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2006. 7. 22 - 2005. 7. 24
[1]
이것은 어느 한 레인저에 대한 이야기이다.
[Out Man of the Aim - 조준 밖에 서있는 거너.]
"내 앞에, 산산히 깨져있는 벽돌조각이 보이나?"
"... 미친소리, 죽을때가 되니까 별 소리를 다하는군."
"잘 봐두는게 좋을거다. 1분 후 네놈 모습이 될 거거든."
"그란 폴로리스의 숲은 사람이, 아니 마족이라고 해도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에요."
마을 출구 밖에는 울타리가 쳐진 깊은 숲이 있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겨 제국의 수도에 있는 황제의 첨탑만큼이나 높이 솦아오른, 셀수없이 많은 나무들이 뒤엉킨 그곳은 한낮의 태양빛도 제대로 닿지않는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었다. 마을 어디라도, 심지어는 지하수로 까지도 들어가도 좋았지만 그곳만큼은 들어갈 수 없다고 세리아는 말했었다.
"마법사님, 마족이 얼마나 강심장인지는 이해하지만, 그곳에 단신으로 들어가시는 것은 무리에요. 더구나 그 자그마한 몸집에 힘이 얼마나 있으시다고 ... 어머, 미안해요.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무리에요. 그란 폴로리스의 이름은 엘프어로 [흐르는 숲] 이라는 뜻이란 말예요."
말 그대로 그곳은 흐르는 숲이라고 했다. 숲속에 들어간 사람은 뒤돌아 보는 순간 방금 자신이 들어온 길이 사라져 없어지고 전혀 엉뚱한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고 했다. 아라드 대륙으로 수련차 온 꼬마 마녀 -마족의 여 마법사- 리엘은 몸이 근질근질 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라드 대륙에 오면 분명 무시무시한 괴물이 너를 덮쳐 잡아먹을지도 몰라, 하며 자신을 놀리던 언니 케라하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이곳은 하루하루가 평온하기만 했다. 그란 폴로리스에서 뭔가 모험을 하고싶다는 그녀의 말에 세리아는 반색을 하며 말도 못붙이게 말리곤 했다.
사실 천둥이 내려치는 밤마다 그녀가 잠들던 여관으로 고블린들의 시끄러운 외침이 간혹 들려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무슨일인가 하고 밖으로 뛰어나오면 그 소리는 항상 그란 폴로리스의 어딘가에서 멤돌아치며 마을을 울리고는 했다. 라이너스의 말로는 어딘가에서 또 고블린의 수괴 키놀이 태어나고 있을 거라면서 토벌대를 불러야 한다고 요란을 떨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 마을을 침략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온 이후부터는. 그러나 마을 대부분의 사람이 그 생각에 동의하는 동시에, 자신을 만류하는 터라 그녀 역시도 일정부분 그들의 말을 심적으로는 동의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런 일이 없어도 그녀는 그란 폴로리스에 딱히 들어갈 이유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촉망받는 마법사였으며, 5대원소를 자기 수족을 부리듯 마음껏 유린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였다. 자신의 실력에 어느정도 자신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마법은 누군가와 싸워서 실력이 상승하는것만은 아니라는 케라하의 말마따나 그녀는 순수한 학구적 수련에 집중해 있었다. 누군가와 경험을 쌓고 이루어 상승하는 마법같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저 단지, 누군가가 그곳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지루해 지루해 지루해 지루해에!"
-펑! 파앗! 퍼어어엉!!
"아악! 마법사님, 리, 리엘, 진정해요! 으, 으갸아아아아!!"
어느날 리엘은 도저히 좀이 쑤셔 견딜수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그란 폴로리스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아니, 천성적으로 타고난 마족의 피가 그녀를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호전적이고, 적극적이고, 심심한 것을 참지 못하는. 금지하는 것은 금지돼야 한다를 철칙으로 삼는 그녀의 성격과는 잘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리엘은 5원소 결정체를 마구 날려대며 그란 폴로리스의 입구를 막고있는 방책을 부셔버리고 있었다. 아무리 견고히 쌓아둔 방책이지만 5원소를 부려대며 난동을 부리는 꼬마마녀 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경비대장은 혼비백산하여 자신에게 날아들어오는 플루토를 보고 기절했고, 나머지 경비병들은 세리아와 모험가들의 도움을 요청하러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며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모두들 걱정하지마. 나, 곧 돌아올거니깐."
응, 잠시만 놀다올깨. 뭔가가 날 저쪽에서 부르고 있는것만 같거든...
12살 꼬마 마법사의 키는 울창하게 자란 늦여름 들판의 풀대에게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울창하게 자라있는 숲만큼이나 그란 폴로리스의 초원들은 하나같이 길게자란 늦여름 풀대로 머리까지 푹 파묻히는 높이를 자랑했다. 풀벌레일까, 아니면 정령의 꽃가루일까. 뭔가가 끊임없이 코끝을 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자신을 부르던 그 뭔가를 이제 곧 볼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느낌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이 마음에 걸렸다. 뭐지,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정말로 이럴 이유는 없을텐데. 이상하게...
아니, 그것은 일종의 직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분명히 뭔가 있으리라는, 직관과도 같은 느낌. 마치 마법을 사용할 때와 같은 느낌. 마법을 부릴때에는 막연히 상상하거나 기원企願하는것이 아니다. 자신의 발과 손을 부리듯,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세상 천지에 마력은 어디에나 널려있다. 그것을 잘 갈무리하는 자는 자신의 수족을 부리듯 어느 특정한 형태로 발산이 가능하다. 그것이 '넨' 이든, '마력' 이든, 혹은 유색무형의 '오오라' 이든 간에. 그리고 이 느낌은 마치 그것들을 다루듯 익숙한 느낌이었다. 내 앞의 무언가...
