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3 ≫ 임요환의 ‘친구’ 이창훈
[S#1] ‘스타’를 가르쳐준 친구, 하늘나라에... 닮은 점이 많다. ‘후배’ 이창훈(삼성전자 칸, 저그)이기이전에 임요환의 친구인 이유다. 임요환의 ‘단짝’ 김진석이란 친구는 오래전 백혈병으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학창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 임요환에게 처음으로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쳐 준 친구. 그가 없었다면 ‘황제’임요환도 없었을 것이다. 친구 기일 때마다 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갈 만큼 임요환의 가슴 한 구석은 언제나 애잔하다. 이창훈도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저 세상으로 간 친구가 있단다.
“요환이 형과 닮은 점이 많아요. 요환이 형에게 스타를 가르쳐 준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듯 저에게 스타를 맨 처음 알려준 친구도 가슴 아픈 사고를 당했어요. 우린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밖에 없는 상처를 갖고 있었죠. 그 심정을 알기에 요환이 형도 저를 ‘동생’으로 보지 않아요. 친구라고 생각하죠.” 같은 팀 소속이었지만 약 1년 전 이적한 이창훈, 어쩌면 멀어질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멀어졌다는 사실이 두 사람 사이를 더 진한 우정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단다. “이적 결정 후 많이 힘들었어요. 선수 생활을 그만 두려고 마음까지 먹었죠. 집에서 보름가량 두문불출했어요. 그 때 형이 우리 집에서 저랑 같이 지내면서 살면서 정말 필요한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사실 그 전에는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해하고 있었구나 깨달았죠.” 이후부터 게임 외적인 자기 속사정도 이것저것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군 입대 날짜가 확정됐을 때 임요환이 가장 먼저 알려준 사람이 바로 이창훈이다. “혼자서 고민이 많았어요. 솔직히 요환이 형으로부터 같이 (군에) 들어가지 않겠느냐 제의도 받았죠. 어쩌면 게이머로서 같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제가 여기남아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요환이 형이 잘 다녀올 때까지 기다려야죠(웃음).”
[S#2] ‘황제’는 외롭다 놀 줄을 몰라서 숙소에서 줄곧 연습만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임요환이다. 휴가를 줘도 막상 만나고 싶은 사람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없어서 숙소에 틀어박혀 있는다. 입대를 한 달 앞두고 휴가를 줬지만 여전히 그는 숙소에 머물고 있다. 이창훈은 임요환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주로 두 사람이 만나면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술을 먹는 순서란다. 술 먹는 자리에서 곧잘 속이야기를 털어놓는 편이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기분이 좋고 나쁜 것이 얼굴로 들어나는 사람이라 이창훈에게 만큼은 비밀이 없다고. 이창훈 역시 임요환에게는 진실하다. “술에 취해도 정신력이 강한 편이에요. 기분 좋으면 웃음이 끝이 없어요. 눈물은 정말 없는 것 같아요. 팬 미팅 때 빼곤 본 적이 없으니까요.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더 외롭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여자친구랑 해야 할 일을 이창훈이 대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얼마 전 공식적인 인터뷰를 통해 임요환은 2년 사귄 자신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밝혔다. 군 복무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임요환의 부모님은 얼른 막내아들이 장가가서 정착하기를 바라지만 본인은 35살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창훈이 덧붙였다. “요환이 형도 남자니까 여자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자신이 (여자친구에게) 잘 해줄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물론 노력하면 잘해 줄 수 있지만 못 해주는 부분이 훨씬 많은 편이죠. 그래서 누군가를 쉽게 사귀지도 못하고 또 쉽게 만나지도 못해요. 그렇지만 마음을 열면 굉장히 잘 하는 스타일이죠. (결별은) 요환이 형이 알아서 잘 정리했을 거예요.”
People 4 ≫ 임요환의 ‘파트너’ 조만수
[S#1] 천성적인 프로마인드에서 묻어나는 인간성 진작에 스타임을 알아봤다.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면서 임요환이라는 선수를 알고 있었던 SK텔레콤의 프런트 조만수 과장은 첫 만남에서부터 ‘될 그릇’이라고 깨달았단다. T1이라는 팀을 만들기 위해 임요환이 가장 가난했던 시절에 만난 조 과장은 실력 있는 선수가 좋지 못한 환경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모습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모니터를 통해 게임하는 모습을 보다 평상시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부드러운 인상이었어요. 장난도 잘 치고 잘 웃고. 진지하고 까다로워 보이는 이미지는 철저히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죠. 환경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임요환은 이미 준비가 마쳐진 상태였어요.” 조 과장이 임요환이 프로 근성에 대해 가장 놀라웠던 점은 팬 서비스 마인드였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선수로서 팬 관리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조 과장은 임요환이 여느 잘 나가는 스타보다 자신의 사람으로 팬을 이끄는 데 천부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번외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팬 관리를 누구보다 친근감있게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임요환의 모습이 꽤 감동적이었다는 것.
“국내 농구 스타 중 문경은 선수와 비슷해요. 고참이면서 주장으로서의 든든한 모습과 선수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도 함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유머러스하면서도 모범적인 이미지는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안겨주죠.” 이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작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청와대에서 대통령 접견을 했던 임요환. 청와대 입장시에는 정장을 꼭 착용해야 함에도 불구, 당당히 유니폼을 입고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제지하는 경호실장에게 임요환은 정중하게 말했다. “나를 알리기 위해서는 유니폼이 제일 적합합니다.”
