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E스포츠 진흥법"이라는 것이 원저작권자인 게임제작사의 동의 없이 영리적 목적으로 대회개최 및 방송을 허용하는 것이라면 상당히 우려스럽네요..
저작권 등 재산권 및 평등권 침해로 인한 위헌소지 문제, 미국과의 무역마찰 등은 다른 분들이 말씀을 많이 하셨으니 더 거론할 필요성조차 못 느끼겠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연 방법론 측면에서 옳은가라는 것입니다.
E스포츠는 태생적으로 게임이라는 토양 위에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토양(게임)을 공급하는 곳이 다름 아닌 게임제작사이구요.. 기존 토양의 기력이 쇠하였다면 새 토양으로 갈아엎어야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처럼 E스포츠가 앞으로도 명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준높은 게임의 지속적인 공급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게임제작사의 권리를 희생하여 E스포츠를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은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기는 커녕 황무지로 만들어놓고 농사(E스포츠)를 짓겠다는 소리나 다름 없습니다. 정말 E스포츠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E스포츠 영역에서 게임제작사의 정당한 권익을 보장하여 게임제작사로 하여금 E스포츠에 적합한 게임을 꾸준히 제작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주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요?(단순히 플레이하기 재미있다라는 것만으로 E스포츠에 적합한 게임으로 보기엔 부족하지요. 관중들이 관전하기 좋은 게임이 E스포츠에 적합한 게임입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하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옆에서 보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라고 갸웃거린다면 이는 E스포츠에 적합한 게임이 아니지요. 사실 스타크래프트 외에 다른 게임들이 E스포츠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만일, E스포츠 영역에서 게임제작사가 패키지 판매수익 외에 얻을 게 없다면 게임제작사는 E스포츠에 적합한 게임이 아닌 그냥 플레이하기 재미있는 게임만 만들려고 할 겁니다. 어차피 플레이하는데 재미만 있으면 E스포츠 적합성 여부와 관계없이 어쨋든 게임은 팔리니까요. 혹자는 E스포츠가 흥하면 게임도 잘 팔리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초반에는 게임판매에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대다수 사람들이 유저가 아닌 관전자의 지위로 돌아서기 때문에 지속적인 판매수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반면, E스포츠에서 게임제작사의 수익이 보장된다면 게임제작사들은 자사의 게임이 E스포츠에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밸런스 패치 등등...) 할 것입니다.
공공재, 공공재 하는데 어떤 사물이든 빛과 어둠이 있듯이 공공재에게도 소위 "공공재의 비극"이라는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특정 재화를 공공재로 규정할 경우 공급자에게 이윤창출이 되지 아니하므로 결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양질의 공공재가 공급되지 아니하여 사회 구성원 전체의 효익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게임을 공공재로 만든다면 과연 어느 누가 나서서 양질의 게임을 공급하려 하겠습니까(땅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네들 손으로 게임을 만들 생각이 없다면, "E스포츠 진흥법"이 E스포츠 진흥에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네요. 아울러, 국산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리그가 펼쳐지는 날을 볼 수 있을까요?(자사 게임으로 리그를 개최하기 위하여 협회로부터 갖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국내 현실 속에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망상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