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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09-06 12:50:58 KST | 조회 | 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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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서 보는 scvlife 이운재 코치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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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마린'이라는 별명은 정일훈 캐스터가 붙여줬다. 마린의 방어력 업그레이드가 대세이던 시절 이운재 코치가 처음으로 방송에서 공격력을 업그레이드한 마린에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걸며 러커를 상대로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 모습에 감탄한 정일훈 캐스터가 '마린이 살아있는 것 같다'며 붙여준 것.
이운재 코치를 만난 건 실로 오랜만의 일처럼 느껴졌다. 한때 '올드 마린'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도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어쩌면 이젠 잊고 싶은 일일 수도 있고,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들을 툭툭 던졌지만 이운재 코치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살아있는 마린'에서 '올드 마린'으로, 그리고 코치 이운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한빛스타즈-POS 창단 멤버
이운재 코치는 남들보다 늦게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한 편이었다. 한창 스타크래프트에 열중에 PC방에 다닐 무렵 그 PC방에는 이미 게이머로 이름을 날리던 장일섭, 박우열 등 래더 상위 랭커들이 있었다. "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데 너무 잘하더라고요. 저도 거기에 매료돼서 프로게이머의 꿈을 키우게 됐죠."
실력은 빠르게 성장해 약 7개월 후인 2000년 겨울, 배틀탑 대회를 우승하고 본격적인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우후죽순으로 e스포츠 팀이 생겨났던 시절, 이운재 코치는 블루웨이브라는 팀을 거쳐 웁스팀에 합류했고, 이재균 감독이 이끄는 SM팀과 합치게 됐다. 이후 한빛스타즈(현 웅진)가 창단하면서 강도경, 김동수와 함께 창단 멤버로 뛰었다. 현재 선수 출신 코칭 스태프 중에서도 정말 오래된 이가 이운재 코치다.
처음으로 기업의 후원을 받는 팀에 소속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팀의 정책상 셋 중의 하나는 국산 게임을 해야했다. 이운재 코치도 한빛소프트 스타리그, 코카콜라 스타리그 본선에 오르며 활약했지만 결국 엠파이어 어스, 거울전쟁같은 게임을 하게 됐다. 나중에 다시 스타크래프트를 잡으려 하니 흘러간 시간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때마침 한빛소프트와의 계약이 끝나 팀을 나오게 됐다. 그게 2002년의 일이었다.
팀을 나왔을 때는 당연히 실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운재 코치는 서울대 앞에 위치한 PC방에서 그야말로 '4당5락(4시간 자고 공부하면 합격하고 5시간 자고 공부하면 불합격한다는 뜻)'의 정신으로 연습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드디어 2002년 10월, 듀얼토너먼트에서 장진남과 정재호를 꺾으며 다시 스타리그에 올랐다.
그 때 인연을 맺게 된 사람이 지금은 프로젝트 매니저인 하태기 전 MBC게임 감독이다. 하태기 PM은 당시 이운재가 다니던 PC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운재 코치가 파나소닉 스타리그에 올랐을 무렵, 하태기 PM이 성재명 전 팬택 감독과 함께 소속이 없었던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그게 바로 POS팀이다. 서경종, 김동현을 비롯해 박성준(현 STX)이나 손승완(현 웅진 코치)도 함께 POS에서 생활했다.
◆'올드 마린' 별명 붙여준 KTF 이적
2003년 올림푸스 스타리그를 마친 뒤 이운재 코치는 KTF로 이적했다. 당시 KTF에는 이윤열을 비롯해 변길섭, 한웅렬 등 잘하는 테란들이 많아 그 테란들을 보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POS에서는 늘 랭킹전 1등을 하던 시절이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POS에 남아있으면 발전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운재 코치가 이적하던 시기는 아직 박성준이 스타리그 문턱도 못 밟았던 시절이었다. POS의 간판 선수가 KTF로 이적한 셈이다.
KTF에서는 테란을 배우기 위해 이윤열의 옆자리를 자청했다. 하지만 당시 KTF 감독을 맡고 있던 정수영 전 감독의 훈련 방식은 이운재 코치와 잘 맞지 않았다. 게임에 집중을 하기 힘들었고, 실력도 늘지 않아 결국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이운재 코치는 조용히 KTF를 떠났다.
'올드 마린'이라는 별명이 붙은 건 그 즈음이었다. 정수영 전 감독과 KTF 선수들 간에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이운재 코치가 경기장에 보이지 않자 다들 그의 향방을 궁금해 했다. 어디에서도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없자 팬들은 급기야 당시 흥행작인 '올드 보이'의 상황을 빗대며 '밀실에 있는 건 아니냐'는 추측을 했고, 여기서 '올드 마린'이라는 별명까지 발전했다. 심지어는 이 상황을 토대로 인터넷 소설을 지어 올리는 팬도 있었다.
