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서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던
1991년은 소련이 결국 해체된 해였고.
미국이 중동 전쟁을 일으킨 해였습니다.
미국과 전 세계 경제의 주식은
급속도로 떨어졌지요.
그렇지만. 애국심은 여전히 불타올랐고.
국가는 계속 불리어져 왔습니다.
한 동안. 세계가 붕괴될 것 같진 않았지요.
이런 상황속에서, 1991년 2월
현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선
실리콘 & 시냅스라는 비디오 게임
개발 회사를 차린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마이크 모하임, 프랭크 피어스, 그리고 앨런 아담이었죠.
지금은 대부분 프로젝트에서
회장, 부회장, 리드 디자이너를 맡고 있죠.
이 회사가 훗날 블리자드의 전신입니다.
상상이 되시겠지만, 스튜디오는 지금의
블리자드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초기의 실리콘 & 시냅스는 개인 신용
카드에서 자금을 빼 쓰는 회사였고.
IGN은 "자금이 바닥나기 전에
게임을 발매하려 허우적거린다"고 보도했습니다.
첫번째 게임에는 걸맞는 이름이 있었지요.
광분한 기계의 레이싱 - RPM 레이싱이었습니다.
RPM 레이싱은 꾸준히 나오던
돈을 벌어 차와 부품을 사는 게임
중 특히 "고해상도"였습니다.
1985년에 코모도어 64용으로 나온
레이싱 파괴 세트의 리메이크작이었지요.
블리자드는 RPM 레이싱이 처음으로
미국인이 만든 슈퍼 닌텐도 게임이라 주장합니다.
실리콘 & 시냅스가 창설된 지 4개월 만에
RPM 레이싱은 출시되었습니다.
오늘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지나치게 지루한 개발 기간과
엄청난 퀄리티를 추구합니다.
스타크래프트 2는 발표된지
3년 만에 출시가 되었지요.
총 개발 기년은 5년을 넘어섭니다.
스타크래프트 2의 수석 디자이너인
더스틴 브라우더는 2005년 3월에 입사했습니다.
그 반면에, RPM 레이싱은 고작 몇 달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게임을 사는 것 대신 차라리
92년도에 나온 슈퍼 마리오 카트
를 사는게 나았습니다.
블리자드의 거북이같은
불만 반응 속도를 볼때는
특히나 그랬지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실리콘 & 시냅스가
내놓은 것들 또한 잊혀지기 쉬웠습니다.
배틀 체스.
춤, 전투, 음악이 있는 체스였지요.
또한 엄청나게 기이한 속편이
1992년에 윈도우즈, 코모도어 64,
아미가 용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의외로 대단한 작품이었지만
반지의 제왕 RPG를 아미가로
포팅 한 것 뿐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아미가 캐슬, 아키가 마이크로리그 야구,
매킨토시 렉시 크로스, 매킨토시 드보락
등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1992년 후반기에 실리콘 & 시냅스는
재정이 안정되어 이제는 오리지날 게임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훌륭한
게임을 내고야 말았습니다.
길 잃은 바이킹.
꺼벙하지만 힘으로 커버가 가능한 바이킹들이
퍼즐을 풀어 끔찍한 유괴범인
Tomator를 빠져나가는 이야기였죠.
로큰롤 레이싱은 세가 제네시스와
슈퍼 닌텐도로 출시되었습니다.
RPM 레이싱의 주제와 비슷했지만
재미없는 오랜 RPM 레이싱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 조금 더 화려하고
박진감넘치는 게임을 만들었지요.
일렉 기타인 Alien goo는 게임에
조금 더 박진감을 더했지요.
1993년 로큰롤 레이싱으로 받은
최고의 소프트웨어 개발사
상은 아직도 블리자드 본사에 남아있습니다.
차기작은 블랙톤이라는 작품으로서
시네마틱 플랫폼이라는 장르로 분류된
쉽게 말해 "페르시아의 왕자와 총"이었습니다.
팬들의 지지는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라이센스 게임과 오리지날 게임을 계속 만들었습니다.
슈퍼맨의 죽음과 부활, 로스트 바이킹 2,
정의의 리그 특공대 들은 모두 함께 개발되었습니다.
그 때, 블리자드의 첫번째 블록버스터가
94년도에 시작되었습니다.
워크래프트 : 오크와 인간.
RTS 장르에서는 첫번째로 성공한 게임이었고.
94년 여름에 데모를 내놓고
이어 11월에 판매했습니다.
블리자드 역대 최고의 성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