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황제의 귀환을 기다린다”
SK텔레콤의 임요환(27,테란)이 10월 9일 공군에 입대한다. 지난 1999년 임요환은 스무 살의 늦은 나이에 프로게이머로 데뷔, 약 7년간 e스포츠의 아이콘으로 정상을 지켰다. 임요환의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상 기록, 억대 연봉 1위, 최다 팬 보유, 그리고 ‘황제’란 호칭. 모든 프로게이머들의 우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군 입대와 함께 키보드와 마우스를 손에 놓는다. 하지만 이번 입대는 임요환의 마지막이 아니다. 군 입대 발표를 한 달 남겨둔 지난 8월, MSL 조지명식에서 모든 게이머를 향해 임요환은 자신 있게 경고장을 던졌다. “내 만나지 마소.” 앞으로 마주칠 상대는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 한마디 말 속에 임요환의 승부사적 기질이 여실히 드러났다. ‘황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e스포츠를 가슴에 품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당당한 모습을 기다리는 임요환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경향게임스>는 추석을 맞아 지난 7년간 ‘황제’ 임요환을 만들어낸, 앞으로 지켜낼 그들을 만나봤다.
People 1 ≫ 임요환의 ‘가족’ 부모님
[S#1] 어릴 때부터 엉뚱한 개구쟁이
‘막내둥이를 잃어버렸어요.’ 온순하고 웃음 많은 아이였던 임요환은 어른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게다가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엉뚱한 구석이 많았단다. “세 발 자전거를 탈 때도 앞바퀴만 잡고 다니고 양동이 끄는 소리가 좋다고 자기 덩치만한 그것을 들고 동네 한 바퀴를 다 돌았어.” 그래도 가족들은 딸 셋에 7년 만에 복덩이로 들어온 금쪽같은 외아들이 무엇을 해도 예쁘게만 보였다. 귀하디귀한 막내둥이가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임요환의 아버지 임병태 씨는 그 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컥한다고 털어놨다. “내가 놀이공원에서 근무를 했는데 요환이를 그곳에 자주 데려왔었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예쁘다고들 했다니까. 근데 내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애가 없어진 거야. 안내 방송을 하고 온갖 데를 다 찾아봐도 애가 안 보이는 거야. ‘아차!’ 했지. 말도 못 하는 3살배기를 잃어버렸으니 말이야.” 집안 식구들도 발칵 뒤집어졌다.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봤지만 어린 요환이는 보이지 않았다.
“요환이 엄마는 쓰러지고 누웠는데 파출소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요환이를 데려온 사람이 있더라는 거야. 버스 번호를 아직도 기억해. 156번 버스였는데 겨우 걸음마 뗀 녀석이 어떻게 버스에 올라탔는지 그걸 타고 종점 돌 때까지 아무도 애가 혼자 탄 줄을 몰랐다는 거야. 당시 버스 안내양이 같이 타고 오다가 창가 쪽에 혼자 잠들어 있는 요환이를 발견했는데 애가 말도 못하니 깨워서 우유도 주고 빵도 주고 모르는 사람이 주는데도 웃으며 잘도 먹더라는 거야. 아주 죽을 뻔했어(웃음).”
[S#2] 내 앞길을 막지 마세요
고집이 세다. 호기심이 생기면 꼭 알아내야 직성이 풀릴 만큼 집요했다.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반항을 한 적은 없었다. 어릴 때는 축구 선수가 꿈이었단다. 중학교 때 지역 예선에서 매번 탈락하는 축구부에 골키퍼로 들어가 상대의 골을 너무 잘 막아내 팀에게 1승을 안겨준 일화도 있다. 부모님은 애가 다칠까봐 축구 선수가 되려는 요환이를 반대했다. 그래서 포기했단다. “운동만 했으니 성적이 나올 리가 없지. 담임선생이 인문계를 못 간다는 거야. 그랬더니 요환이가 그 때부터 바깥에 나가지도 않고 밥 먹는 시간 외에 자기 방에 들어가서 공부만하는 거야. 놀랬지. 동네에서 제일 좋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척하고 들어갔으니.”
하지만 공부엔 관심이 없던 아들이었다. 대학 진학을 못해 재수하던 시절, 스타크래프트에 빠진 임요환은 부모님 몰래 학원을 빠지고 게임 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 상금을 받아와 가족들 앞에 내밀었다. “친구 놈을 데리고 집에 왔는데 텔레비전을 켜더니 요환이가 출전한 게임대회를 보여주는 거야. 이렇게 하기로 둘이 작전을 짰던 모양이야(웃음). 요환이가 슬쩍 와서는 ‘프로게이머가 전망 좋은 직업이니까 믿어 달라’고 하면서 받은 상금을 내밀더라구. 50만원인가. 큰 돈이었지. 반대를 못하겠더라고. 눈빛이 벌써 마음을 다 잡은 거야. 그럼 못 꺾어.”
