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후의 시나리오 라이터 스티븐 모팻은 뛰어난 각본가입니다. 닥터후 뿐만 아니라 셜록 등을 통해서도 이미 증명되었죠. 근데 이 사람의 닥터후 각본 때문에 트위터에서 한때 심한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스티븐 모팻의 닥터후 각본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성차별 문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스티븐 모팻이 닥터후에서 창조한 여성 캐릭터('컴패니언' 이라고 불리는 닥터후 전통의 여성 동료)들은 언뜻 보면 능동적이고 용감한 사람들로 그려지죠. 그래서 성차별 논란에 휘말린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 능동성이 "진짜 여자는 드레스 따위는 입지 않는다" 논리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에 있습니다.
"진짜 여자는 드레스 따위는 입지 않는다" 라는 건,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거나, 혹은 훨씬 더 나은 능력을 가질 잠재력이 있다는 겁니다. 단, 그 자신의 '여성성'을 거세함으로써 말이죠.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의 스미스 부인이 권총을 보면서 하는 말을 상기해보세요. "이건 계집애들이나 쓰는거야.", 그러니까 이 논리는 잘 살펴보면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능력을 가지려면 남자와 똑같은 성질을 가져야만 한다는 마초성을 띄고 있는 겁니다.
저돌적이고, 용감하고, 심지어 성적인 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여성 캐릭터 라는 존재는 결국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결국은 그 캐릭터 역시 남성 작가의 섹1스판타지에서 온다는 거예요. 이 문제는 90년대부터 할리우드에서 줄기차게 만들어지고 있는 "여장부 캐릭터" 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결국 스티븐 모팻은 성차별주의자인가? 저는 그건 좀 가혹하다고 보고, 페티시즘과 캐릭터 자기 복제가 좀 강한 작가라고 봅니다. 이 사람이 만드는 여성캐릭은 한결같이 똑똑하고 저돌적이고 관능적이죠. 모팻은 자기 취향의 페티시를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덕분에 극에서 그것들이 자기복제되는 좀 나쁜 버릇을 가진 작가예요.(복잡하고 지능적인 플롯을 짜는 장점과 대비되는 단점이랄까)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스티븐 모팻이 트위터에서 십차포화를 받게 된 걸까요? 사실 성차별 문제라면 심기를 건들만한 캐릭터들이 꽤 많습니다. 어벤져스의 블랙 위도우도 이 비판을 피해갈 수 없고, 수많은 남성 취향 액션 무비들의 "소리지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여성 캐릭터들은 그야말로 여성혐오의 정수죠. 그런데 왜 이들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데 오직 닥터후만 그랬을까?
왜냐하면 그건 남자들이 보는 거고 닥터후는 가족 드라마이기 때문이죠.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남자에 대한 무자비한 몰이해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득실거리는 데도 인터넷에서 비아냥거리는 것 외에는 딱히 심각한 담론이 되지 않는 것 처럼요. 그건 그냥 여자들끼리 자기만족하려고 보는 거거든요.
근데 닥터후는 가족드라마라서, 이런 '정치적 올바름' 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불편한 모습이 보이면 시청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닥터후 시즌5 컴패니언이었던 카렌 길런은 시즌 초반에 학부모들에게 "애들이 보기엔 너무 섹시하지 않느냐" 라는 항의를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전체 이용가 드라마의 숙명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