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경은 츤데리(墨積滑)에 살던 사람이다.
하루는 그의 여친이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키배를 해서 무엇합니까?"
도경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전콘을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알바라도 못 하시나요?"
"닥처라 요망한 계집, 알바따위 해봤자 시급 4천원으로 무얼 하겠느냐 "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메이플 개인상점 켜놓고 있잖소"
여친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그렇군ㅋ"
도경은 읽던 책을 덮어 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공부로써 십 수를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획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도경은 수능원서를 접수하기 위해 피씨방(雲從街)에 나가서 수갤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수능원서는 어디서 접수해야 하오?"
근처의 고등학교를 찾아가라고 이르는 이가 있어서, 도경이 곧 가까운 학교의 교무실을 찾아갔다. 도경은
선생에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나 하니, 원서를 접수해주기 바랍니다."
선생은 "그러시오."
하고 당장 원서종이를 내주었다. 도경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교무실의 선생과 학생들이 도경을 보니
잉여였다. 어디서 주워온 것인지 교복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노스페이스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도경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오?"
"모르지."
"그런데 어쩐 이유로 수능 원서를 접수해 준것이오?"
"아니, 너희들이 알 마 아니다. 대체로 원서를 접수하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점수를 대단히 선전하고, 등급을 자
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
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차피 망할듯... 그리고 나 여기 일하는
공익임. 원서 어떻게 접수해주는 지 모름"
도경은 수능 원서 종이를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근처 시험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三南)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도경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능 시험을 보러 온 자들이 장사나 하고 있다니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알만 하구나."
그는 다시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문제지를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공부를 하지 못할 것이다."
도경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문제지 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도경은 늙은 삼수생을 만나 말을 물었다.
"이 도시 밖에 혹시 사람이 공부할 만한 빈 독서실이 있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수능을 망쳐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걸어가다 어떤 빈 건물에 닿았습지요. 아마 서울(沙門)과 대전(長岐)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디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인서울의 영광을 누릴것이네"
라고 말하니, 삼수생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도경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평수가 일평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조용하고 사람이 없으니 단지 경기도권(富家翁富)은 될 수 있겠구나."
"텅 빈 건물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삼수생의 말이었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적고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잉여 삼수생(群島)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꼴통들을 징발하여 과외를 벌였으나 좀처럼 점수가 오르지 않았고, 강사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도경이 학원가의 산채를 찾아가서 그들의 일진을 만나 달래었다.
"천 명이 일점씩 맞으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500점만점에 1점"
"모두 직장이 있소?"
"없소."
"여친이 있소?"
삼수생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직장이 있고 여친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삼수생이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여친을 얻고, 점수를 모으며, 문제지를 사서 덕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잉여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죠, 취업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의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시간이 없어 못 할 뿐이지요."
도경은 웃으며 말했다.
"삼수를 하면서 어찌 시간을 걱정할까? 내가 흔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할 수 있소. 내일 바다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문제지를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도경이 삼수생들과 언약하고 내려가자, 삼수생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삼수생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도경이 삼십만 권의 문제지를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警)해서 도경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짊어지고 가거라."
이에, 삼수생들이 다투어 문제지를 짊어졌으나, 한 사람이 백 권 이상을 지지 못했다.
"너희들, 힘이 한껏 백권도 못 지면서 무슨 공부를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코갤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사람이 백 권씩 가지고 가서 내일까지
모두 이름을 써 오너라."
도경의 말에 삼수생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도경은 몸소 산와머니에 연락해 이천 명이 1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잉여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소달구지에 싣고 그 빈 건물로 들어갔다. 도경이 잉여를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도경이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잉여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시1발 공부 존나 귀찮음."
하고 문제지 오십만권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공부 해서 뭐함ㅋ" 했다.
도경이 다시 고향으로 가서 공익을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공익이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또 수능원서를 신청하러 오셨소?"
도경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십수생이 어찌 도(道)를 살지게 하겠소?"
하고, 수능 접수증을 내넣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글읽기을 견디지 못하고 재수공부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원서를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공익이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안볼거면 군대나 가라고 권하였다.
도경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츤데레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공익은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도경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 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공익이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김 도경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여친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공익은 비로소 그가 십수생이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공익는 받은 원서 접수증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도경은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이건 뭔 개소리야"
공익이 도경을여러 가지로 권유했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공익은 그 때부터 도경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도경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내가 언제 이런거 달라고 그랬음?ㅡㅡ"
하였고, 혹 키보드를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키보드를 기울여 키배를 떴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공익이 10년동안 재수만 했는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도경이 대답하기를,
"그렇게 하면 수도권이라도 갈 줄 알았음ㅋ"
공익은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결국 그는 20수까지 하고 자신만만하게 수능원서를 접수하여 20년만의 수능을 치루게 되었으니
그의 광채가 찬란하며 위풍당당한지라.
그는 감독관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7시간동안 언어 , 외국어 , 수리를 포함해 사회문화,국사,근현대사,윤리,정치,법과사회,생물,지구과학,화학,물리,세계 지리, 경제지리, 지리 등 18개의 과목을 풀어치워 500점만점에 714점을 맞고 수능장에서 퇴출당하였다.
다음날 공익이 도경의 행적을 찾으려 했으나 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어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