[S#3] 이영애 같은 며느리 어디 없수?
작년 So1스타리그 때 요환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결승전을 눈앞에 둔 요환이에게만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사실을 안 그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하는 말이 부모님이 번갈아가며 아들 가슴을 ‘철렁’하게 한데. 급했는지 아무 약이나 다 사왔더라고. 정이 많아. 사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로 알고 새벽에 집까지 달려온 적도 있었으니.”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가정에 충실한 며느리가 요환이의 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대를 하고 나면 서른이 되니 아들이 장가가길 가라는 부모 마음이야 당연지사. 어느 정도 임요환은 준비를 갖췄다. 지방 과수원 땅이며 서울 재개발 아파트 분양에 저축으로 모아놓은 재산도 꽤 된다고 부모님은 귀띔했다. 아버지 임병태 씨는 농담조로 탤런트 이영애 같은 며느리감이 좋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일단 심신이 건강해야지. 요환이는 아직 외모가 먼저라고 하는데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으면 으뜸이지(웃음). 팬들은 모르는 요환이 버릇이 있거든? 씻으러 들어가면 뭐하는 지 화장실에서 안 나와. 장가가서 그것 고쳐 줄 며느리감이면 좋겠어(웃음).”
People 2 ≫ 임요환의 ‘제자’ 최연성
[S#1] ‘황제’가 ‘괴물 제자’를 곁에 두다
첫 대결이었다. 베틀넷에서 처음 만나 2대1로 진 최연성을 향해 임요환이 처음 건넨 말은 ‘열심히 하십시오’였다. 그후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 게임 잘하는 아이로 꽤 유명해진 최연성은 임요환의 건의로 오리온 팀에 입단해 프로게이머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임요환의 연습생으로서였다. “당시 IS랑 오리온팀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는데 전 오리온 팀을 선택했어요. 최고(임요환)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요환이 형이 참 말이 없더라구요. 친해지기 힘들었어요.”
처음에 존댓말을 쓰던 최연성이 먼저 ‘형, 4개월 있다 반말할게요.’라고 던졌단다. 그래도 대답 없던 임요환. 최연성은 그게 임요환만의 배려 방식이라고 말했다. “입단하고 2년 동안은 선수와 연습생 관계였어요. 게임 외에 다른 얘기는 한 적이 없었죠. 그러다가 요환이 형이 서지훈 선수와의 대결을 두고 저랑 하루에 수백게임을 한 적이 있어요. 결국 경기는 3대0으로 졌는데 전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경기장에서 돌아온 형이 쇼핑백에 제 면바지를 사가지고 왔더라구요. 고마움의 표시였나봐요(웃음).”
곧잘 최연성은 임요환과 친근한 모습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주 보여준다. ‘임빠(‘임요한의 오빠부대’라는 의미의 줄임말)’라는 짓궂은 팬들의 놀림도 있다. “‘임빠’ 맞아요. 단지 어감이 마음에 안 들지만. 요환이 형은 저와 비슷한 게 많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자주 부딪치고 투닥거리는 걸로 표현하는 거죠. 알고 보면 형이 은근히 소심하고 조용해요. 공개적으로 제가 (요환이 형에게) 맞는 게 좋다고 말한 이유도 친해지기 위해서죠.”
[S#2] 나를 스승이라 부르지 말라
실은 ‘제자’가 없다. 임요환은 제자를 둔 적이 없다. 최연성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히 했다. “요환이 형은 한번도 절 ‘제자’라 부른 적이 없어요. ‘제자’라고 생각하는 건 나, 자신이죠. 미래가 막막했던 저에게 프로게이머란 길을 열어줬잖아요. 요환이 형이 가르쳐 준 것은 없어요. 제가 보고 배운 거죠. 형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연성은 임요환이 장난으로 던지는 말 속에 진심이 숨어있다고 전했다. 어쩌면 비아냥으로 들릴 수 있는 그 말은 최연성에게 약이 됐다. 작년 초 이중계약 사건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을 때 임요환은 최연성에게 한 마디 말도 던지지 않았단다.
“절대 말이 없어요. ‘보고 배우라’는 거죠. 설득해도 안 듣는다는 사실을 요환이 형은 알고 있어요. 딱 한 번 요환이 형이 저를 향해 화를 냈던 적이 있죠. 선배와 후배 사이 호칭에 관한 거였는데 주장으로서 당연한 행동이었죠. 그 외엔 정말 형에게 보고 배운 것, 그게 전부예요. 말 그대로 요환이 형은 나의 ‘스승’ 맞아요.” 의지한 게 있는 만큼 최연성도 서운한 부분이 있단다. 자신에게 대하는 만큼 편하게 후배들을 못 대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하지만 후배들한테는 그렇게 못한다는 것. “그런데도 요환이 형이 멋있어요. 형으로서 애들 끌고 리드하는 모습을 보면 내 어깨가 으쓱하다니까요(웃음).”
사진=김은진 기자 ejui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