국의 재정을 고갈케 한 것.
7. 국채 1300만 원을 한국에 강제로 지운 것
8. 한국 내지의 학교 서책을 압수하여 태우고 내외의 신문이 민인들에게 전하지 못하게 한 것
9. 한국 내지의 허다한 의사(義士)들이 봉기하여 국권을 회복하려는 것을 폭도라고 일컬어 총살하거나 교살하여 죽임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 의사들의 가족을 모두 죽여 십여만에 달한 것
10. 한국 청년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것
11. 이른바 한국 정부 대관, 오적, 칠적 등을 일진회 무리와 함께 묶어 한국인이 일본의 보호를 받기를 원한다고 운운한 것
12. 1909년에 다시 5조약을 강제로 정한 것
13. 한국 3천리 강토가 일본의 속방이 되려는 듯이 선언한 것
14. 한국이 1905년부터 도대체 평안한 날이 없이 2천만 생령의 곡성이 하늘을 진동하고 살육이 끊이지 않고 포성과 탄우가 지금도 그치지 않는데도 홀로 이토만은 한국이 태평무사한 듯이 위로 메이지 천황을 속인 것
15. 이로부터 동양평화가 영원히 파상하여 수많은 인종이 장래 멸절을 면치 못하게 된 것.
** 메이지 천황의 부친의 시해 사건을 처음에 둔 것은, 이토 세력의 부도덕성을 세계를 상대로 최대한 부각시킬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
안중근 의사에 대한 국내에서의 기술이나 집필 활동은 상당히 미약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의 저격 뿐 아니라 그 전부터 의병활동을 했으며 독립 활동에는 그의 가족 전체가 뛰어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승자에 의해 기술되는 역사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의 상당수는
아직 일본의 식민사관 하에 들어가 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그 역사의 기술자가 누구인가하는 점입니다.
우리의 역사라고 다 우리가 집필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역사에 대해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엄청난 연구가 이루어지고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오히려 인문학이 위축되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실태를 방관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저격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연구와 집필이 활발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제대로된 교육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일본이 판결한대로 그를 단순 살해범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저도 한 때 안중근 의사의 활동과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고, 전문가도 아니어서 이 글에 부족한 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서 오픈 백과에 제가 아는 내용을 써봤습니다.
부족한 점 있다면 지적해주시고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 하는 계기로 삼아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한국사시민강좌 제30집 - [특집]정신적 유산을 남긴 사람들>, 이태진, [안중근-불의/불법을 쏜 의병장-]일조각, 2006. 참조.
출처 : 본인.(vlftmdtkeh 님이 집필하신 오픈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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