"마법사-! 잡아라-! 우리 종족을 건들다니-잇!"
정말, 이런건 싫은데 말이지.
리엘은 짧게 중얼거리고는, 보자기에 싸인 막대를 주워 고블린의 외침이 들리는 반댓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것은 일종의 사고였다.
리엘은 그저 자신이 왔던 숲속의 길이 난데간데 없이 사라져 탐색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린 새끼 고블린 한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신기한 눈으로 리엘을 바라보다가, 룬을 잔뜩 그려둔 마법진 안에 들어왔던 것이다. 수인을 맻으려던 그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엉겁결에 룬을 그리던 석필을 새끼 고블린에게 던졌고, 그것은...
"하필 왜 정확하게 콧구멍에 쑤셔지냐고!"
리엘은 마법의 기본은 알고는 있었지만 즉시 시전이 가능한 마법이 아닌 시간이 걸리는 마법진을 그릴 때에는 이물異物의 침입을 막기위해 위장진을 먼저 그려야 하는것을 알고있지는 못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로지 마법에만 집중해야 하는 성격상 습격당하기 쉬운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리엘은 시끄럽게 웃어대는 (고블린는 아프거나 슬플때 울지않고 웃는다) 새끼 고블린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사방군데에서 달려드는 성인 고블린 (그래봐야 12살 그녀의 키보다 작다) 들에게 쫒겨다니게 되었다. 수적으로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1:1로 고블린 십장 따위와는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지만 수십, 수백을 헤아리는 머릿수를 상대한다는 것은 곧 자살을 의미했다. 리엘은 그제서야 세리아가 자신을 만류한 까닳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단신으로 오면 안되는 것인지도.
"하아, 하아, 흐... 흐윽."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비를 품은 바람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숨고르기를 하던 리엘은 어느새 자신이 그란 폴로리스의 한참 깊은 숲속까지 와버렸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곳엔 고블린들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배는 고팠고, 파이와 딸기가 가득 들은 보따리는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주변엔 자신 혼자뿐이었고, 점점 해는 내려앉아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촉망받는 마법사라고 해도 그녀는 고작 12살에 불과했다. 언제부턴가 눈물이 그녀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며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케라하, 세리아, 엄마, 아빠, 으흑... 흑... 라이너스 아저씨... 흐윽..."
비를 품은 대기가 서서히 날아오르며 자신의 날개 속으로 그란 폴로리스를 덮어가고 있었다. 하나, 둘. 리엘의 눈물만큼이나 가벼운 회색 깃털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리엘을 찾아봐야 하는게 아닐까요?"
세리아는 리엘이 숲으로 달려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동안 안절부절이었지만 라이너스는 그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도움을 요청하려면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리엘부터 찾아내야 하는데, 헨돈마이어엔 마법사가 없다는 것이 라이너스의 지론이었다. 웨스트 코스트의 마법길드장 샤란은 알프라이라로 일련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출장차 떠나간 상태였다. 혹시 엘프인 슈시아는 마법을 할수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가본 세리아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며 엘븐가드에 돌아왔다. 라이너스는 그 사이에 청년단을 설득해 수색조를 편성하고 있었다.
"탐색마법은 없지만 그란 폴로리스를 밥먹듯, 내 속옷 이잡듯 두루 뒤져오던 우리가 아닌가? 우린 천계의 나팔을 가지고 있네. 우렁찬 목청도 가지고 있고. 부탁이네, 리엘 꼬맹이좀 잘 찾아봐 주게."
번쩍!
라이너스가 그래도 안심이 되질 않는지 청년단원을 한명한명 찾아가 저렇게 당부하고 있었다. 그가 리엘을 그렇게 아낀다는 것에 감동한 그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라이너스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찰나 어두워진 하늘에 번개 하나가 공기를 찢고 갈랐다. 번개가 쳤지만 비는 아직 내리고 있지 않았다.
"설마... 키놀... "
마른 번개가 다시한번 번쩍 세상을 일순간 비췄다. 하늘에 어둑어둑한 검은 구름들이 잔뜩 끼어가고 있었다. 세리아는 창백한 얼굴로 그란 폴로리스의 하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애타게 자신을 찾는지도 모르고 혼자 남겨진 외톨이 리엘은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녀는 마법을 사용할 염두도 내고있지 못했다. 어디선가 자신을 움켜쥘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족의 예민한 두 귀가 위험한 파장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침묵이었다. 이 조용한 숲을 흔드는 소리는 하늘이 비명을 지르는 번개뿐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에 따라 점점 번개와 소리간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막연한 느낌이 여전히 그녀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사방에 깔려 캄캄해졌다. 위장마법도 은신마법도 이보다는 덜할 것이다. 완벽한 어둠이 그녀를 감싸돈다는게 차라리 고마운 일이었다. 그란 폴로리스 숲속 깊숙한 곳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것인가. 어두운 숲속만큼이나 이곳의 비밀은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세리아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라이너스는... 마계에서 노닥거릴 케라하 언니는......
바로 그때였다.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어둠에 가려진 리엘위로 불쑥 솟아오른 그림자가 있었다.
"찾았다, 마법사! 하. 하하. 하하하."
전격의 키놀. 아니다. 아직 키놀이 되기 위해 의식을 치뤄야할 알비노 고블린 십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별안간 등뒤로 벌떡 솟아오르는 것을 뒤돌아본 리엘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버렸다. 감히 수인을 맻을 생각조차 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주위에 늘어가는 그림자들의 수만큼이나 갑절로 늘어나는 자신의 공포심에 차갑게 얼어붙는 온몸을 느끼고 있었다.
총 7편으로 예상하고 있는 단편입니다.
그러낳 초딩님들의 반별 압박으로 패스패스패스 ㄳㄳ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