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 XPlang.playxp.com를 아십니까?
Play XP는 2002년 블리자드가 출시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Warcraft III의 한국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Warcraft XPwarcraftxp.com로 잘 알려져있지만, 사실 Nios윤석재님의 개인 홈페이지인 Homepage XPhomepagexp.com를 그 전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XP가 Homepage XP라는 이름을 갖게된 것은... 사실 별 이유 없이... 그냥 Nios님이 개인 홈페이지로 구입한 도메인이라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Nios님은 Homepage XP를 통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높았던 한글패치를 제작, 배포했고, 그러던 중 Warcraft III 베타 버전의 기능적 한글화를 시도하고 그 유명한 HanWarc한워크를 공개하면서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후에 저를 비롯한 관심있는 자원자들의 참여로 메시지, 캠페인, 월드에디터 등 내용적 한글화 전반을 아우르게 되며 이 과정에서 Homepage XP의 Warcraft III 한글패치포럼을 분리하여 역사적인 Warcraft XP가 탄생합니다. Warcraft XP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Homepage XP는 사실상 운영이 중단되었고 지금은 Internet Archive WayBackMachine에서나 그 옛 모습을 돌아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Homepage XP가 이렇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후에 Warcraft XP로부터 주제를 확장하며 Play XPplayxp.com가 출범한 후, 기존 Homepage XP의 주요 컨셉인 한글화 및 한글패치 배포 기능을 그대로 인계하는 Lang XP라는 이름으로 통합했습니다. 비록 Play XP만으로도 벅찬 운영 및 개발 여력을 Lang XP에까지 투자하는데 한계가 있어 롱런하지는 못했지만 Homepage XP와 Lang XP는 분명 HanWarc 이외에도 대한민국에서 소프트웨어 한글화 커뮤니티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자부합니다.
Lang XP, 그 이후...
비록 2001년 Homepage XP에서 시작된 XP의 한글화 프로젝트는 이제 공식적으로 7년 된 HanWarc만이 배포되고 있을 뿐이지만, 한글화에 관심을 가지고 모였던 우리인 만큼 늘 다양한 종류의 한글화에 대해 욕심을 가져왔습니다. 알게 모르게 Play XP를 통해 수많은 Blizzard 관련 문서나 텍스트들이 한글화되어 왔고, Nios님은 여전히 한글화할 응용프로그램과 게임을 물색하고 계시며, 저나 Terry님도 각자 외부에서 한글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몇몇 응용프로그램이나 유명 게임을 한글화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최고 운영진 외에도 다양한 문서의 한글화로 Play XP에 기여한 회원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Lang XP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렇듯 Play XP는 한글화라는 공통의 욕구과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왔고 그렇게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한글화에 대한 욕구는 쉽게 떨쳐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의 경우를 보면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한글화하기 위해 투자할 시간을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그래서 제가 고민하며 떠오른 아이디어에 대한 부분입니다.
한글화, 동등계층 생산peer production의 가능성
흔히 GNU/Linux와 Wikipediawikipedia.org로 대표되는 동등계층 생산 방식을 한글화localization, 그 중에서도 특히 번역translation을 중심으로 도입한다면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요? 그것이 제 고민의 핵심입니다.
보통 한글화 팀은 기본적으로 기술자engineer와 번역가translator로 구성되며, 한글화하려는 대상이나 수준에 따라 그래픽, 편집, 분석, 검토 등의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술자는 실력있는 소수의 기술자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번역가는 한글화 규모가 큰 경우 더 많은 번역가가 필요하며 각 번역가들에게 할당되는 분량도 엄청날 수 있습니다. 번역에 있어서 동등계층 생산이란 이렇게 팀에 소속된 몇 명의 '팀원' 번역가에 의한 폐쇄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접근하는 여러분peer 누구나 자기나 원하는 만큼 번역에 참여할 수 있는 개방된 프로젝트을 의미합니다.
이를테면 그 방식은 다음과 같이 구상해보았습니다. 기술자는 추출한 원문을 텍스트로 만들어 웹 상에 등록합니다. 이것은 마치 위키 페이지나 게시물을 등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텍스트의 각 문장은 내부적으로 독립적으로 관리됩니다. 이는 각 문장이 각자 번역되고 그 번역문 목록과 버전이 문장마다 별도로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문장은 원문과 최신 번역문을 함께 보여줍니다. 그 게시물을 보는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문장을 하나 선택하여 마치 댓글을 다는 것처럼 번역문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구나 마치 트위터처럼 각 문장에 달린 모든 번역문을 볼 수 있으며, 기존 번역문을 수정한 번역문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번역문을 수정할 때마다 전체 번역문 텍스트의 버전이 올라가며, 누구라도 원하는 버전의 번역문을 언제라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번역문을 이용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자신의 번역물인냥 도용하는 것은 금지해야겠죠. 이 모든 과정은 마치 공개형 위키의 그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저는 이런 한글화의 동등계층 생산이 불러올 효과를 이렇게 예상합니다. 첫째로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번역에 능한 정규 팀원을 모아 많은 분량을 할당하는 방식이 가지는 부담을 상당부분 해결해줍니다. 둘째로 누구든지 그 프로젝트에 관심있는 사람이 미번역 문장이나 오역 문장을 부담없이 번역해놓는 것만으로 프로젝트의 진척도에 상당히 도움이 되며, 이것은 나아가 검토 및 감수와 오류 수정의 효과까지 겸하게 됩니다. 셋째로 기존처럼 한글화 팀이 폐쇄적으로 진행하다가 80%, 100% 처럼 목표한 만큼 진척되었을 때 완성된 형태로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언제든지 현재 진행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심지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최신 번역본을 바로 적용할 수도 있으며 오류를 발견하면 즉시 자신이 고쳐서 새 번역본에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넷째로 팀을 전혀 구성하지 않고도 원문을 추출하고 번역문을 패치로 만들 기술만 있다면 누구나 혼자서도 한글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그 관심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저절로 번역되어갈 것입니다. 분명 이러한 시스템이 활성화된다면 국내 한글화 커뮤니티의 판도가 뒤집힐 것이며 우린 수많은 응용프로그램이나 게임의 한글패치를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게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한글화의 동등계층 생산이 이런 장밋빛 미래만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자신의 임무에 책임이 부여되는 정규 팀원이 구성되지 않은 채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번역에 참여할 수 있다면 사실 많은 경우에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다수는 누군가 남이 번역을 해주길 기다리고만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비록 많은 미디어가 GNU/Linux와 Wikipedia를 그런 동등계층 생산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긴하지만, 그것은 해외의 사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동등계층 생산이 성공하기 참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만드는 것은 참 잘 하는데, 모두가 룰에 따라 함께 협업해서 뭔가 공동의 것을 만드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과연 한글화의 동등계층 생산은 효용성이 충분할 것이냐? 그것이 바로 이 글을 통해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에게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동등계층 생산 시스템이 제공된다면 여러분은 참여하시겠습니까? 여러분 각자가 세 문장씩만 번역해도 하나의 게임의 한글패치가 완성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세 문장을 번역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한글패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지쳐 포기하시겠습니까?