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Garon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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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06-15 14:55:09 KST | 조회 | 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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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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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로그바(디디에 드로그바(Didier Yves Drogba Tébily)
1978년 3월 11일 코트디부아르 최대 도시인 아비장 출생
5살때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인해 프랑스로 혼자 이민,
삼촌인 미셀 고바(당시 프랑스 2부리그 축구선수) 밑에서지냄
향수병과 외로움에 허덕여 3년만에 다시 고향으로 귀국..
하지만 더 어려워진 집안 사정, 결국 고바 삼촌의 집으로...
이후, 축구에 올인
98년 프랑스 르망 입단을 시작으로 프로 선수 생활 시작
2004년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신흥 돌풍을 준비중인 첼시로 이적, 주전 공격수로 활약
2006~2007 시즌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20골)
2009~2010 시즌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29골)
2006, 2009 아프리카 최고의 선수
타임지 선정 2010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중 10위
"제 이름은 디디에 드로그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생생한 기억은 거리에서 축구를 하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닌 것입니다
내가 모든 열정을 축구에 쏟을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2005년 코트디부아르는 극심한 내전으로 온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정부군이 남부, 반군이 북부를 장악해 국토를 분단하고 내전 난민 70만명 발생.
이 와중 2006년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 코트디부아르 생애 첫 월드컵 출전 확정
카메라 앞에서 무릎 꿇은 드로그바.
"국민 여러분, 적어도 1주일 동안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주세요!"
드로그바의 간곡한 눈물어린 호소..
코트디부아르의 영웅이 흘린 눈물,
결국 내전의 두 주역인 정부군과 반군의 대표가 나란히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를 관람
기적처럼 전쟁은 1주일동안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2007년, 5년동안 이어졌던 내전은 평화협정으로 끝을 맺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코트디부아르는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벽을 넘지 못하고 1승 2패로 예선 탈락
2007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선정한 홍보대사로 활동
2009년 펩시 광고의 계약금 300만 파운드(약 60억원)을 고향인 아비장시 종합병원 건설자금으로 전액 기부
나이키의 레드 캠페인에 참여하며 수익금 전액 기부
대부분의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가난과 기아에 대한 트라우마로 엄청나게 돈을 밝히는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대표팀 경기에서의 소홀함은 오랜 문제거리로 여겨져 오고 있다.
하지만 드로그바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치고는 매우 드문 자선가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중
물은 셀프요, 신은 드록신이니라
하드는 드록바요, 신은 드록신이니라
드로그바가 검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가 하얀 드로그바이니라.
드록복음 4장
록렐루야!!!
참고로 포르투칼 에이스라고 하시는 건방진 호날두의 월드컵 골내역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이란전
페널티킥 1골이 전부
골든 제너레이션 이후 포르투칼은 시망이라는 분위기가 대세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호날두를 가리켜 최고 스트라이커-_- 라고 이번 코트디부아르전의 촛점을 맞추는데
드록신께 그라믄 안돼
대부분 포르투칼의 우세를 점치지만, 비록 드록신 빼면 분명 약해보이는 코트디부아르지만
록렐루야로 대동단결..
나는 코트디부아르에 버서커 소울!
드로우! 몬스터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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