[S#2] 황제에게 프로게이머는 ‘천직’이다 ‘100점에 99점’. 조만수 과장이 선수로서의 임요환을 매긴 점수다. ‘1점’마저 다 주기 좀 미안하다는 조 과장의 센스있는 답변. 선수로서 가져야 할 투지, 끈기, 의지는 누구보다 강하다고 치켜세울 만하다. 임요환의 ‘라이벌’ 홍진호도, 최연성도, 이윤열도 아니 모든 감독들은 이와 관련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처럼 연습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최연성은 말했다. 정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프런트와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회사 이익을 위해 스타 선수가 홍보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 e스포츠를 대표하는 임요환이다보니 경기 외 인터뷰 스케줄이 빼곡한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 그렇기에 임요환의 매니저이자 프런트로서 조 과장은 늘 선수와 다퉈야했다. “크게 화낸 적이 있죠. 며칠 동안 얼굴도 안 봤어요. 인터뷰 중에 요환이가 ‘연봉 중에 인터뷰 값이 반’이라고 발설한 거죠. (회사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연습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짜증이 났던 모양이에요.” 이 뿐만 아니다.
주장으로서 경기와 관련돼 해야할 말은 꼭 했다. 개인리그 준비를 줄이고 프로리그에 집중하라고 지시했을 때 불만이 있음에도 서로 눈치 보던 후배들을 대신해 주장한 사람도 임요환이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스스로 수렴하고 선수들을 다독이는 것도 그의 몫이다. SK텔레콤 김신배 회장이 임요환을 아끼는 것도 이유가 있다. 스타리그 100승 기념식을 제안한 것도 김신배 회장이었단다. ‘형’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조 과장이 임요환에게 당부하는 말은 하나다. 게이머가 ‘천직’이라면 e스포츠 최고의 자리를 지키라는 것!
People 5 ≫ 임요환의 ‘팬’ 정진경
[S#1] 임요환, 당신은 나의 친구 혼자만 힘든 것을 안고 산다. 6~7년을 함께한 팬들은 이제 임요환을 우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임요환도 한 인간이다.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할 줄 아는 한 사람. 그래서 임요환의 무거운 짐을 누구보다 그들은 잘 알고 있다. IS시절, 팀이 없어 연습상대를 못 구해 혼자 연습할 때도 한동안 선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방황할 때도 누구 한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없던 외로운 선수. 그런 그를 줄곧 지켜봐 준 사람도 역시 팬들이다.
“정말 펑펑 울었던 적이 있어요. 재작년 생·파(생일파티) 때 팬 100명이 노래를 불러가며 장미 한 송이씩 요환선수 무릎 위에 올려줬죠. 그런데 갑자기 무대 뒤로 뛰어 내려가더니 엉엉 우는 거예요. 우는 그 모습을 보고 팬들도 울고... 그제서야 우리도 깨달았죠. 요환 선수가 우리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것을요.” 군 입대를 앞두고 지난 9월 3일 생·파에서 임요환은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팬들에게 읽어줬다. 팀 동료에 의하면 혼자 방에 틀어박혀 4시간이나 편지지를 붙잡고 있었단다. 무척 긴 편지에 팬들도 울고 임요환도 울먹였다.
“딱 한 번 개인적으로 ‘정말 수고하셨다’는 말을 요환 선수로부터 들은 적이 있어요. 하루 종일 치어풀과 응원문구, 오프 온 회원들을 챙기느라 한 끼도 못 먹은 상태였죠. 축 늘어져 구석진 데 앉아 쉬고 있었는데 가까이 와서 정말 정중히 말하더라구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임요환은 사랑 받고 믿음을 얻으면서 표현할 줄 아는 ‘친구’로 점점 바뀌어갔다. e스포츠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굳힌 뒤에도 여전히 그가 ‘우상’인 이유는 자신 역시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팬들에게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S#2] 우리에게 황제는 선수일 뿐! 프로게이머 임요환이 유명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과거에는 ‘임요환’이 아니라 ‘한’으로 소개되는 기사도 여럿 있었다. “팬 카페에 들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구요. ‘별로 인기가 없는 선수인가보네’ 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알고보니 운영자 조차도 ‘임요한’이라고 팬 카페를 개설해 찾을 수가 없었던 거였어요(웃음).” 운영자 김진경 씨(27)는 팬 카페 회원수가 6천명일 당시 오프(현장응원)를 다녔다. 임요환은 경기가 끝나면 10명 안팎의 오프 인원을 데리고 뒷풀이를 꼭 했단다. 하지만 너무 말이 없어 팬들이 안절부절 했을 정도였다고. “좀 상대하기 어려웠죠. 정말 무뚝뚝했거든요. 그런데 경기에 관한 질문을 하면 얼마나 자세하고 실감나게 얘기를 하는 지 이 사람이 정말 게임을 좋아하는구나 감동받았죠.”
팬 카페 회원이 급속도로 늘어난 때는 역시 ‘코카콜라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이었다. ‘임진록’이라는 전설까지 만들어내며 홍진호와 잊지 못할 명승부를 만들어낸 임요환. 60만 명의 팬을 끌어 모은 이유는 그만의 집요한 승부 근성 때문이다. 이길 때 기뻐하고 지며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고 자신을 향해 채찍질 하는 모습이 팬들의 눈에는 가장 인간적이고 순수하게 보였던 것. “오래도록 임요환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자부심이 있어요. 성적이 떨어져도 불안해하지 않는 이유는 그를 믿기 때문이죠. 진심으로 자신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김은진 기자 ejui77@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