"게임은 그만뒀는데 갑자기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다 그 '올드 마린'때문이었죠. 저도 글은 봤는데, 누가 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더군요. 주위 사람들이 걱정해주고 응원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나름대로 조심스런 질문이었지만 이운재 코치의 답변은 시원스러웠다. 다 털어버렸다는 듯이.
◆끈질긴 인연
KTF를 떠나 은둔하고 있던 이운재 코치를 불러준 사람은 하태기 PM이었다. 게임을 계속 해야하나 고민에 빠져 있던 그는 몇 달이나 고민을 하다 POS에 합류했다. 박성준이 질레트 스타리그 4강에서 SK텔레콤 최연성을 만나 3대2로 꺾기 직전이었다. 박성준의 연습을 도와주면서 항상 새로운 전략들을 시도해 박성준이 인터뷰에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돌아와서는 개인전보다 팀플레이에 주력했다. 승률은 5할 정도. 유난히 선수층이 젊었던 POS에서 이운재 코치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온통 10대인 선수들 사이에서 자신이 계속 주전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보다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금세 또 게이머 생활을 접게 됐다.
이번에야말로 돌아갈 일이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 일을 도우며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끈질긴 인연의 끈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2006년 후기리그 시즌 중에 다시 MBC게임으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았다.
◆교통사고로 닥친 위기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의 시작을 마음먹은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이운재 코치는 큰 위기를 맞았다. 2006년 12월에 교통사고를 당해 심하게 다리 부상을 입은 것.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선고를 받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이운재 코치는 병원에 몇 달이나 입원해야 했다. 1년 반 동안 재활치료를 하면서 다시는 걷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게 수십, 수백번이나 됐다. 하지만 몇 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 기적적으로 그의 몸 상태는 조금씩 좋아져서 마지막에는 드디어 휠체어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몸을 건사할 수준이 되자 MBC게임에서 다시 러브콜이 들어왔다. "1년 반이나 지났는데도 다시 찾아줘서 정말 고맙더라고요. 선수들을 잘 챙겨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게임이 좋아 이 길을 다시 선택하게 됐습니다. 다시 돌아가니 선수들도 반겨줘서 너무 기뻤어요."
얼마 전 이운재 코치는 재차 수술을 받았다. 전기자극을 줘 신경을 차단해 다리에 전해지는 고통을 덜어주는 치료기를 삽입한 것.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3년 뒤에는 배터리를 갈기 위해서 다시 수술해야 한다고 하지만요." 무덤덤하게 말하는 이운재 코치의 목소리에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의 여유같은 것이 느껴졌다.
◆인정받는 코치 되고파
처음 코치를 맡았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선수들과 친해지고 선수들을 통솔하는 일이었다. 쉴 때도 워낙 게임방송은 끼고 산 터라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나이 차가 꽤 나는 선수들과 친해지는 것은 내성적인 이운재 코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 때마다 김혁섭 감독님이 옆에서 잘 잡아주셨어요. 그 때 해주셨던 조언 덕에 버틸 수 있었죠."
이젠 다들 친해져서 선수들을 대하는 것도 편하다. 선수들의 게임을 많이 지켜보고, 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특히 눈여겨보는 선수가 있냐는 질문에는 마치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듯 연습실에 앉아 있는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이 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이운재 코치의 조언을 제일 잘 받아들이는 '오픈 마인드'는 의외로(?) 민찬기란다.
코치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당연히 열심히 지도한 선수가 승리할 때다. 지난 시즌 서경종이 SK텔레콤 도재욱을 상대로 승리했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며칠간 잠까지 줄여가며 만반의 준비를 했고, 실제 경기에서 완벽히 준비한 대로 플레이하며 승리를 거뒀다. "경종이가 GG를 받아내는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어요. 이런 기분이구나 싶더라고요."
지난 시즌은 사실 그닥 좋은 성적은 못 됐다. 언제나 포스트 시즌에 합류했던 MBC게임이 6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운재 코치는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어도 많은 교훈을 얻었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시즌은 이번 08-09시즌이 될 것이라는 것.
"감독님과 선수들 다같이 목표를 4강 이상으로 잡았어요. 단 1승이라도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는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나중에는요? 남들이 볼 때 '와, 정말 능력있는 사람이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게임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최고가 되고 싶어요."
이운재 코치의 진정한 시작은 이번 시즌부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살아있는 마린'은 이제 추억 속으로 묻어두고, 코치 이운재를 기억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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