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사사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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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12-21 23:32:22 KST | 조회 | 201 |
제목 |
2차대전 영국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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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내용 기억나는대로 얼렁얼렁(시리즈물로 한 번 해볼까 싶기도 한데 아 모르겠 -_-)
1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징병이 1916년부터였으니 당연히 그 때부터 생겨났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군대갈래 감옥갈래?'
그러던 것이 2차대전에 들어서는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전쟁이 선포되고 나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자신들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스스로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신고한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심사를 거쳐 4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말그대로 '무조건적 면제', '비폭력적 보직에 종사', '시민 사회에서 일하기', '닥치고 군대가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종교적 이유도 많았고 반전주의자라서 그런 사람들도 상당했으며(특히 1차대전 피해자 내지는 피해자 가족들) 전쟁을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라고 봤기에 그랬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가기 싫어서 그랬던 사람들도 있었겠죠 -_-
예를 들면 어떤 여자애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신고한 남자애에게 '근데 넌 교회도 잘 안 다니고 성경도 안 읽잖아? 물론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지만 지금 입대한 다른 남자애들은 안 그러겠니?'라고 말하기도(<-근데 왠지 여자애들이 말하니 좀 억울해...orz.)
그러면 '어? 그러면 그냥 무조건 안 간다고 하면 되지 않나?' 싶긴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게 당연히 심사 과정이 까다로웠습니다. 하회 각계각층의 대표와 판사가 굉장히 예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한다고 할 때는 '성경의 어떤 구절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성경의 어떠한 상황과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심지어는 '12사도의 이름을 대보시오(...)'
반전주의자라면 어떠한 반전주의 조직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반전을 주장하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물론 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나하나 대답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반전주의 조직에서 이런 심사를 거치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들은 성직자들이 함께 심사장에 가주기도 했고 함께 못 가는 경우도 편지를 써주는 방식으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반전주의 조직에는 영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꽤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버트란드 러셀이 있지요.
자기 가족 사정을 이유로 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기 형제 6명 중에 2명만이 남았다는 이유를 댄 사람도 있었는데 이 때 판사는 버럭대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7명의 형제중 나만 남았고 이제 3살 된 아들이 있다!'
어쨌든 자기 양심에 따라 거부한 사람들도 주위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곤 했습니다. 한 거부자는 자기 가족을 군대로 보내버린 주위 이웃들과 눈을 마주칠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일하도록 명령받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농장, 공장주인들이 받아주질 않았거든요.
군대 내에서 비폭력적 보직에 종사하는 이들도 눈총을 받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NCC(Non Combatant.. 마지막이 기억이 안 나네요 -_-)에 배속되었는데 이는 한 때 6천명, 12개 중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이 갈 수 있는 보직에는 의료 활동 보직이 있었는데 문제는 이 쪽이 이미 사람이 충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받기 위해서 의료쪽 전문가들이 여기에 못 들어가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같은 이슈도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같은(?) 군인들에게도 좋지 못한 시선을 받았는데 실제로 이런 눈총 때문에 일반 육군으로 전환한 거부자들도 상당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비전투 보직은 주로 토목과 의료, 취사 등을 담당했습니다. 그래도 막상 전쟁터에 나가 일반 병사들과 함께 위험한 임무를(비록 비전투라고 해도) 수행하면서 나름대로 인정을 받긴 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임무가 불발탄 제거와 응급 치료였습니다. 특히 불발탄 제거는 반전주의자들에게 '무기를 제거하는 행위'였기에 오히려 자발적으로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1940년 덩커르크에서는 한 병역 거부자는 해안가를 돌아다니면서 영국군과 독일군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돌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것도 본인 블로그서 복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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